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9월 A 양과 친구 B 양이 서울 초안산 기슭에서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 가해자가 22명이나 되고 2명의 여중생이 피해자다. 가해자들은 술을 먹여 두 여중생을 혼절시킨 뒤 번갈아가며 성폭행했다. 너무나 끔찍한 사건이었지만 두 피해 여학생은 이를 경찰에 신고하지 못했다. 당연히 집단 성폭행을 자행한 고등학생들 역시 아무런 일 없었다는 듯 학교를 다니는 등 일상생활을 이어갔다.
왜 피해 여중생들이 경찰에 신고를 하지 못한 것일까. 이에 대해 경찰은 가해자들이 대부분 피해 여학생의 집 주위에 사는 이웃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너무 어린 나이에 충격적인 집단 성폭행을 당해 정신적인 충격이 컸던 데다 행여 가해자들이 보복을 하지 않을까 걱정돼 신고를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는 지난 2012년 8월에 시작됐다. 사건이 발생하고 1년가량 시간이 지난 뒤지만 피해자의 신고가 없었기 때문에 수사기관에선 사건의 존재조차 파악할 수가 없었다. 경찰이 해당 사건을 인지하게 된 것 역시 매우 우연스러웠지만 그만큼 필연적이었다.
당시 서울 도봉경찰서에서 근무하던 김장수 경위는 다른 고등학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수사하던 중이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사건에 대한 첩보를 입수하게 됐다. 조사받던 피의자 가운데 한 명이 “나를 제외한 다른 피의자 3명은 1년 전에도 또 다른 피해자인 여중생들을 집단 성폭행을 했다”고 말한 것. 그렇게 김 경위는 수면 아래에 감춰져 있는 집단 성폭행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게 된다.
힘겹게 피해 여중생들을 찾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어 1년 전 사건에 대해 진술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로 인해 당시 경찰은 이 사건을 ‘내사 중지’로 결론냈다.
이번 사건을 담당한 도봉경찰서.
그렇지만 김 경위는 그렇게 포기할 수 없었다. 우선 피해 여학생들을 돌보는 것으로 첫걸음을 시작했다. 여중생들의 회복을 위해 심리 상담센터를 소개했고 꾸준히 유대 관계를 형성했다. 피해 여성들의 눈높이에 맞춰 대화를 시도하고 조금이라도 피해자의 입장을 헤아려 다가가려 노력했다.
그러는 도중 김 경위는 승진을 하게 된다. 당연히 승진은 기쁜 일이지만 이로 인해 다른 경찰서로 발령이 났고 자연스럽게 이 사건과 멀어지게 됐다. 그렇지만 반드시 이 사건을 해결하겠다고 결심한 김 경위는 다시 도봉경찰서로 돌아와 여성·청소년과에 지원했다. 김 경위의 노력에 조금씩 피해 여성들도 세상에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드디어 지난 2월 A 양과 B 양은 피해 사실을 진술했다. 3년 6개월여의 노력과 정성이 비로소 피해 여성들의 닫힌 마음의 문을 연 것. 그리고 3월 정식으로 고소장을 접수 받으면서 경찰은 이제 본격적인 수사에 돌입했다.
힘겹게 입을 연 두 피해 여성에 진술 내용에 따른 사건의 실체는 대략 다음과 같다. 사건은 2011년 9월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김 아무개 씨와 정 아무개 씨 등 동년배 5명은 호기심에 맥주를 사먹고 있는 여중생 A 양과 B 양을 목격하게 된다. 이에 김 씨 일당은 “술을 마신 것을 다 봤으니 학교에 얘기하겠다”며 “시키는 대로 하라”고 협박한 뒤 여중생들의 휴대폰 번호를 알아냈다.
그리고 6일 뒤 이들 일당은 A 양과 B 양에게 연락해 “안 오면 학교에서 잘리게 해주겠다”고 협박해 오후 9시경 동네 야산으로 불러냈다. 그리곤 두 여중생에게 술을 먹여 정신을 잃게 만든 뒤 4명이서 B 양을 집단 성폭행했다. 당시 야산에는 모두 11명이 있었다. 이 가운데 4명은 B 양을 성폭행했고 나머지 7명은 성폭행을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쳤거나 범행을 방조했다.
다시 8일이 지난 뒤 늦은 밤 일당이 여중생들을 또 불러냈다. 이때 일당은 총 22명이었다. 또 다시 이뤄진 집단 성폭행. 이번에는 6명이 두 여중생을 성폭행했다. 나머지 16명은 성폭행이 미수에 그치거나 성폭행을 방조했다.
여중생들은 이렇게 두 차례에 걸쳐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 경찰은 우선 피해 여성들이 기억하고 있는 피의자 6명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 이들 6명에 대해 각자의 범죄 행위를 확인한 경찰은 추가 가담자들까지 순차적으로 파악했다.
2011년 사건 당시 피해 여성들은 중학생이었다.
5년여의 시간이 흐른 뒤 수사를 시작한 경찰이 찾아낸 22명의 가해자들은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가해자 22명 무리는 같은 학교에 다니진 않지만 대부분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 사이로 알려졌다. 성폭행을 했던 2명을 포함한 가해자 12명은 군 복무 중이다. 이 외에 10명은 대학에 다니거나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경찰은 6월 28일 특수강간 및 공동협박으로 김 씨 등 3명을 구속하고 또 다른 주범도 30일 구속했다. 또한 강간미수 혐의를 받고 있는 6명은 불구속 입건했다. 이렇게 경찰은 4명 구속, 6명 불구속 등 10명을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가해자 대부분이 자신의 혐의에 대해 인정했다고 한다.
나머지 가해자 12명은 현재 군 복무중이다. 현재 이들은 경찰 조사를 마친 뒤 군 당국에 신병을 인계했다. 군 복무 중인 12명의 가해자 가운데 2명은 특수강간 혐의를 받고 있다. 군 당국도 이번 사건에 있어 경찰에 원활한 협조를 했다고 한다.
한편 범행 당시 민간인이더라도 현재 군인이면 군사법 절차에 따라 수사와 재판을 받게 된다. 다만 처벌 적용 법률은 민간과 동일하다. 법무법인 열린사람들 배순도 변호사는 “가해자가 현역 군인이라면 민간 경찰에서 군 헌병대에 사건을 이첩한다. 소속 부대 관할 군 헌병대는 수사 뒤 사건을 관할 군 검찰로 송치하며 군 검찰이 기소하게 되면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며 “민간법원에서 재판받는 민간인과 군사법원에서 재판받는 현역 군인 모두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 기준을 적용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
김장수 경위 “소녀들의 한 꼭 풀어주고 싶었다” 이번 사건은 한 수사관의 끈질긴 사명감 덕에 범행의 전모가 드러나게 됐다. 도봉경찰서 여성․청소년 수사팀 김장수 경위가 바로 그 주인공다. 4년 전 다른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 사건의 존재를 파악한 김 경위는 승진해서 다른 경찰서로 발령이 났지만 이 사건 해결을 위해 다시 도봉경찰서로 되돌아와 결국 수사를 마무리했다. 김장수 경위. “첩보를 입수한 뒤 A 양을 먼저 만날 수 있었다. 피해자들은 당시 정신적 충격과 사건의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다. 접근할 수 없었을 정도였다. 이에 사건의 심각성을 느끼고 이 사건을 꼭 해결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또 한 번 시작을 했기에 책임감 있게 마무리를 짓고 싶은 마음도 컸다.” ―가해자가 22명이나 된다. 첩보를 입수한 당시에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나? “첩보 당시엔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보니 가해자가 상당히 많을 것이란 느낌을 받았다. 가해자가 22명이나 된다는 부분은 수사를 재개하게 되면서 알게 됐다.” ―피해자의 마음을 열기 위한 특별한 방법이 있었나?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항상 생각했다. 당시엔 피해자들이 어렸기에 그 나이대 눈높이를 가지려고 노력했다.” ―이번 사건과는 별개로, 가해자와 피해자와 유대 관계를 쌓는 데 차이점이 있는가? “가해자든 피해자든 무관하게 ‘마음이 통한다’는 생각으로 유대 관계를 쌓고 있다.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또한 수사에 있어서 항상 수사의 원칙과 법적 절차를 준수하려고 노력한다. 가해자의 민원은 감수하더라도 피해자의 입장을 생각해 진실을 밝히려고 고군분투하고 있다.” ―앞으로의 포부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선 ‘의지’가 있어야 한다. 형사가 천직이라 생각하고 살았다. 어떤 사건이 터져도 정면 수사해 피해자의 ‘한’을 풀어주도록 노력할 것이다.” [민] |
22명 가해자들, 소년법 따라 가벼운 처벌 예상 네티즌들 사이에서 이번 사건은 ‘제2의 밀양 사건’으로 조명되고 있다. ‘밀양 사건’이란 지난 2004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고등학생 44명이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에 연루된 일이다. 당시 검찰은 범행에 가담한 44명 가운데 10명만 기소했다. 나머지 34명 가운데 20명은 소년부에 송치했고 13명은 피해자와 합의했거나 고소장에 포함되지 않아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됐다. 2005년 4월 울산지법은 기소된 10명 전원에게 소년부 송치 결정을 내렸다. 피의자들은 소년법에 따라 보호 처분을 받으며 법적 처벌이 마무리됐다. 이런 가벼운 처벌에 국민들은 분노했다. 이번 사건 또한 국민 정서에 비하면 비교적 가벼운 처벌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범행 당시 가해자들은 모두 18세 미만의 청소년이었기 때문에 ‘소년법’을 따르게 되기 때문이다. 소년법 제 59조 사형 및 무기형의 완화에 의하면 죄를 범할 당시 18세 미만인 소년에 대해 사형 또는 무기형으로 처할 경우에는 15년의 유기징역으로 한다. 소년법 제60조 부정기형에 의하면 소년이 법정형으로 장기 2년 이상 유기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경우엔 그 형의 범위에서 장기와 단기를 정해 선고한다. 다만 장기는 10년 단기는 5년을 초과하지 못한다. 따라서 국민들의 생각보다 형이 낮게 나올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미수 혐의나 방조 혐의를 받고 있는 가해자들은 어떻게 혐의 입증이 가능할까. 법무법인 천일 노영희 변호사는 “동영상이나 사진 등이 없고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피해자의 진술과 가해자의 자백은 범죄의 증거로 인정된다. 특히 이번 사건 같은 경우엔 여러 명의 가해자가 연루됐고 대부분이 자신의 혐의를 인정했다. 그들의 자백이 가해자 서로 서로에겐 증거가 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