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 박성우 씨와 피해자, 최대열 씨 등 삼례 3인조는 11일 대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에 “항고 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강도치사 사건으로 어머니를 잃은 유가족과 피해자가 진범에게 오히려 ‘고맙다’고 말해야 하는 이 답답한 현실. 이제는 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진실이 필요합니다.” 나라슈퍼 사건으로 숨진 유애순 씨(여‧76)의 아들 박성우 씨(57)가 11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정문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말미에 외친 말이다.
최근 재심 결정이 내려진 이 사건에 대해 피해자 유가족 측이 나서 “검찰은 항고를 포기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 자리에는 진범 대신 17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최대열 씨(37) 등 3명, 재심 변론을 맡은 박준영 변호사 등 10여 명이 참석했다.
전주지방법원 형사합의1부(부장판사 장찬)가 지난 8일 재심 결정을 내린 상황에서 검찰이 사흘 안에 항고하면 광주고등법원 전주지법에서 재심 여부를 다시 결정해야 한다. 이에 따라 사건의 진실규명은 또 다시 미뤄지게 된다.
앞서의 유가족 박 씨는 기자회견에서 “이제는 고통의 터널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달라”며 “삼례 3인조 청년들은 어머니를 죽인 범인이 아니다. 진범이 자신의 범행을 자백했고 어머니의 묘소를 찾아 참회의 절을 했다. 이제라도 진실을 밝혀 3인조 청년들의 누명을 벗겨 달라”고 말했다.
당시 사건 현장에서 흉기로 위협을 받았던 피해자 최 아무개 씨도 “기억하기도 싫고, 잊고 싶었던 일”이라며 “17년 동안 힘들게 살았다. 이제는 너무 지쳐서 벗어버리고 싶다. 저희들을 살려주신다고 생각하고 제발 항고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며 눈물을 훔쳤다.
피해자 최 씨는 기자회견서 고통스러웠던 삶을 회고하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삼례 3인조 중 1명인 최대열 씨는 “이제는 억울함이 깨끗하게 없어지고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다”며 “다시는 이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도와 달라”고 말했다.
3인조의 변호를 맡은 박준영 변호사는 “옥살이를 한 세 사람은 너무나 불쌍한 사회적 약자들인데도 억울한 피해를 입었다”며 “검찰이 진범을 풀어준 정황이 발견됐는데도 항고하는 게 비상식적이지만 그 상황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경찰과 검찰, 법원의 책임자들이 직접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뒤 대검찰청에 이 같은 취지의 진정서를 제출했다.
한편 ‘삼례 나라슈퍼 사건’은 1999년 2월 6일 발생했다. 이날 오전 4시쯤 전북 완주군 삼례읍 나라슈퍼에 3인조 강도가 침입했다. 범인들은 잠자던 유애순 씨의 입을 테이프로 막아 숨지게 하고 현금과 패물 등 254만원어치를 털어 달아났다.
경찰은 인근 마을에 살던 19∼20세의 선후배 3명을 구속했다. 이들이 바로 ‘삼례 3인조’다. 이들 중 2명은 지적장애인이었다.
하지만 같은 해 11월 진범이 따로 있다는 첩보가 부산지검에 접수됐다. 당시 부산지검은 용의자 3명을 검거, 자백까지 받아낸 뒤 전주지검으로 넘겼다. 그러나 전주지검은 자백 번복 등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나오기까지에는 7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결국 최 씨 등은 징역 3∼6년을 선고받고 복역을 마쳤다. 착하게 살던 이들의 젊은 날엔 송두리째 빨간 줄이 그어졌다.
16년이 지난 지난해 3월, 이들은 또 다시 법정에 섰다. 최 씨 등은 “당시 경찰의 가혹행위로 인해 허위자백을 했다. 억울함을 벗고 싶다”며 법원에 재심을 신청했다. 이 과정에서 경남에 사는 이 아무개 씨가 “나를 비롯한 3명이 이 사건의 진범”이라는 양심선언을하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이 씨와 함께 ‘부산 3인조’로 지목된 배 아무개 씨는 지난해 4월 숨졌고, 조 아무개 씨는 사건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이 사건의 공소 시효는 2009년 만료됐다.
전주지법은 지난 8일 이 사건의 피의자로 지목된 최씨와 임모(37)씨 등 3명에 대한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경찰조사 과정에서 임씨 등에 욕설과 폭행이 있었고, 이들에 대한 검증조서가 허위로 작성됐다고 판단했다. 법원의 결정에 검찰 측 항고가 없으면 재심 개시가 확정된다. 검찰 측 항고는 11일 자정까지 가능하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