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었을 리가 없어요! 아마 조희팔은 지금 본인이 죽었다는 뉴스를 보면서 웃고 있을 겁니다.” 조희팔에게 거액을 사기당한 이 아무개 씨는 이번 검찰 발표를 보고 분통을 터뜨렸다. 검찰이 지난 경찰 수사 발표에 이어 이번에도 조 씨가 이미 사망했다며 수사 자체를 끝냈기 때문이다.
국내 수사기관은 조희팔의 범행이 진행 중이던 2006년부터 조 씨의 범행을 수사했지만 조희팔과 강태용 등 범행의 주범들이 해외로 도피해 생사를 확인하지 못했을뿐만 아니라 전체 범죄수익의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조 씨가 2008년 말 중국으로 밀항해 2011년 중국에서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는 수사 결과만이 발표됐다.
조 씨는 지난 2006년 금융다단계회사를 세워 의료기 임대사업 등을 빙자한 사기범행을 계획했고 지난 2008년 10월까지 대구에서 인천, 부산 등지로 영역을 확대해가며 24개의 법인을 이용해 5조 원을 넘는 매출을 올렸다. 이번 검찰 재수사를 통해서야 겨우 전체 범죄수익의 규모가 어느 정도 드러났다. 검찰 추산에 따르면 5조 원이 넘는 매출 가운데 실제 범죄수익금은 총 매출액에서 피해자들에게 수익 등의 명목으로 지급된 4조 8701억여 원의 자금을 제외한 2900억 원이다.
‘조희팔 사망’이라는 검찰의 공식 발표에 피해자들이 부실한 수사를 주장하며 반발하고 있다.
경찰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조희팔 생존설’에 무게가 실렸던 큰 이유는 조 씨가 사망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 조 씨의 시신 확인 절차 없이 장례식 및 화장 당시 영상만 확인됐고 중국에서 발행한 사망의학증명서에 직인이 없다는 점 등이 ‘조희팔 생존설’의 의혹으로 손꼽혔었다.
검찰은 당시 조 씨와 함께 있었던 내연녀 김 아무개 씨와 장례식, 화장장 등에 참석한 가족 등 14명을 조사해 조 씨의 사망 사실에 대해 일관된 진술을 얻었다고 밝혔다. 대검 과학수사부의 감정결과에 따라 장례식 영상이 위조되지 않았다는 점도 드러났다.
또 조 씨의 사망 직전 치료를 담당했던 중국인 의사를 상대로 자신이 치료하다 사망한 환자가 조 씨가 맞다는 진술도 받았다. 검찰은 물적 증거를 제시하기도 했다. 사망 직후 가족들이 보관했던 조 씨의 머리카락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낸 것이다. 머리카락과 조 씨 가족의 DNA 일치 여부를 분석했고 감정 결과 조 씨의 모발로 확인됐다. 다만 화장된 조희팔의 유골에 대한 DNA 감정도 시도했지만 고열로 염기서열이 훼손돼 판단할 수 없었다. 검찰은 이에 따라 ‘언론에서 제기한 조희팔의 생존 여부에 대한 의혹을 모두 확인했으나 조희팔의 생존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발견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아직도 조 씨의 사망을 확신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대표적인 조희팔 피해자 단체인 ‘바른 가정경제 실천을 위한 시민연대(바실련)’는 ‘검찰의 무기력한 수사 결과 발표에 유감을 표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바실련 회원들은 “검찰의 무기력하고 다급했던 수사 결과 발표에 유감을 표한다. 조 씨의 측근들이 제출한 사망진단서, 동영상, 머리카락 등은 허위날조가 가능하거나 연출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언론과 전문가들의 검증으로 드러난 지 오래다”며 “지난 4년간 보이지 않던 머리카락은 어디서 갑자기 나온 것이냐. 피해자들은 조 씨의 생존 증거를 확보해 공개할 것이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전국에 7만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이들 가운데 60%에 해당하는 서울, 경기 지역 내 피해자들의 피해내역은 집계조차 되지 않고 있다. 이들은 “매출이 가장 적은 센터의 하루 피해액만 계산해 봐도 1억 2000만 원이다”라며 “피해금액은 최대 수조 원이다. 이들이 거둬들인 수익금이 2900억 원이고 피해자들의 손실액이 8400억 원뿐일 리가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들에게 조 씨의 은닉재산을 낱낱이 찾아내 돌려주는 것을 목표로 재수사를 시작했지만 보전된 금액은 847억 원에 불과하다.
또 피해자들은 입을 모아 조 씨가 살아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요신문>은 지난 1월 당시 조희팔의 생존 증언을 입수했다. 제보자는 조 씨가 중국으로 밀항한 2008년 12월부터 지난 2015년까지 조 씨를 만났다는 최측근 A 씨로부터 조 씨의 근황을 접했다고 말했다. 제보자에 따르면 조 씨는 친형 조희필과 함께 중국 산둥성 일대에서 은신 중이며 은닉자산 관리를 조희필이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A 씨가 조희팔이 타고 다니던 차량도 기억하고 있었고 조희팔 최측근의 이름들을 모두 알고 있었다.
또 지난 6월 30일 <일요신문>은 조희팔 관련 문건을 하나 확보했다. 조희팔 사건의 한 피해자인 김 아무개 씨(47)가 제보한 것이었다. 김 씨에 따르면 장 아무개 씨(25)가 문건을 작성했다. 장 씨는 조희팔 측근이 공유하던 범죄은닉자금의 흐름에 대한 녹취 및 문서 자료를 본인이 정리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장 씨는 얼마 전까지 조희팔의 오른팔로 알려진 곽 아무개 씨와 6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함께했고 출소 후에도 한동안 곽 씨의 심부름꾼 역할을 수행해온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해당 문건에는 조희팔 측에서 조희팔 사망 결론을 내린 경찰과 검찰에 거액의 뒷돈을 지급했다는 내용이 요약돼 있다. 조희팔 측에서 조희팔 사건의 무마 및 사망 결론을 위해 경찰과 검사에게 각각 17억 원과 16억 원을 지급했다는 것. 또 수감 중이던 조 씨 측근들의 구치소 내 생활 편의를 위해 구치소 관계자들에게도 일정 금액을 지급했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지난 6월 28일 검찰은 조희팔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관들이 뇌물 수수를 대가로 수사를 지연시키는 등의 비리를 적발했으며 검찰사무관 등도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문건에는 새로운 경찰, 검사의 이름과 금액이 적혀 있어 또 다른 비호세력이 아니냐는 의혹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문건의 진위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장 씨의 문건을 받은 피해자인 김 씨는 “장 씨가 작성한 문건은 진짜 문서 내용을 알지 못하면 작성할 수 없을 정도로 세세하고 정확해서 믿을 만하다”며 “경찰 수사로 이 문건을 바탕으로 한 원래 문서가 확보된다면 조희팔 사건의 진위를 밝혀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