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없이 나른하고 졸립고 기운이 없는 데는 병원에 가봐도 뚜렷한 병명이 없다. 만성피로증후군. 식욕도 없고 소화도 안되고 잠자리에서도 의욕이 없다. 아내에게 남편구실도 잘안되는 게 사실이다. 무슨 묘약 같은 건 없을까. 수면부족, 음주, 스트레스 등으로 인한 일시적인 피로는 대개 충분한 휴식으로 해소할 수 있지만 요즘엔 일상 수준을 넘어 만성적 피로를 호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휴가기간 동안 충분히 쉬었고, 주 5일 근무제로 주말에 이틀씩이나 쉬는 데도 피곤하기는 마찬가지다. 오히려 예전보다 월요일에 일어나기 싫은 월요병이 더 심해지고 업무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이처럼 한결같이 ‘충분한 휴식을 취했는데도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고 호소한다. 바로 그 점이 만성피로의 특징이다. 만성피로에 대해서는 의학적으로도 명쾌한 해답이 없다. 대체로 과도한 활동으로 육체 에너지가 고갈되었거나 인체조직이 자극에 반응하지 못하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무엇보다 만성피로는 당사자의 주관적 느낌에 많이 좌우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사람이라면 먼저 수면을 체크해 보라고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유준현 교수는 권한다. 단순히 ‘수면시간’뿐 아니라 ‘수면의 질’도 고려해야 한다. 푹 자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달게 자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지나친 소음이나 불빛 아래서 수면을 취할 경우 아무리 오래 자도 휴식효과는 떨어진다. 영양 불균형도 만성피로를 가져온다.
이 경우 특히 점검해 보아야 할 사항은 카페인과 당분의 과다섭취 여부다. 유 교수는 “만성피로에 겹쳐 체중변화, 피부이상, 소화불량과 같은 변화가 일어나면 영양 불균형으로 인한 피로가 아닌지 의심해 볼 수 있다”며 영양부족보다 영양 과다섭취가 오히려 만성피로를 초래할 위험이 높다고 경고한다. 다음으로 스트레스, 우울증 같은 정신적 요인을 고려해볼 수 있다. 과도한 스트레스는 인체 에너지를 고갈시켜 몸 기능을 저하시킨다.
만성피로가 두통, 복부 통증, 체중 변화 증상을 동반하는 사람은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이 아닌지 의심해 볼 수 있다. 신체에 이상질환이 있을 때도 만성피로가 오는 수가 많다. 만성피로를 부르는 신체질환은 2백 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그밖에 지나친 컴퓨터 사용이나 밀폐된 건물 내에서의 장시간 근무, 음주와 흡연 등이 만성피로를 유발할 수 있고 여성의 경우 임신과 생리, 폐경이 원인이 될 수 있다.
피로가 무슨 병이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단지 ‘늘 피로한 상태’가 아니라 하나의 질병으로서의 만성피로증후군(Chronic Fatigue Syndrome; CFS)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만성피로증후군 환자들에게는 공통적으로 면역기능 장애가 발견되는데, 이 때문에 ‘만성피로 면역기능장애 증후군’이란 병명을 붙이기도 한다.
면역기능 장애가 일어나는 원인으로는 바이러스 감염, 스트레스, 독성물질 등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하나 아직 분명히 밝혀진 것은 아니다. 현재로서는 가장 확실한 원인으로 ‘바이러스 감염’이 꼽힌다. 바이러스에 대응하기 위해 세포가 효소물질을 만들어내는데, 이것이 비정상적으로 많아져서 면역장애가 일어난다. 만성피로증후군에게서는 이 효소물질이 뚜렷하게 많은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일시적인 피로감이나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사람들 가운데 “혹시 나도 만성피로증후군에 걸린 것이 아닐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피로를 못 견뎌 병원을 찾는 환자 중 실제로 만성피로증후군으로 진단되는 경우는 1백명 중 약 20명, 20% 정도라고 한다. 나머지 대부분은 당뇨병, 갑상선질환, 간염 등의 만성질환이나 약물복용 때문에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으로 밝혀진다.
미국 질병통제센터(CDC)의 연구에 따르면 만성피로증후군 환자는 전체 인구의 0.1∼0.3%(1천명 중 1∼3명) 정도로 파악된다. 증상은 흔히 20∼40대 성인에게서 나타나는데, 특히 고학력의 젊은 여성에게 많아 ‘여피 플루(Yuppie Flu)’라고도 불린다. 만성피로를 푸는 데는 무엇보다 건전한 생활습관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숙면을 취한다 가장 좋은 것은 숙면을 취함으로써 피로를 풀어주는 것이다. 특히 머리를 많이 쓰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숙면이 필수조건. 일터에서 돌아오면 곧바로 목욕을 하고 잠을 청하는 것이 최선이다. 점심식사 후 유독 졸음이 쏟아질 때는 책상에 엎드려서라도 5분 정도 자면 활기를 찾을 수 있다.
▲스트레스를 피한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스트레스를 안 받는 사람이 없겠지만 과도한 스트레스는 두통, 불면증, 심장병 등 만병의 원인이 되므로 되도록 신경을 덜 쓰고 마음을 편하게 갖는 것이 중요하다. 흡연이나 음주 습관은 건강을 해치고 만성적인 피로를 가져오는 직접적인 원인이다. 담배를 많이 피우면 뇌 속의 산소가 부족해져서 머리가 묵직하고 개운치 않으며 혈액이 온통 노폐물로 오염되어 신진대사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규칙적인 운동 규칙적으로 가벼운 운동 또는 체조를 하면 숙면에 도움이 된다. 갑자기 심한 운동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맨손체조와 가벼운 스트레칭, 산책 정도로 긴장된 근육을 풀어주도록 한다.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도 가볍게 체조나 운동을 하면 훨씬 거뜬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비타민 B₁, C를 먹어라 비타민과 미네랄, 양질의 단백질을 고루 섭취하는 균형 잡힌 식생활도 피로를 푸는 데 중요한 요인이다. 비타민 B₁이 풍부한 식품, 현미 율무 등 곡류와 호두 잣 등 견과류, 콩 돼지고기 닭간 말린버섯 등은 당질의 연소를 돕는 작용을 한다. 또 신선한 과일과 채소에 많이 들어있는 비타민 C와 미네랄은 피로를 줄이고 면역기능을 높여주는 작용을 한다.
▲아침을 거르지 않는다 아침을 거르고 점심에 과식을 하는 것은 피로감을 가중시키므로 매끼 꼬박꼬박 찾아먹고 가볍게 식사를 하는 것이 좋다. 특히 낮에는 졸음을 쫓는 성분이 있는 단백질 식품을 많이 먹고 밤에는 졸음을 부르는 성분이 있는 곡류나 과일 야채 해조류 등 당질 식품을 섭취하는 것이 요령이다.
▲지압도 한 가지 방법 집에서 하는 가벼운 지압은 피로를 풀어주는 효과가 있다. 먼저 바닥에 얇은 요를 깐 다음 지압 받는 사람은 편한 옷을 입고 힘을 뺀 채로 엎드린다. 지압은 심장에서 먼 부분부터 시작한다. 즉 머리-손발-팔다리-어깨-허리 순서로 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몸의 기운를 팔로 모으고 다시 손끝으로 모아서 엄지와 검지, 중지에 힘을 가한다. 살이 많거나 넓은 부분은 손바닥 끝부분(장압)을 이용해 누른다.
지압 받는 사람이 시원함을 느낄 정도의 압력으로 천천히 누르며 힘을 가한 후 서서히 힘을 뺀다. 한번 누를 때 6초 가량 누르는데, 특히 4초에 가장 깊이 눌렀다가 5, 6초에 살짝 위로 뗀다. 음주나 식사 후, 목욕 후에 지압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혜민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