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대가로 A 씨 손에는 현금 3000만 원과 발렌타인 30년산 양주 1병이 건네졌다. 뇌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같은 해 3월 인천국제공항 내 환승호텔에서 이동찬은 다시 A 씨에게 현금 500만 원과 로얄살루트 38년산 1병, 7월께 인천국제공항 내 한식당에서 현금 1000만 원과 에르메스 스카프 1점, 10월에 인천국제공항에서 현금 500만 원과 조니워커블루 양주 1병 등 총 4회에 걸쳐 5000만 원 이상의 금품을 뇌물로 줬다.
이런 은밀한 거래는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이동찬이 진정서를 제출하면서 드러났다. 이동찬은 금괴 밀수출입에 관여한 공범들이 자신을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고소하자,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공범들이나 금괴 밀수출입을 도와준 공무원들에 대해 처벌을 하고 대신 자신에 대해서는 최대한 선처해 달라는 취지의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이후 실제로 수사가 진행됐고, 이동찬은 금괴 밀수출입 범행에 대해 공소시효가 만료됐다는 이유로 ‘공소권 없음’ 처분을 받았다. 대신 세관공무원 A 씨는 뇌물 혐의로 기소돼 1심 무죄에서 항소심은 유죄로 뒤집어졌다가 대법원에서 최근 다시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 했다.
이동찬이 선처를 받기 위해 공범들의 범죄사실을 진정한 것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하자 검찰이 발끈하고 나섰다. 대법원 전경. 일요신문DB
대법원 판단의 핵심은 결국 금품 공여자인 이동찬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검찰이 발끈하고 나섰다. 검찰은 “대법원 판결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면서 “판시 내용 중에 이동찬이 금괴 밀수사건과 관련해 2008년 10월부터 2011년 1월까지 중국 밀항한 뒤 국내 체류 중이라서 공소시효가 정리될 수 있는데도 검찰이 공소시효 완성으로 처분한 것을 보면 허위 진술 가능성이 있다고 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이어 “2013년 9월 이동찬의 진정서로 금괴 밀수출입 수사에 착수했지만 당시에는 시효 만료로 공소권 없음 처분을 했었던 것”이라며 “해외도피는 이동찬이 변호사법 위반으로 조사를 받다가 도주한 것인 만큼 금괴 밀수출입 사건과 관련해서 언급할 문제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검찰 주장을 언뜻 보면 사실관계를 잘못 적시한 대법원에 대한 문제제기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일개 세관공무원 뇌물사건을 놓고 검찰이 대법원을 정면 비판하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이 때문에 서초동 내에선 “이동찬 때문 아니겠느냐”는 관측이 나왔다.
이동찬이 누구인가. 이 사건에선 금괴 밀수출입 조직원이었던 이동찬은 정운호 게이트에서 판사 출신인 최유정 변호사와 가까운 지인으로 등장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최 변호사는 이동찬의 소개로 이숨투자자문 송창수 대표 사기사건 2건에 대한 항소심 변론을 맡아 50억 원 이상을 수임료로 챙겼다. 이동찬은 조세포탈 혐의로 실형이 선고된 후 구치소에서 생활하면서 송 대표를 만나 친해졌고 출소 후 이숨투자자문 이사로 입사해 사실상 송 대표 송사문제를 해결하는 브로커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 변호사가 송 대표 사건을 수임할 수 있었던 것도 이동찬과 송 대표 간 인연 때문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동찬이 최 변호사 법조비리의 배후”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검찰의 한 인사는 “검찰 입장에선 정운호 게이트 수사에서 브로커 이동찬의 진술이 매우 중요한데 대법 판단을 보면 이동찬이 선처를 받기 위해 공범들의 범죄사실을 진정한 것으로 되어 있다”며 “결국 이동찬이 어떤 진술을 해도 믿을 수 없다는 법원의 입장이 간접적으로 드러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금품을 제공했다는 사람의 진술만으로 유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진술에 증거능력이 있어야 함은 물론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만한 신빙성이 있어야 하고, 신빙성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그 진술 내용 자체에 합리성, 객관적 상당성, 전후의 일관성뿐만 아니라 그의 인간됨, 그 진술을 얻게 되는 이해관계 유무, 특히 그에게 어떤 범죄의 혐의가 있고 그 혐의에 대해 수사가 개시될 가능성이 있거나 수사가 진행 중인 경우에는 이를 이용한 협박이나 회유 등의 의심이 있어 그 진술의 증거능력이 부정되는 정도에까지 이르지 않은 경우에도 그로 인한 궁박한 처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진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여부 등도 아울러 살펴봐야 한다.”
이에 대해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정운호 게이트가 촉발된 계기를 보면 이동찬이 최 변호사가 정 전 대표 접견 당시 정 전 대표가 작성했다는 로비리스트 8명의 명단을 공개하면서부터가 아니냐”며 “문제는 이동찬의 전력이 알려지면서 그 리스트의 신빙성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고 혹여 검찰이 이동찬으로부터 보다 구체적인 진술을 이끌어낸다고 한들 이를 뒷받침하는 물증이 없이는 법원에서 인정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무엇보다 “아무래도 최 변호사가 판사 출신이다보니 이동찬 입에서 나올 수 있는 게 법원과 관련된 내용일 가능성이 큰데 대법원이 저렇게 판단하면 이동찬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검찰이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며 “이런 상황을 지켜보는 게 검찰로선 굉장히 불편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김성훈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