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최고급 호텔예식의 경우 식대가 10만 원부터지만 고객들이 대부분 13만 원대 코스를 선택해 본식 비용만 최소 8000만 원이 든다. 본식 비용이 1억 원을 훌쩍 넘기도 한다. 그러나 거액의 비용을 들임에도 호텔예식은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듯 비슷하다.
일반 예식홀에서 진행되는 예식은 보통 비슷한 순서로 진행된다. ‘주례 없는 결혼식’, ‘뮤지컬 예식’ 등 예식 트렌드가 일부 변화하기는 했지만 전체적인 예식 방식이나 장소,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최근 기존 형식을 탈피하고 합리적이면서도 특색과 의미가 있는 결혼식을 추구하는 ‘스몰웨딩(작은 결혼식)’ 트렌드가 생겨나고 있다.
역대 톱스타 커플 중 가장 소박한 결혼식을 올린 원빈-이나영. 근처 농가에서 빌린 국수 삶을 솥단지만이 유일한 협찬품이다. 사진제공=이든나인
아직까지 ‘스몰웨딩’의 정확한 정의는 없다. 결혼정보업체 듀오가 지난해, 최근 2년 이내 결혼한 부부 1000명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신혼부부의 55.8%는 스몰웨딩을 ‘실용적인 결혼식’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또 31.6%는 ‘의미 있는 결혼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반면 ‘선뜻 하기 어려운 결혼식’, ‘현실을 고려하지 못한 결혼식’이라는 인식도 있다. 웨딩업계 종사자들은 스몰웨딩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만들어가는 부부만의 특별한 결혼식’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스몰웨딩이 큰 인기를 끌게 된 계기는 이상순-이효리 부부, 원빈-이나영 부부 등 연예인들의 결혼식이다. 이상순-이효리 부부는 제주도에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렸고, 원빈-이나영 부부는 강원도 정선 밀밭에서 가까운 지인만 초청한 채 자신들만의 결혼식을 올렸다. 이들의 조촐한 결혼식이 일반인들에게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 결혼을 앞둔 한 예비신부는 “톱스타들의 스몰웨딩을 보고 멋있고 부러워 보여 관심이 가는 것은 사실”이라며 “주위에서도 요즘 부쩍 많은 비용이 들어도 스몰웨딩을 하고 싶다는 친구들이 많다”고 말했다.
웨딩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웨딩업계 시장 규모는 연간 10조 원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스몰웨딩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5%로 추산된다. 다만 전체 혼인 건수 대비 5%인 터여서 금액으로 단순 환산하기는 힘들다. 통계청이 지난 6월 23일 발표한 ‘2016년 4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지난 1분기까지 혼인 건수는 7만 1400건으로 나타났다. 약 3570건이 스몰웨딩으로 치러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스몰웨딩 건수가 점차 증가하면서 웨딩업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혼인율 감소에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던 일부 예식장 중엔 스몰웨딩 트렌드까지 확산되면서 문을 닫는 곳이 늘고 있다. 반면 업계에서는 스몰웨딩 전문 컨설팅업체가 생겨나고, 저렴한 웨딩드레스를 판매하는 쇼핑몰이 증가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국내 최초로 ‘스몰·셀프웨딩’ 전문 팝업 스토어를 열기도 했다. 예식 장소에 대한 고정관념이 허물어지면서 카페나 식당, 전망이 좋은 펜션, 시골 보리밭 등 다양한 장소에서 결혼식이 이뤄지고 있다.
옥천에서 열린 스몰웨딩 전경. 출처=홍정만 웨딩디렉터
하지만 일반인들은 아직까지 스몰웨딩에 뜻은 있으나 쉽게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 웨딩전문업체 관계자는 “많은 예비부부가 스몰웨딩에 관심을 보이기는 하지만 정작 진행하지는 못한다”며 “예식 비용을 축의금으로 충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스몰웨딩을 할 경우 하객 수가 적어 비용 면에서 부담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스몰웨딩을 전문으로 하는 홍정만 웨딩디렉터는 “담당한 예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스몰웨딩은 ‘여행’을 콘셉트으로 한 예식이었다”고 꼽았다. 홍 씨는 “서울과 부산이 고향인 부부의 공통분모가 여행이어서 하객을 충북 옥천으로 모셔 여행 테마로 결혼을 진행했다”며 “단순히 예식에 하객 수가 적다고 스몰웨딩이 아니라 부부와 하객 모두 결혼식의 구성원으로 참여해야 진정한 스몰웨딩이 완성된다”고 말했다.
예식문화의 변화에 대해 웨딩업계에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프리랜서 웨딩플래너와 스몰웨딩 관계자들은 “예식은 유행에 민감한 문화다. 차별화된 나만의 예식을 원하는 욕구가 스몰웨딩 등 다양한 형식으로 변주될 것”이라며 “현재 스몰웨딩이 많이 알려져 있는 데다 본격적으로 유행 궤도에 오르면 주류 예식 문화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대형 웨딩업체 관계자들은 다른 의견을 보이고 있다. 한 대형 웨딩업체 관계자는 “소박하고 저렴한 스몰웨딩보다 예비부부가 부모님과 조율 가능한 선에서 격식을 갖춘 ‘스몰 럭셔리 웨딩’이 확산될 전망”이라면서 “그래도 기존의 웨딩홀 위주의 예식을 넘어서진 못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결혼정보회사 가연 관계자는 “실효성을 강조한 웨딩을 선호하는 현상은 지속될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연예인들의 스몰웨딩과 현실의 그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다만 스몰 럭셔리 웨딩 건수가 다소 증가할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