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전말은 대략 이렇다. 지난 6월 20일 인도양 세이셸 군도 부근에서 광현 803호에 타고 있던 베트남 선원 A 씨와 B 씨가 선장 양 아무개 씨(43)와 기관장 강 아무개 씨(42)를 살해했다. 이날 선원 10여 명이 양주 2병을 나눠 마셨는데 피의자인 A 씨와 B 씨는 만취상태였다고 한다. 만취 상태에서 선장과 기관장을 살해하는 끔찍한 범행이 벌어진 것. 인도네시아 출신 선원이 이를 발견하고 선실에서 휴식중인 항해사 이 아무개 씨(50)에게 알렸다. 다행히 이 씨는 A 씨와 B 씨를 제압해 선실에 격리했다. 이 씨는 선사에 연락했고 선사는 해경 당국에 신고해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광현 803호 모습. 사진제공=부산해경
아직 살해의 원인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만취상태의 우발적인 범행이라고 보기엔 몇 가지 결정적인 의혹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피의자들은 단순한 살해를 넘어 시체를 난도질하는 수준의 범행을 저질렀다. 뿐만 아니라 10여 명이 양주 2병을 돌려 마셨는데 사람을 살해할 정도로 만취한 것도 쉽게 이해할 수 없다. 해경 역시 평소 원한 관계 여부에 초점을 두고 수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 씨와 B 씨는 지난 6월 30일 국내로 압송돼 7월 1일 오전 영장실질심사를 받았다. 해경 조사에서 이들은 평소 “작업이 서툴고 느리다”는 등의 이유로 선장과 기관장에게 욕설을 듣고 구박을 당하는 등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은 데 앙심을 품고 계획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선원들과의 공모 여부도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현재로서는 A 씨와 B 씨만 피의자로 특정돼 있지만 이외에 다른 선원들이 같이 공모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6월 27일 선원 4명이 한국에 들어와 참고인 조사를 벌였다. 해경 관계자는 “해경 역시 공모에 대해서 우선시해서 볼 예정”이라며 “참고인들은 범행 공모는 부인하고 있지만 그건 일방적인 진술이고 피의자의 진술을 가장 중요시하게 들을 것”이라고 전했다.
부산해양경비안전서 전경.
한국 선원들을 쓸 수는 없을까. 앞서의 선원은 “인도양까지 가서 고기를 잡는 원양어선은 노동 강도에 비해 저임금이다”며 “요즘 한국인들은 그런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은 필요하다보니 외국인으로 충원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선박회사는 해외 에이전트를 통해 선원을 모집한다. 에이전트는 항해 경험, 신체 조건 등을 기준으로 선원을 선발해 보내준다. 범죄에 대한 경력까지 조회해서 걸러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이를 확인하기 힘들고 결국 에이전트의 말을 믿어야 하는 상황이다. 한 선원은 “에이전트에 뇌물을 줘서 한국 선박회사에 취직한 선원도 꽤 많다”고 했다. 광동해운 소속 선원들은 기본급 180만~230만 원가량을 받고 성과에 따른 성과급을 추가로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동해운 사무실 안은 아무도 없는 상태였다.
그렇다면 평소에 선장과 기관장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지난 6월 30일 <일요신문>이 광현 803호가 소속된 광동해운 사무실을 방문했으나 사무실은 비어있었다. 전화도 받지 않았으며 주변 사람들 역시 “이 사무실에 사람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밝혔다. 대신 사무실에서 선박에 대한 안전관리매뉴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매뉴얼에 따르면 10인 이상 선박의 경우 선장을 제외하고 안전 담당자, 응급 처치 담당자, 통신장 등을 따로 둬야 한다. 광현 803호는 선장, 기관장, 항해사 등 한국인 3명에 인도네시아 선원 8명, 베트남 선원 7명 등 총 18명이 승선했다. 그러나 해경에 따르면 광현 803호는 통신장을 따로 두지 않고 선장이 담당했다고 한다. 안전 담당자 등 다른 담당자를 뒀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해경 관계자는 이에 대해 “현재 해경이 수사하고 있는 포인트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고 전했다.
광동해운은 지난 2013년 9월에 설립된 회사로 연 매출은 약 40억 원 정도다. 최근에는 선박 수리업체 에스엔케이조선을 인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동해운의 또 다른 선박인 광현 801호와 광현 802호도 통신장 없이 출항해 적발된 상태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