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님은 갔지만… 지난 대선에서 패배한 뒤 한나라당 관계자 들과 인사를 나누는 이회창 전 총재. 임준선 기자 | ||
이 전 총재를 측근에서 보좌하는 한 인사는 이 전 총재가 최근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고 전한다. 1월 초 이 전 총재는 대구 경북 지역을 며칠간 방문했다. 지역의 지자체 단체장과 종교계 인사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그동안의 심적 피로를 씻고자 한 여행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후로 이 전 총재의 외부활동은 뚜렷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과연 이 전 총재의 발걸음은 어느 곳을 향하고 있는 것일까.
대선 패배 이후 정계은퇴 선언을 했지만 이 전 총재는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대선에서 박빙의 승부를 펼친 터라 이 전 총재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는 사람들이 많고 보혁 갈등을 크게 겪고 있는 야당에서 그만큼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를 찾아볼 수 없는 탓이라는 게 정가의 평이다.
이 전 총재는 대선 이후 심한 허탈감에 휩싸였지만 차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정계은퇴를 선언한 만큼 정치에 개입하는 듯한 인상을 피하려 노력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최근 후원회 사무실 폐쇄 지시를 내리고 당 차원의 재검표 논의에도 일절 개입하지 말라고 주변에 엄명을 내린 것도 그 때문.
이 전 총재 자신이 당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물론이며 당사 내 대통령후보 특보실과 보좌역실도 이미 해산된 상태다. 이런 이 전 총재의 향후 행보를 놓고 여러 설이 나도는 가운데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은 바로 ‘외유설’이다.
우선 1월15일 일본을 방문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진다. 일본에 있는 이 전 총재 지인들의 초청으로 10일간 방문한다는 것이다. 이종구 전 언론특보는 “특별한 목적 없이 지인 초청으로 여행을 다녀오시는 것”이라 설명한다. 일본에서 돌아온 이후 이 전 총재가 미국을 방문해 수개월을 보낼 것이란 설이 한나라당을 비롯한 정가에 퍼져 있다.
이종구 전 특보는 “일본 방문 이후 미국행을 검토중이지만 아직 결정된 사안은 아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전 특보는 “주변에서 (이 전 총재에게) 외국에 다녀오라는 권유를 많이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만약 일본에서 돌아온 후 미국으로 떠나게 된다면 오는 2월25일 새 정부 출범일에 국내에 없을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박빙의 승부를 펼친 경쟁자이자 차기 대통령직을 맡게될 노무현 당선자 취임식장에서 박수를 보내는 것 대신 외국행이 더욱 가능성 높게 점쳐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가와 이 전 총재 주변에 따르면 아직도 정치권, 특히 한나라당 일부 인사들이 이 전 총재를 향해 목을 길게 빼고 있는 점이 큰 이유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 은퇴한 이회창 전 총재에게 ‘손짓’하는 중진들이 많다고 한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내용과 관련없음. | ||
그러나 당 추스르기에 바쁜 한나라당 중진 인사들이 지금껏 옥인동을 찾는 것에 대해 단순한 ‘안부인사’차원 이상으로 보는 시각들이 적지 않다. 이 전 총재 대통령후보 시절 보좌역을 지낸 한 인사는 “돼 먹지 못한 인간들이 (이 전 총재) 정계복귀를 종용하고 있다”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한나라당 차원에서의 러브콜이 아니라 당 내부에서 ‘포스트 이회창’을 노리는 인사들이 이 전 총재의 후원을 얻고자 한다는 것. 당내 개혁파 의원들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는 가운데 당권과 향후 입지 다지기를 원하는 보수파 중진들의 이 전 총재를 향한 손짓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현재 한나라당 개혁을 주도하는 한 중진의원실의 관계자도 “포스트 이회창 시대를 대비해 대선 기간 동안 전방에서 입지를 다져왔거나 개혁파의 갑작스런 득세로 궁지에 내몰린 일부 보수 인사들이 이 전 총재의 후원을 고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당의 주도권을 행사해온 중진 그룹과 당내 정통 보수를 자처하는 그룹 그리고 이 전 총재 대통령후보 시절 측근으로 알려졌던 다선 의원 그룹 등이 거론되는 것이다. 당을 주도해온 인사로 꼽히는 ㅅ, ㄱ의원의 경우 전당대회 이후나 지역구 관리에 있어 상황이 여의치 않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당내 정통 보수를 자처하는 그룹은 당권 경쟁에서 다선의 ㅎ의원을 지지할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ㅎ의원이 원만한 인맥관계를 갖고 있지만 정치적 장악력이 떨어진다는 흠을 안고 있다. 이 전 총재 측근들로 분류됐던 중진 인사들도 자체 모임 결성 움직임을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이들에겐 간판으로 내밀만한 ‘얼굴마담’이 없다는 약점이 있다. 거론되는 이들 인사들에 대해 대통령후보 시절 이 전 총재를 보좌했던 한 인사는 “지금 상황을 보면 이 전 총재 향수에 젖을 법한 인사들”이라고 밝혔다. 이 인사는 “하지만 이 전 총재 본인이 정계복귀나 재검표 사안 등 정치권 문제들에 맞물려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치권이 계속해서 러브콜을 보낸다는 것에 대해 이종구 전 특보는 “그런 일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 전 특보는 “주변에서 (이 전 총재에게) 외국행을 권하는 이유 중 하나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전 총재 보좌역을 지낸 한 인사는 “(이 전 총재) 외국행이 가능성 높게 점쳐지는 것은 정치권에서 힘이 돼 줄 것을 요구하는 인사들의 요청이 무척 부담스럽기 때문일 것”이라 밝혔다.
이 인사는 “이 전 총재 스스로 ‘국민과 역사 앞에 죄를 지었다’는 심정으로 조용히 머물고 싶어하는데 여기에 대고 자꾸만 손짓을 하는 정치인들은 결국 이 전 총재를 죽이려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외풍에 흔들려 움직이는 것보다는 중심을 지킨 채 스탠스를 유지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도 이 전 총재에게 전달되고 있다.
이 전 총재 대통령후보 시절의 한 측근인사는 “정치권의 도움 요청이 있다해도 의연하게 모습을 지키면서 노무현 당선자 취임식을 국내에서 지켜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 밝혔다. 다른 측근 인사도 “시간이 지나면 한나라당 대선 패배 요인이 구체적으로 나올 것”이라며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비정치적 원로 역할을 (이 전 총재가) 국내에 남아 하게 될 것”이라 전망했다. 대통령 당선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던 국가발전 방안들을 포럼이나 강연활동을 통해 연구발표할 것이란 주변관측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