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흥행 성적표가 참담하다는 데 있다. 김민희의 <아가씨>가 415만 관객(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7월 4일 기준)을 모은 것을 제외하면 100만 문턱이 쉽지 않았다.
<시간이탈자>와 <날 보러와요>가 각각 120만, 106만 관객을 모았고 나머지 영화들은 모두 100만 고지가 요원했다. <좋아해줘>는 84만 명으로 마쳤고, <그날의 분위기>와 <널 기다리며> 모두 63만~65만 명을 동원하며 고개를 떨궜다.
충무로 흥행보증수표 손예진의 ‘비밀은 없다’는 23만 관객에서 좀처럼 스코어가 상승하지 못하고 있다.
‘대작’으로 불리던 <해어화>는 48만 명을 모으는 데 그쳤고, 충무로의 흥행보증수표 중 한 명이라 불리는 손예진이 나선 <비밀은 없다>는 23만 명에서 좀처럼 스코어가 상승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배우 김혜수가 주연을 맡은 <굿바이 싱글>이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자존심을 회복했지만 여배우들의 체면이 말이 아닌 상황이다.
상업 영화의 미덕은 ‘손익분기점’을 맞추는 것이다. 제작비를 회수해야 또 다시 영화를 만들 여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배우가 주연을 맡은 영화 중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는 <아가씨>와 비교적 저예산 영화였던 <날 보러와요> 정도다. 때문에 영화계 내부적으로 여배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 제작에 대한 회의적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 왜 외면받나?
‘티켓 파워’라는 표현이 있다. 이는 영화에 출연하는 특정 배우가 관객을 끌어들이는 힘이다. 예를 들어 최민식, 황정민, 하정우, 강동원 등이 출연하면 일단 관객들이 ‘믿고 본다’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제작사들은 그들에게 6억~7억 원에 이르는 개런티에 수익에 따른 지분까지 보장하며 캐스팅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배우들의 티켓 파워는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김혜수, 손예진, 한효주 등이 각 세대를 대표하는 배우로서 굵직한 영화들의 러브콜을 받으며 충무로 여배우의 명맥을 유지해가고 있지만 톱클래스의 남자배우들에 비하면 무게감이 떨어지는 편이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배우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을 다루는 콘텐츠의 문제로 보는 것이 옳다. 관객들의 기대감이 높고, 일정 수준의 흥행이 보장되는 한국형 블록버스터는 대부분 ‘남성 프로젝트’다. 물론 이런 영화 속에서도 여배우들이 맡는 역할이 있지만 남성이 중심이 되고 곁에서 이를 받치는 수준인 경우가 많다.
대작으로 불리던 한효주의 ‘해어화’는 48만 명을 모으는 데 그쳤다.
여배우를 위한 기획이 부족한 것도 이유다. 대형 상업영화는 볼거리 제공을 위한 액션을 강화하며 여배우보다 남자 배우들을 선호한다. 반면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영화는 볼거리보다는 스토리 위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눈이 현란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극성 강한 TV드라마에 길들여진 관객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그 예로 <해어화>는 100억 원대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이었지만 다소 밋밋한 스토리 전개와 연출로 인해 관객들에게 외면당했다.
여배우들이 주연을 맡은 영화가 잇따라 실패한 것도 여배우를 위한 기획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특정 여배우의 전작이 성공해야 차기작도 믿고 찾게 되는 것인데 이미 한번 실망한 관객의 마음을 돌리는 것이 쉽지 않다. 이런 상황이 여배우를 필두에 세운 영화 제작을 주저하게 만드는 악순환을 반복시키고 있다”며 “게다가 20~30대 여성 관객이 영화 선택을 주도하는 편인데 이들이 남자 배우들이 주인공인 영화를 선호하는 것도 하나의 이유”라고 설명했다.
# 돌파구는 있다?
현재 충무로에서 가장 지명도 높은 여배우는 전지현이다. 영화 <도둑들>과 <베를린>으로 각각 1300만, 716만 관객을 모은 데 이어 <암살>에서는 영화를 이끌어나는 역할을 맡아 1270만 관객을 동원했다.
이에 앞서 심은경은 <수상한 그녀>로 865만 관객을 모았고, <과속 스캔들>과 <써니>는 신인인 박보영과 강소라 등을 앞세워 각각 822만 명, 736만 명을 동원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 영화의 성공을 점친 영화 관계자들은 거의 없었다. 관객들도 처음에는 의심했다. 개봉 초반 관객 유입이 미미했지만, “재미있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관객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상영관도 확대됐다. 이는 결국 배우의 인지도와 티켓 파워를 떠나 ‘재미있으면 본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확인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한 중견 영화사 대표는 “유명 배우와 감독, 탄탄한 시나리오와 대형 배급사의 지지 등은 성공을 위한 충분조건이지만 필수조건은 아니다”면서 “이런 영화들은 워낙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만큼 흥행에 성공해도 수익률이 높지 않다. 반면 참신한 스토리와 잘 짜여진 기획, 적재적소 캐스팅은 관객들에게 의외의 재미를 안기며 큰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의외의 흥행을 거둔 조여정의 <후궁> 스틸 컷.
또한 여배우들의 노출장면이 담긴 ‘19금’ 영화 역시 또 다른 돌파구라 할 수 있다. <아가씨>가 이를 증명했으며 이에 앞서 <후궁>과 <인간중독>, <은교> 등이 의외의 흥행을 거두며 새로운 스타 탄생을 알리기도 했다.
단, 노출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 노출에만 초점이 맞춰지지 않도록 하려면 15세 영화보다 더 치밀한 계산과 화면 연출이 필수적이다. 촘촘한 내러티브 속에 자연스럽게 유명 여배우의 노출 이슈가 겹쳐지면 흥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 다른 영화사 대표는 “노출은 남자배우들이 갖지 못한 여배우들만의 무기라고 할 수 있다”며 “김혜수, 김민희, 김고은 등이 노출 연기를 선보였지만 대중은 그들의 몸이 아니라 연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배우들을 설득시킬 만한 대본과 연출 의도를 갖고 물 샐 틈 없는 기획을 내세운다면 엄청난 폭발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