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60대 여장 동성애자가 그의 집에서 노숙인 2명을 살해했다. 사진은 사건 현장 모습으로 채널A 뉴스 화면 캡처.
[일요신문] 지난 7월 3일 부산시 동구 수정동의 한 주택의 월세방에서 2구의 부패한 시신이 발견됐다. 한 명은 전신에 흉기로 27군데를 찔려 숨졌고, 다른 한 명은 비교적 온전한 상태였으나 목을 졸려 숨진 것으로 보였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그날, 셋방의 창문이 닫히지 않은 것을 이상하게 여긴 집주인이 발견해 세상에 드러난 사건이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처음에는 셋방에 살고 있던 김 아무개 씨(66)가 숨진 것으로 생각했으나 발견된 두 시신은 김 씨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다. 경찰은 김 씨를 유력 용의자로 보고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6월 30일과 7월 3일 두 차례에 걸쳐 김 씨가 집주인에게 “사촌동생이 올 것인데 절대로 문을 열어주면 안 된다”고 전화를 걸었다는 사실을 알아내 발신지를 역추적, 경남 양산의 한 정신병원에 숨어있던 김 씨를 검거했다. 경찰에 붙잡힌 뒤 김 씨가 순순히 범행을 인정하며 밝힌 사실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김 씨는 동성애자였으며, 발견된 2구의 시신은 모두 그날 처음 만난 노숙인으로 성관계를 위해 집으로 불렀다는 것. 그리고 이들은 서로 김 씨와 성관계를 먼저 하겠다고 다투던 도중 김 씨에 의해 살해당했다. 더욱이 김 씨의 이와 같은 살인은 처음이 아니었다. <일요신문>이 김 씨의 과거 행적과 이번 사건 현장을 오가며 사건을 재구성해봤다.
김 씨는 지난해 7월부터 자갈치시장에서 엿장수로 생계를 유지해 왔다. 각설이 분장을 하고 엿을 파는 엿장수의 특성상 그는 여기저기 꽃과 색동천이 달린 한복을 입고 시장 바닥을 누볐다. 장사를 할 때만 여장을 한다면 아무도 김 씨에게 뭐라고 할 사람이 없었을 테지만, 김 씨는 평소에도 치마를 입고 가발로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채 화장까지 완벽하게 하고 다녔다. 150cm에 45kg, 왜소한 체격의 그는 ‘할아버지’보다 ‘할머니’라고 불리길 원하는 괴짜였다. 동네에서는 김 씨를 ‘누나’라고 부르며 따라다니는 50대 남성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주민들은 김 씨에 대해 “취향이라서 여자 옷을 입고 다니는 것으로만 알았지 집 안에 남자를 끌어들이는 줄은 전혀 몰랐다”고 놀라워했다. 주민들 사이에서 김 씨는 단지 기초수급자로서, 배가 고파 힘들어하는 것을 불쌍하게 여긴 주민이 음식을 주면 고맙다는 말을 반복하며 고개를 꾸벅거리는 소심한 할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사건이 발생한 부산시 동구 김 씨의 월세방에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다.
사건의 시작은 지난 6월 2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날도 김 씨는 해가 질 무렵 여장을 한 채 남자를 만나기 위해 부산역으로 향했다. 술에 취하기만 하면 긴 밤을 함께 할 남자를 찾았다는 그의 손에는 소주와 통닭 한 마리가 들려있었다. 부산역에서 그는 유명인이었다. 늘 여장을 하고 술에 취한 채 남자 노숙인들을 상대로 술주정을 부리거나 유혹한다며 인근 상인들 사이에서는 평판이 썩 좋지 않았다. 노숙인들 역시 여성 옷을 입고 기괴한 화장을 한 채 술을 함께 마시자며 들이대는 김 씨에 대해 “미친 X 아니냐”라며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고 한다. 김 씨가 늦은 저녁 시간대를 노려 부산역을 향한 것은 이 시간대에 노숙인들이 이미 대부분 술에 취해 있는 상태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제정신일 때는 김 씨를 거부하며 욕설까지 퍼붓었지만, 술에 취해있었을 때는 김 씨의 성관계 제안을 크게 거절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도 김 씨는 안주 없이 소주를 마시고 있던 노숙인 두 명에게 미리 준비한 통닭을 내밀며 접근했다. 피해자인 박 씨와 이 씨였다. 앉은 자리에서 소주 네 병을 비운 이들에게 김 씨는 “우리 집으로 가서 술을 더 마시자. 안주도 새로 만들어 줄 테니 좋은 것도 하자”라며 유혹했다. 술에 취한 상태라 김 씨가 남자라는 사실을 미처 눈치 채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이들은 김 씨를 따라 나섰다.
김 씨의 집으로 따라온 이들은 서로 먼저 김 씨와 성관계를 하겠다며 다투기 시작했다. 부엌에서 안주를 만들고 있던 김 씨가 소리를 듣고 “조용히 하라”며 말렸지만 술기운에 흥분한 이들은 심한 몸싸움까지 벌였다. 이에 김 씨는 과도를 들고 엉겨 붙은 박 씨와 이 씨 사이를 파고들어 이들을 갈라놓으려 했다. 그러나 150cm의 작은 키인 김 씨가 정상 남성 체격인 이들을 말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몸싸움을 벌이는 동안 김 씨가 휘두른 과도에 20여 차례가량 찔린 박 씨가 피투성이가 돼 먼저 쓰러졌다. 이에 정신을 차린 김 씨는 그 옆에 서 있던 이 씨에게 “왜 나를 말리지 않았냐”고 화를 내며 쓰러뜨렸고 결국 스카프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
순식간에 두 명을 살해한 김 씨는 지갑만을 챙겨 나와 곧바로 택시를 타고 부산역으로 향했다. 자신이 2006년부터 알코올 중독 치료 차 입퇴원을 반복해 왔던 경남 양산의 한 정신병원으로 몸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이 과정에서 김 씨는 급하게 내리다가 택시 안에서 지갑을 떨어뜨렸는데, 택시기사가 인근 지구대에 지갑을 맡겨 김 씨는 부산역에서 다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사건 발생 시간인 오전 3시로부터 약 7시간 뒤인 6월 28일 오전 10시께 김 씨는 지구대에서 지갑을 찾은 뒤 시신들이 널브러져 있는 자신의 집으로 다시 들어가 짐을 챙겨 나왔다. 이후 정신병원에 자진해서 입원해 몸을 숨긴 김 씨는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범행을 은폐하려다 결국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60대 동성애자인 김 씨의 삶은 기구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그는 14살에 부모를 여의고 5형제와 뿔뿔이 흩어졌다고 말했다. 각설이 분장을 하고 동네 엿장수를 따라다니다가 15살부터는 유랑 서커스단의 줄타기 단원으로 생활했다. 체구가 작았기 때문에 여자 옷을 입고 활동하면서 김 씨는 자신의 성 정체성에 계속 혼란을 가졌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22살이 될 때까지 서커스단원으로 생활했는데 그만 공중 줄타기 묘기를 연습하다가 추락하는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허리를 크게 다치면서 김 씨는 성 기능에도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 김 씨는 경찰 조사에서 그 때부터 여성이 아닌 오직 남성들과 성관계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고 한다.
김 씨는 술에 취하면 남자 노숙인들을 유혹하기 위해 부산역을 자주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역 전경.
서커스단을 나온 뒤에는 자갈치시장에서 고무줄과 수세미 등을 판매하는 좌판 상인을 했다. 이 당시 심각한 알코올 중독이었던 김 씨는 술에 취한 채 남자 상인들을 상대로 추파를 던지는 등 계속 문제를 일으켰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학대, 구타, 암매장 등 비인간적인 대우로 악명 높았던 부산의 형제복지원에 ‘알코올 중독자’라는 이유로 끌려가 1982년부터 약 5년 동안 그곳에서 머물렀다. 형제복지원에서 나온 이후에는 대구의 친척집에서 잠깐 거주했으나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 자갈치시장에서 엿을 팔거나 노점상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이러던 중 그는 2008년께 시장에서 만난 남성 A 씨(당시 45)를 자신의 집으로 유인한 뒤 성관계를 하고 목 졸라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김 씨는 A 씨를 살해하기 2년 전, A 씨가 자신에게 욕설을 퍼붓고 주먹을 휘둘렀다는 것에 앙심을 품고 있다가 범행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에서 7년을 선고 받고 복역한 김 씨는 지난해 7월에 출소했다. 출소한 뒤 부산시 수정동 소재의 사건이 발생한 집에서 월세로 지내 오다 이번 범행으로 또 다시 철창 신세를 지게 됐다.
현재 김 씨는 자신의 범행에 대해 모두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왜소한 체구로 성인 남성 두 명을 우발적으로 살인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계획 살인의 가능성이 비쳐지기도 했으나, 실제 김 씨는 오랜 기간 동안 서커스 줄타기를 통해 보통 남성들보다 팔 힘(악력)이 강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경찰은 판단했다. 다만 비슷한 범행을 같은 수법으로 또 다시 저질렀다는 점에서 정신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수사를 맡고 있는 부산 동부경찰서 관계자는 “김 씨가 알코올 중독 외에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없으며 사건 이전에도 성욕을 채우기 위해 몇 차례 부산역에서 노숙인들을 데려와 성관계를 가졌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라며 “현재 자신의 범행 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조만간 현장 검증을 거쳐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부산=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