KB국민은행 여의도 본점. 이르면 올 하반기 KB국민은행장을 새로 선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대형 금융그룹 중 유일하게 회장 겸 행장인 윤 회장은 역대 KB금융 회장 가운데 가장 강력한 리더십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3월 현대증권 인수전에서 1조 2500억 원을 베팅해 인수에 성공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전임자인 어윤대 전 회장의 경우 ING생명 인수에 나섰지만 이사회의 반대로 무산됐고, 임영록 전 회장 역시 이사회의 제동에 우리투자증권 인수전에서 고배를 마셨다. 반면 윤 회장은 현대증권 인수 과정에서 이사회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으며 시장 예상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써내는 리더십을 과시했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동안 KB금융 안팎에서는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 분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심심찮게 나왔다. 금융당국에서 윤 회장이 행장직을 겸임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뜻을 내보이며 위기를 맞기도 했다.
지난해 7월 금융당국은 “금융지주 체제 하에서 회장과 행장을 겸직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은행 쏠림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분리하는 것이 맞다”면서 “전임자들의 갈등은 회장과 행장이 분리돼 있어서 발생한 문제가 아니니만큼 역할을 분산해 진정한 지배구조 개선을 이뤄낸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노골적으로 윤 회장을 압박했다.
하지만 윤 회장은 지주사 사장직을 부활시키고, 김옥찬 전 SGI서울보증 사장을 전격 영입하는 방식으로 타협점을 제시했다. 은행장을 계속 겸임하는 대신 KB금융에 사장이 지주사 전반의 업무를 맡도록 하는 방식으로 압박을 피해간 것.
1년 6개월이 흐른 지금, KB금융 내부에서는 “은행장을 분리할 때가 왔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윤 회장은 “경영권 승계 프로그램의 기초가 잡히는 시점까지 겸직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KB금융 이사회는 최근 ‘지배구조 승계방안’ 논의에 시동을 건 것으로 전해진다.
미뤄왔던 회장-은행장 분리 작업에 속도가 붙기 시작한 근본적인 이유는 ‘KB사태’의 후유증이 거의 다 치유된 데다 KB금융의 몸집이 윤 회장 혼자 1인 2역을 이어가기 힘들 정도로 불어났기 때문이다.
KB금융은 지난해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을 인수한 데 이어 올해 현대증권까지 인수하면서 비은행 부문 사업 규모가 커졌다. 금융권에 따르면 현대증권이 KB투자증권과 통합해 한 몸이 될 경우 KB금융에서 비은행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40%를 넘어설 전망이다.
금융권 한 고위 관계자는 “옛 LIG손보와 현대증권은 KB생명이나 KB증권과 체급이 다른 회사들”이라면서 “예전처럼 은행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사업 포트폴리오가 없었던 상황에서는 윤 회장이 국민은행에 집중하면서 다른 사업을 챙길 수 있는 구조였지만 이제는 슈퍼맨이 아닌 이상 힘들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 이사회는 올 하반기에 지배구조 승계 방안을 논의키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진다. KB금융은 지난해와 올해 수차례 이사회를 열고 ‘최고경영자(CEO) 경영승계 계획안’을 논의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해왔는데 이번에는 다른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금융권은 보고 있다.
구체적인 시나리오와 하마평도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금융권에서는 윤 회장이 새로 선출될 국민은행장의 임기를 1년 정도로 제한하는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한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회장-은행장 간 경쟁구도를 예방하기 위해 자신의 임기가 끝나는 시점에 새 은행장도 임기를 마치도록 할 것이라는 얘기다.
한 금융사 고위 관계자는 “윤 회장이 새 은행장을 뽑는다면 자신의 임기가 끝나는 시점인 2017년 말까지 임기를 1년 정도로 한정할 것이라는 얘기가 돌고 있다”면서 “윤 회장 자신이 회장직을 연임하느냐 여부에 관계없이 회장 선출 과정에 은행장이 개입할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고 전했다.
윤종규 KB금융 회장(오른쪽)은 평소 ‘현직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전해지는 만큼 내부 CEO급 가운데 한 명이 은행장에 오를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금융권이 주목하는 인물은 이홍 국민은행 부행장과 박지우 KB캐피탈 사장이다. 이홍 부행장은 기업금융본부 등을 거쳐 영업그룹 부행장을 맡고 있는 윤 회장의 최측근 인사다. 주목할 점은 이 부행장이 윤 회장과 더불어 사내이사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지주사 CEO인 김옥찬 사장조차 이름이 없는 사내이사에 이 부행장이 윤 회장과 함께 올라 있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회장 유고 상황이 발생할 경우 등기이사인 이 부행장이 대표이사 직무대행을 맡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KB 내분 사태로 물러났다 지난해 화려하게 복귀한 박지우 KB캐피탈 사장의 내공도 만만치 않다. 2014년 KB금융 사태 당시 핵심 당사자로 지목돼 회사를 떠났던 그는 불과 1년여 만인 지난해 5월 KB캐피탈 사장으로 컴백했다. 서금회(서강대 출신 금융인회) 멤버로도 알려진 그는 이후 수많은 논란 속에서도 올해 3월 연임에 성공하는 뚝심을 과시했다.
김옥찬 KB금융지주 사장, 윤웅원 국민카드 사장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는 평가다. 김옥찬 사장은 중량감으로 볼 때 단연 1순위라는 평을 듣지만 KB금융 사장직을 맡고 있다는 점이 오히려 은행장 선임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이 되고 있다. 명확한 규정 등은 없지만 관념상 은행장은 지주사 사장보다 서열이 낮은 직급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윤웅원 사장은 KB금융지주와 국민은행에서 재무·전략·경영관리업무를 두루 거쳐 내부 사정에 밝은 점이 강점이다. 특히 KB사태 당시 임영록 전 회장이 금융위원회로부터 직무정지 처분을 받자 회장 직무대행을 맡았을 정도로 경영능력 면에서는 검증된 인물로 꼽힌다. 다만 국민카드 사장에 취임한 지 6개월여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