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저물가 해소정책에 성공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우리 경제는 돈을 풀면 공식물가와 체감물가의 괴리가 생기는 2중의 구조를 갖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2년간 기준금리를 5차례에 걸쳐 2.5%에서 1.25%까지 내리는 팽창통화정책을 폈다. 그러나 거꾸로 공식물가는 내리고 공공서비스, 전월세, 교육비, 식비 등 생활물가만 올랐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 6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0.8%이다. 이에 반해 한국은행이 소비자를 대상으로 조사하는 실질 체감물가 인식은 2.5%이다. 설상가상으로 경제성장률이 2%대로 떨어져 고용난이 악화하고 가계부채가 1200조원을 넘었다.
한국은행의 통화팽창정책이 서민에 경제고통의 덤터기를 씌웠다. 한국은행의 무모한 저물가 정책은 서민경제를 무너뜨릴 수 있다. 우리경제는 산업기반이 붕괴하는 위기에 처해 있다. 이것 때문에 한국은행이 통화공급을 늘리면 경기가 살아나는 대신 생활물가가 오르고 가계부채가 증가한다. 동시에 성장률과 고용률이 떨어진다. 더 나아가 부동자금이 늘어 부동산 투기까지 일어난다.
이러한 상태에서 한국은행이 계속 통화팽창정책을 펴면 경제가 유동성 거품의 함정에 빠져 파국으로 갈 수 있다. 그러면 서민경제는 생존기반을 잃는다. 이미 시중에 떠도는 부동자금이 900조 원이 넘는다.
우리 경제가 돈을 풀수록 위험한 것은 부실을 양산하는 구조적 모순 때문이다. 우리 경제는 정부의 경제개발계획에 따라 대기업 중심으로 고도성장을 했다. 이 과정에서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이 함께 경제를 지배하는 정경유착체제를 형성했다. 그리고 기업들이 부실화해도 대마불사 논리에 따라 구제금융을 주는 관치금융이 제도화했다. 이에 따라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들은 부실기업을 구제하는 창구로 전락하고 필요한 자금은 한국은행이 제공하여 부실을 확대재생산하는 역할을 했다.
최근 경제가 불안에 휩싸이자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 주력산업들이 줄줄이 무너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다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통화팽창을 하고 있다. 경제가 저물가의 함정을 벗어나 건전하게 성장하려면 부실산업에 대한 구조조정부터 확실하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풀린 자금이 생산적으로 흐르게 해야 한다. 다음 투자와 소비를 활성화하는 통화정책을 펴는 것이 수순이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조선과 해운 업종의 구조조정은 과거의 구제금융 정책과 흡사하다. 해당기업들이 자구노력을 할 경우 12조 원 규모의 자금지원을 한다는 것이 주요내용이다. 한국은행은 10조 원 규모의 발권력을 동원할 예정이어서 정부정책의 사후거수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우리경제는 어떤 정책을 펴는가에 따라 사활이 달라지는 갈림길에 서있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정치적 중립을 선언하고 경제를 근본적으로 살리는 정책을 펴야 한다. 특히 한국은행은 통화정책을 함부로 펴면 안 된다. 경기부양에 급급하여 서민경제를 쓰러뜨리는 데 앞장서면 한국은행은 존재의의를 잃는다.
이필상 서울대 겸임교수, 전 고려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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