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소재 현대카드의 음반판매점인 바이닐&플라스틱 앞에서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50여 명의 음반소매상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현대카드, 이런 영세 업종까지 꼭 드셔야 하겠습니까?’, ‘현대카드의 골목상권 침략 중단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다.
이들은 레코드 등의 음반을 소규모로 판매하는 50여 명의 LP 소매점주들로 이날 처음 다 같이 모였다. 이들이 모인 이유는 현대카드의 바이닐&플라스틱의 영업중단을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현대카드는 그동안 문화사업에 매진하는 행보를 보여 왔다. 지난 2006년 슈퍼콘서트를 시작으로 지난 2011년부터는 신진 아티스트와 연극, 뮤지컬, 무용 등 문화 영역을 국내에 소개하는 컬처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다. 또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인 현대카드 뮤직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어 현대카드는 지난해부터 LP와 음악 서적을 전시·소장하고 청음 공간 등 음반 체험 공간이 함께 조성된 ‘뮤직라이브러리’를 운영해오고 있다.
지난 6월 11일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 바로 옆에 대형음반매장인 바이닐&플라스틱이 문을 열어 음반 판매로 사업을 확대했다. 바이닐&플라스틱에는 4000여 종의 LP와 8000여 종의 음악 CD가 있어 고객들을 위한 음악 감상 및 판매를 위한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바이닐&플라스틱 전경
이에 인근에서 LP소매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을 시작으로 현대카드의 바이닐&플라스틱 운영에 대해 골목상권을 침해한다는 반발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들은 현대카드가 음반소매업에 진출하면 자본력이 약한 영세 판매자들의 매출이 줄어들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회현지하상가에서 LP를 판매하는 김지윤 씨는 “현대카드가 확장한 사업에 우리 점주들은 생계가 왔다갔다한다. 바이닐&플라스틱이 생긴 후로 매출이 절반으로 줄었다. 이대로 당할 수가 없다고 생각해 전국음반소매상 연합회를 만들었고 전국에서 이번 집회에 모였다”며 “현대카드가 정말 문화적 기여를 하고 싶다면 직접 매장을 운영하는 대신 뮤지션들의 음반 발매를 돕는 등 시장이 자생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이에 현대카드는 지난달 30일 중고 LP판매를 중단했다. 또 기존에 음반을 구매할 때 현대카드로 결제하면 20%의 할인혜택이 있었지만 이 할인율도 10%로 축소했다. 또 홍대, 용산 등 소규모 음반판매점을 소개하는 책자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점주들은 바이닐&플라스틱의 폐점만을 요구하고 있다. 홍대에서 음반점을 운영하는 유 아무개 씨는 “이전에는 하루에 5명 정도의 손님이 꾸준히 찾아왔지만 현대카드의 매장이 문을 열고 난 20일간 매장을 찾은 사람이 10여 명 뿐이다”며 “바이닐&플라스틱에서 판매하는 음반 중에서는 젊은 층을 타겟으로 한 힙합 장르가 많아 홍대 쪽이 직접적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음반소매상 연합회 회원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또 김지윤 연합회장은 “남들은 밥그릇 싸움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우리는 현대카드에 절대 피해보상을 요구한 적이 없다.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현대카드와의 상생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상을 요구할 계획도 없다”면서 “재벌기업이 음반소매점을 운영하는 한 영세 음반점과의 상생은 있을 수 없다. 폐점을 하지 않으면 현대카드 본사 앞 시위도 불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현대카드는 “바이닐&플라스틱은 뮤직 라이브러리에서 음반을 감상하던 고객들에게 이제는 원하는 음반을 소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생겨난 것이지 절대 수익사업이 아니다. 실제 방문하는 고객 중 음반구매비중은 그렇게 크지 않다”며 “이번 기회에 레코드 시장이 커져서 소매점들이 잘되기를 바라고 있다. 여러 개의 판매점으로 진출을 했을 때 골목상권을 침해한다는 말이 맞는 것인데 바이닐&플라스틱은 확장 계획도 없는데 억울하다”고 말했다.
지금도 이태원에서는 집회가 한창이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