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최고의 명문대를 나온 그는 극소수만 사법고시에 통과하던 시절 대학재학 중 합격했다. 검사로 승승장구해서 권력의 핵심에 있었다. 동기검사들조차도 그에게 반말을 못하고 눈치를 봤다. 그는 내게 초임검사 때도 임지에 가면 역에 의장대가 도열해서 팡파르를 울리며 기차에서 내리는 자기를 환영했었다고 자랑했다. 그는 내게 무시당했다고 착각한 것 같았다.
검사에 대한 사회의 지나친 대접이 젊은 그에게 턱없는 자의식을 심어 준 것 같았다. 사실상 나는 그와 나이차이가 별로 없었다. 직속 부하도 아니었다. 우연히 탄 한 배에서 만나 잠시 인생길을 갈 뿐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지 않았다. 계급의 구조 속에 구겨 넣고 지배하고 싶어 했다. 나는 그를 관찰했다.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좋은 친구가 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서열이나 지위가 관계의 장애가 되었다. 다 그런 건 아니었다. 형이나 친구같이 살갑게 대해주는 검사들이 더 많았다. 도대체 왜 그런 부자연스러운 현상이 나타났을까.
사법연수원 다니던 시절이었다. 검찰실무를 담당한 교수는 만약 검사가 되면 누가 아는 체해도 목을 꼿꼿이 세우고 인사를 받지 말라고 했다. 브로커에게 이용당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검찰청으로 실무수습을 나갔을 때였다. 부장검사는 우리에게 30년 나이를 더 먹은 사람까지는 맞먹어도 된다고 가르쳤다. 지금은 그런 풍토가 없어졌지만 젊은 검사에게 늙은 사람이 와서 영감님이라고 하면서 고개를 숙이던 시절이었다.
친하던 연수원 동기생들 중에는 검사가 되어 그런 분위기에서 점차 달라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텔레비전에서 대통령과 검사의 대화가 방영된 후 “검사스럽다”라는 말이 돌았다. 교만하고 건방지다는 말이었다. 얼마 전 법원 앞에서 어깨가 꾸부정하게 되어 힘이 빠진 모습으로 변호사가방을 들고 가는 그를 만났다. 27년 전 내게 폭언을 했던 부장검사였다. 흐르는 세월은 그때의 기억을 픽 웃어 버리는 추억으로 만들어 버렸다. 내가 반가워서 그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이고 인사했다.
“오래간만입니다. 잘 지내시죠?”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그가 반색을 하며 손을 내밀었다. 그는 폭언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권력의 냄새가 빠진 그에게 이제야 진정한 친근감이 들었다. 시간이 가면 사람은 다 똑같아진다. 칼은 몸에 상처를 낼 뿐이지만 말은 상대방의 뼈를 꺾는다. 높은 자리에 있을 때 폭언보다는 향기를 뿌려야 하지 않을까.
엄상익 변호사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