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말, 다섯 번째 매각공고를 눈앞에 뒀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던 우리은행과 금융당국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우리은행 매각 작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민간 공적자금관리위원장인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가 느닷없이 “우리은행 지분 투자자는 유상증자에 참여해야 한다”며 “매각 공고 역시 입찰에 참여할 진성 투자자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발표한 것.
윤창현 공적자금관리위원장이 우리은행 민영화와 관련해 “지분투자자는 유상증자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해 금융당국을 당혹스럽게 했다. 연합뉴스
지난달까지 해외를 돌며 기업설명회(IR)를 진행했던 이광구 우리은행장은 몇몇 글로벌 금융사들로부터 제법 구체적인 제안을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이광구 행장이 미국계 글로벌 금융사 본사 관계자들과 직접 접촉하는 등 꽤 성과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면서 “매각 공고가 이뤄질 경우 연락해 줄 것을 요청한 금융사들도 여럿 있다”고 밝혔다.
또 금융당국은 우리은행 매각을 통해 구조조정 실탄을 마련하려는 의중을 품고 있었다는 전언이다. 우리은행은 총 지분 6억 7600만 주 중 51.06%를 예금보험공사가 갖고 있는데, 이 중 30%가량인 2억여 주를 4~10%씩 쪼개 파는 과점주주 매각 방식으로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
주당 1만 원에 조금 못 미치는 현재 주가대로 지분을 팔면 정부는 2조 원가량의 공적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금융당국은 이 돈을 조선업 구조조정 재원 등으로 활용할 계획까지 세워뒀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윤 위원장의 유상증자 발언은 한마디로 우리은행 민영화를 백지상태로 되돌리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윤 위원장이 유상증자론을 들고 나온 이유는 이렇다. 우리은행에 투입된 공적자금 원금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주가가 주당 최소한 1만 3000원은 돼야 한다. 하지만 현재 주가는 1만 원 밑에서 맴돌고 있기 때문에 이대로 매각이 진행된다면 30% 이상 손실이 발생한다. 따라서 주가 상승을 유도할 수 있도록 증자가 필요하고, 우리은행 주식 매입을 원하는 투자자는 유상증자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무리가 없는 이야기지만 여기에는 복잡한 셈법이 숨어 있다. 지금의 우리은행 매각방식은 전임 공적자금관리위원장 시절 세운 계획이다. 따라서 이 방법대로 매각에 성공하면 그 공(功)은 전임자의 몫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일관되게 우리은행 민영화를 주장해온 임종룡 금융위원장 또한 스포트라이트의 주인공이 될 전망이다. 반면 혹시라도 나중에 30%나 되는 공적자금을 손해본 데 대한 책임 소재를 따지기 시작할 경우 매각 시점에 위원장을 맡은 윤창현 위원장이 ‘독박’을 쓸 위험이 있다.
실제로 과거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매각한 일을 두고도 정권이 바뀐 뒤 헐값 매각 시비가 격렬하게 불붙었고, 매각 당시 현직에 있던 인물들이 책임자로 지목된 사례가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윤 위원장으로서는 우리은행 매각방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바꿔야 하고, 공적자금 100% 회수를 고집할 수밖에 없는 입장인 것이다.
금융당국 수장인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곤혹스런 처지다. 윤 위원장을 설득할 강력한 동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 역시 “손해를 보고라도 팔자”는 입장을 내비쳤다가는 나중에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는 데다 윤 위원장의 협조가 없으면 민영화를 밀어붙일 수 없기 때문이다.
임 위원장은 원칙론을 내세우면서 한편으로는 당국자들과 대책을 숙의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우리은행 본점에서 열린 예금보험 관계 설명·확인제도 시연 행사에서 “우리은행 민영화는 꼭 필요하다. 매각 여건이 긍정적으로 변화되고 있으니 그런 점을 감안해 의지를 갖고 매각을 추진할 것”이라며 매각 의지를 재천명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같은 날 그는 이광구 행장, 곽범국 예보 사장 등과 비공개 면담을 갖고 우리은행 지분 매각에 관해 머리를 맞댔다. 이날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이에 대해 윤 위원장을 비롯한 공적자금관리위원회가 벌써 ‘다음 정부’를 염두에 둔 행보를 보이는 것 아니냐는 시각을 보내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직전 정부의 과오를 파헤쳐 책임을 묻는 절차가 있었던 만큼 자신들의 오점으로 남을 수 있는 결정을 피하려는 심산 아니냐는 것. 은행권 한 고위 관계자는 “공자위 입장에서는 성공해도 공은 작고, 실패하면 과만 큰 숙제일 수 있다”면서 “무리수를 두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금융당국으로 하여금 골머리를 앓게 하는 하극상급(?) 사안은 또 있다. 지방 금융회사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BNK금융지주가 예보에 500억 원을 물어내라며 소송을 제기한 것. 부산은행, 경남은행 등을 거느린 BNK금융지주는 지난달 말 예보를 상대로 “경남은행 인수 후 발생한 부실을 보전하라”며 소송을 냈다.
김앤장법률사무소를 법률대리인으로 선정해 제기된 ‘경남은행 사후손실보전 청구소송’에서 BNK금융지주는 “예금보험공사로부터 경남은행을 인수한 뒤 1년간 발생한 경남은행 부실자산 500억 원을 보상해달라”고 요구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BNK는 2014년 10월 예보로부터 경남은행을 인수해 자회사로 편입시켰는데 당시 양측은 계약에는 부실자산이 실제 손실로 확정될 경우 예보가 이를 보상해주도록 하는 ‘사후손실보전’ 조항이 포함돼 있었다. BNK는 경남은행을 인수한 뒤 경영하는 과정에서 수백억 원대 부실자산이 손실로 이어졌고, 당시 계약 조항에 따라 예보가 이를 물어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예보 측이 부실자산 규모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부실자산 발생 원인 등을 꼼꼼히 점검해봐야 한다는 것. 소송 과정에서 금액이 조정될 가능성은 높지만 예보가 일정 부분 부실자산을 보전해주는 결과는 피하기 힘들다는 것이 금융권의 시각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과거 뉴브리지캐피탈에 제일은행을 매각한 뒤 부실자산 보전에 1조 원이 넘는 공적자금을 쓴 전례가 있다”면서 “소송 결과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번에도 일정 금액은 물어내야 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이어 “민간 금융회사가 예보를 상대로 소송을 낸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면서 “시기가 묘하다”고 덧붙였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