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대 원재자 가격이 하락했음에도 2010년 이후 국내 생리대 가격은 25.6% 올랐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유한킴벌리는 여론을 의식한 듯 기존 생리대 가격인상 정책을 철회했고 중저가 생리대를 출시하겠다고 발표했다. LG유니참과 한국P&G는 청소년에 대한 생리대 기부 규모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는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소비자단체 등은 업계의 지원 및 기부 방침에 대해 생리대 가격 논란을 교묘하게 면피하기 위한 행보라고 지적했다. 문제의 본질은 변하지 않은 비싼 가격에 있기 때문이다.
국내 생리대 가격은 외국과 비교해도 비싼 수준임이 확인됐다. 한국 참가격에 따르면 외국과 생리대 개당 가격을 비교했을 때 국내 생리대가 331원, 일본과 미국이 181원이었고, 캐나다가 202원, 덴마크가 156원이었다. 외국과 비교를 하지 않더라도 생리대 원자재 가격이 하락했음에도 2010년 이후 국내 생리대 가격은 25.6%가 올랐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의 통계청 소비자물가지수 분석에 따르면 올해 4월 펄프와 부직포의 수입물가지수는 6년 전인 2010년과 비교해 각각 29.6%, 7.6% 하락했다.
이에 대해 생산업체들은 원가 절감을 위한 노력과는 별개로 신제품 기술 적용 등에서 가격 인상 요인이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유한킴벌리 관계자는 “생리대는 개별 소재들의 단순한 결합으로 만들어지는 제품이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려는 시도도 필요하다”며 “생산성 향상도 신경을 쓰는 부분이지만 이번 신제품은 커버 교체에서 50%, 새 흡수소재 적용에서 기존 2배 정도의 생산비용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지난 4일 생리대 가격과 관련해 “공정거래법 3조 2항은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지위를 남용해 가격을 부당하게 결정·유지 또는 변경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유한킴벌리 등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가격남용에 대한 조사에 즉각 나서라”며 “막무가내 고가격이 가능한 것은 생리대 시장이 독과점 시장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4500억 원 규모 국내 생리대시장에서 유한킴벌리는 5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가지며 부동의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어 LG유니참과 한국P&G가 2위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생리대는 의약외품으로 분류돼 공산품으로 분류되는 기저귀, 요실금 패드 등과는 다른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 생리대는 마스크, 구강청결용 물휴지, 탈모제 등과 함께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고시한 ‘의약외품 범위 지정’에 포함돼 있다. 의약외품은 질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하기 위해 쓰는 의약품보다는 인체에 대한 작용이 경미한 물품에 대해 보건복지부가 따로 정한 분류 기준에 의한 약품을 지칭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의약외품 중 하나인 생리대에는 고분자흡수체가 들어있고 기저귀와 요실금패드 등의 공산품보다 더 위생에 민감하다”고 말했다.
유한킴벌리와 같은 의약외품 생산업체는 약사법에 따라 제조관리자를 둬야 한다. 제조관리자는 제조 업무에 종사하는 종업원에 대한 지도·감독, 품질 관리 및 제조 시설 관리 등의 업무를 해야 하며 국내 대기업의 경우 1000명 안팎의 제조관리 인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약사법 36조는 필요한 만큼의 약사 및 한약사를 두고 제조 업무를 관리하게 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또 의약품 등의 안전에 관한 규칙 42조에 따라 의사·약사 또는 4년제 대학의 이공계 학과를 졸업한 자 등이 제조관리자가 될 수 있다.
해당 법에 따라 인력을 채용하는 만큼 상승하는 인건비 부담이 생리대 가격에 적용됐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 생리대 제조업체 관계자는 “생리대를 약사법에 의한 의약외품으로 식약처에서 엄격히 관리하고 있으며, 품목별 사전 허가제도에 의하여 안전성, 유효성 및 품질관리 계획에 대한 승인을 받도록 함으로써 안전성을 확보하고 있다. 의약외품의 품질, 안전, 위생 등의 철저하고 전문적인 관리를 위해 제조관리자를 운영하도록 하고 있다”며 “생리대 가격 상승 요인 중에는 신제품 개발이 있는데 원자재 선택 및 수급, 신기술·신소재 개발·적용에 따른 R&D비용, 설비 투자 등이 반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생리대의 유해성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이안소영 여성환경연대 국장은 “일회용 생리대의 흡수 커버는 순면이 아니라 폴리에틸렌 등 비닐류이고 생리대 안에 든 솜에는 자잘한 알갱이 형태의 화학물질인 흡수겔이 함유돼 있다. 이 중 다수가 독성물질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여성환경건강단체인 ‘지구를 위한 여성의 목소리’가 지난 2014년 8월 미국 여성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생리대 제품을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다. 생리대에서 스틸렌과 염화메틸, 염화에틸, 클로로포름, 아세톤, 에틸벤젠, 톨루엔, 자일렌 등의 성분이 검출됐다. 이 중 스틸렌과 염화에틸, 클로로포름은 발암성 화학물질이고, 염화메틸은 임신과 출산에 영향을 끼치는 생식 독성물질이다.
면생리대 등 대안생리대를 생산하는 업체 관계자는 “작은 규모로 시작하는 업체에서는 약사 학위를 가진 사람을 채용하기 힘들뿐더러 대기업의 생산 규모를 따라가기 힘들다. 기저귀나 요실금패드의 경우에도 위생이 중요한데 공산품일 뿐이다. 관리규정이 오히려 독과점을 부추기고 있다”면서 “비싼 생리대를 사서 쓰는 대신 개인이 면생리대를 직접 만들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널리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