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궁동 2인조 사건 수사 기록 일부
# 공무원 사칭
부산 사하경찰서 소속 형사들이 최 씨를 찾아온 건 1991년 11월 8일 오후 3시다. 친척이 운영하던 김 양식장에서 작업을 마치고 돌아와 막 선착장에 내리던 참이었다. 이틀 전, 자연보호 활동을 하던 최 씨가 엉겁결에 한 남성이 쥐어준 3만 원을 받은 게 화근이었다. 무면허 운전 교육을 하던 남성은 최 씨를 공무원으로 오인하고 “봐달라”며 돈을 건넸다.
당시 최 씨는 부산시 소속이었다가 해체된 한 자연보호 단체의 일원이었다. 다시 단체 구성원을 모집하면서 홀로 활동하고 있었다. 최 씨는 앞서의 남성에게 돈을 받은 날 단체에서 사용하던 경광봉과 수첩 등을 가지고 있었고, 차에는 스티커가 부착돼 있었다.
최 씨를 찾아온 앞서의 경찰은 “서까지 임의 동행을 하자”고 했다. 최 씨의 차량 번호를 외워둔 앞서의 남성이 경찰서에 확인을 한 뒤 ‘공무원 사칭’으로 신고한 것이다. 경찰은 최 씨에게 “서에 가서 간단히 몇 마디만 하면 된다”고 했다. 최 씨가 경찰서에 도착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돈을 받은 날 함께 있었던 장성익 씨(가명)도 형사들과 함께 들어왔다.
최 씨는 경찰에 “오해였다”고 진술했다. 돈을 받은 건 맞지만 공무원 사칭은 아니라고 했다. 경찰은 믿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앞서 관내에서 발생한 사건이라며 19건의 강도 사건을 두고 최 씨와 장 씨를 폭행하며 의심하기 시작했다. 임의동행 다음날인 1991년 11월 9일 오후 11시, 두 남자는 ‘자백’했고 경찰에 구속 된다.
# 불법 체포
최 씨와 장 씨는 1991년 11월 8일 오후 3시부터 다음날인 9일 오후 11시까지 총 32시간 동안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이들은 1991년 11월 9일 구속됐지만, 기록에는 8일부터 경찰서에 머물렀던 것이 확인된다. 부산 사하경찰서에서 작성된 수사 기록을 보면 11월 8일 장 씨가 공무원 사칭 혐의에 대해 직접 쓰고 지장을 찍은 자술서가 포함돼 있다. 두 남자가 구속된 9일에는 자술서를 기반으로 한 피의자 심문 조서가 작성됐다.
처음 경찰서에 들어온 이후 한 달간 최 씨와 장 씨는 가족도 만나거나 전화통화를 하지 못했다. 경찰서와 유치장을 제외하면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했다. 만약 고문과 폭행이 없었다 하더라도, 경찰은 여기서부터 법을 어겼다. 형사소송법 절차를 무시한 위법한 체포다. 먼저 경찰관직무집행법상 ‘임의동행’(3조 2항 단서)을 보면, 임의동행은 6시간을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3조 6항)돼 있다. 경찰은 무려 26시간을 초과했다.
또한 임의동행은 경찰관직무집행법에 의해 ‘경찰관이 거동수상자에게 질문을 하기 위한 임의동행’과 형사소송법상 199조의 해석상 임의수사의 한 방법으로 ‘피의자의 출석확보를 위한 수단으로 인정되는 임의동행’이 있다. 최 씨와 장 씨 사건에서 임의동행은 후자의 경우다. 하지만 앞서의 법령에 따르면 임의동행은 피의자가 전적으로 임의로 수사에 협력하는 것으로, 출석 후의 조사도 강제적으로 이뤄져서는 안 되며 퇴거를 원할 때는 즉시 돌려보내줘야 한다.
대법원 판례에서도 동행을 거부할 수 있음을 알려주거나, 동행과정에서 언제든지 이탈, 퇴거할 수 있었음이 인정되는 등, 오로지 피의자의 자발적인 의사에 의해 동행한 것이 객관적인 사정에 의해 명백하게 입증돼야 한다고 나와 있다. 동의 있는 승낙 유치도 허용하지 않는다. 수사의 편의상 피의자를 임의동행한 경우에도 보호실 등에 계속 유치했다면 구금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 ‘피해자가 없는’ 사건
경찰은 신고가 접수된 앞서의 공무원 사칭 사건에 더해 18건의 사건을 추가했다. 수사 기록을 보면, 모두 1991년 8월부터 11월 사이에 발생한 금품 갈취 및 강도 사건이었다. 범행 대상은 모두 운전 연습을 하거나, 차 안에서 데이트를 나누는 커플 등이었다.
그런데 이 사건들에는 ‘피해자’가 없다. 부산 사하경찰서에서 작성된 ‘공무원 자격사칭 및 공갈 피의자 최현철 등의 범행 일람표’를 보면 날짜와 시간, 차종, 갈취 금액이 명시돼 있지만 유독 피해자는 수사 기록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일체불상 20대 남자, 30대 여성’ 등으로만 기록돼 있을 뿐이다. 차량 번호판과 피해자까지 특정된 사건은 신고가 접수된 앞서의 공무원사칭 사건 단 하나다.
피해자가 없으니 경찰은 대질심문은 물론 피해자가 용의자를 확인하는 범인식별절차도 생략했다. 하지만 대법원 판례를 보면, 범인식별절차는 △범인의 인상착의 등에 관한 목격자의 진술 내지 묘사를 사전에 상세히 기록화한 다음, △용의자를 포함해 그와 인상착의가 비슷한 여러 사람을 동시에 목격자와 대면시켜 범인을 지목하도록 해야 하고, 하고, △사후에 증거가치를 평가할 수 있도록 대질 과정과 결과를 문자와 사진 등으로 서면화 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는 등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고 나와 있다. 범인이 자백을 했어도 같은 절차를 따라야 한다.
하지만 경찰은 최 씨와 장 씨의 자백만을 토대로 19건의 강도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피의자 최현철의 자백에 기하여 단독으로 상습 공갈 범행이 인정 된다면 보강 증거가 있어야 할 것임에도 아무론 보강증거 없이 만연히 기소 의견 송치한 잘못이 있다”고 경찰 수사를 지적하며 단 두 건의 사건만 재판에 넘겼다. 이후 사라진 사건들은 검찰 조사, 재판 과정에서 단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는다.
경찰은 18건의 강도 사건을 두고 최 씨를 의심했다. 협박 끝에 금품을 갈취 당한 사건들이지만 피해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 경찰이 피해자다
검찰 지적 이후 새로운 강도 사건이 추가 된다. 1991년 11월 11일 오전, 경찰은 돌연 두 남자를 부산 중부경찰서로 데리고 갔다. 특별히 경찰서를 옮길 상황은 아니었다. 어떤 사유로 이동하는지 별다른 설명은 없었다.
그런데 오후 2시, 해당 경찰서 소속 한 아무개 순경이 찾아와 갑자기 두 남자에게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영문을 몰라 아무 말도 못하는 두 남자에게 앞서의 순경은 “이놈들에게 강도를 당했다”며 “너 나 알지”라고 윽박질렀다. 해당 순경은 1989년 12월 새벽, 부산 사하구 신평동 인근 강변도로에 세워 놓은 자신의 차량 안에서 데이트를 하다 강도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두 남자가 검거되기 2년 전에 발생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의 기록에서도 석연치 않은 정황이 발견된다. 먼저 순경은 강도를 당했다고 주장하면서도 사건 발생 이후 신고를 하지 않았다. 검찰 조사와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후에는 “강도를 당한 차량은 빌렸으나 어딨는지 모르겠다” “동석한 여성은 처음 만난 여성이라 연락이 되지 않는다” 등의 주장을 했다. 사건에 대해서는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하는가 하면, 두 남자의 인상착의 대해 ‘큰 놈, 작은 놈’이라고 표현하며 “두 남자가 잘못을 시인했다.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도 검찰과 재판부는 경찰 조사와 앞서의 순경의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유는 두 남자가 ‘자백’했다는 것, 단 하나였다.
# 공통점
다음은 순경의 경찰 진술 내용이다. “한 명은 체격이 크고 험상 굳습니다. 또 다른 한 명은 체격이 작고 야윈 얼굴입니다. 둘 다 경상도 말씨를 사용합니다. 이들은 시정되지 않은 차 문을 열려고 식칼 뒤로 유리를 파손한 뒤 침입했습니다. 이후 7만 원을 갈취했고 옷을 벗으라고 한 뒤 저를 트렁크에 밀어 넣고 운전한 뒤, 차를 버리고 도주 했습니다.”
이 진술은 미제살인사건 기록에서도 똑같이 등장한다. 두 남자가 검거되기 약 1년 전 발생한 ‘엄궁동 부녀자 살인사건’의 숨진 피해자와 함께 있던 피해 남성의 진술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순경은 살인 사건을 담당한 경찰서 소속도 아니고, 접해본 적도 없다. 이를 토대로 경찰은 “과거 미제 사건을 확인하다 보니 피의자 수가 2명이고 시간과 장소, 수법이 동일하다”며 두 사건의 공통점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제, 두 남자는 살인범이 된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