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에서 첫 진수식을 가진 독일 노드카피탈사의 벌크선 2척의 모습. 연합뉴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는 지역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군산 지역경제의 20%, 전북 수출의 7.2%를 담당하기도 하지만 전북 군산 출신인 최길선 현대중공업 회장이 고향에 건설한 조선소로 최 회장이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지역 사회의 호평이 쏟아졌다. 군산조선소는 최 회장의 현대중공업 사장 시절 주로 건설됐다. 지난 2008년 초 군산으로 유치가 확정됐다. 소룡동 군산 2국가산단 내 총 180만㎡에서 같은 해 기공식을 하고 총 1조 2000억 원을 투입, 지난 2010년 준공했다. 25만t급의 선박 4척을 한꺼번에 건조할 수 있는 도크 1기와 1650t급 골리앗 크레인을 보유하고 있다.
군산조선소가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컸다. 군산조선소가 2015년 자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4년 고용유발이 5700여 명에 이르고 군산 시내에서 소비지출비용은 550억 원에 달했으며 지역 업체와의 거래액도 26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관내 141개 업체와 생산지원분야에서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선박수출액은 전북 수출의 7.2%를 차지하는 등 전북 수출의 견인차 구실을 해 온 것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이런 군산조선소가 현대중공업의 수주부진으로 철수가 예상되는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내년이 존폐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에 남아있는 일감은 총 16척, 마지막 물량 인도시점은 내년 7월이다. 새로운 수주 계약을 맺지 못하면 이 시점부터 가동이 중단된다. 이처럼 내년 7월 이후 건조물량이 없음에도 그나마 배정됐던 LPG선 2척의 건조물량마저 울산으로 재배정하면서 도크 폐쇄의 전조가 아니냐는 조심스런 관측이 나오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일상적인 일정 조정에 따른 건조물량 재배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이번 LPG선 울산조선소 배정 건은 내부 스케줄 조정으로 인한 것이지, 군산조선소 폐쇄와 전혀 관계없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안감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수주부진이 장기화할 경우 선박건조 효율성이 떨어지는 도크부터 순차적으로 가동을 중단하겠다는 방침이다. 도크 가동을 멈추겠다는 것은 현대중공업 44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문제는 군산조선소 도크(1개 운영)가 1차 구조조정의 타깃으로 유력하다는 점이다. 심지어 현대중공업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조선소 철수도 점쳐지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5월 채권은행에 제출한 자구계획안에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순차적으로 도크 가동을 중단하겠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지난 1일 울산 본사에서 열린 비상경영회의에서도 군산조선소 가동 중단이 언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군산조선소 주변에서는 조선소 측이 ‘그만둘 것인가, 울산서 근무할 것인가’를 놓고 직원들과 면담했다는 등 별의별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고 있다. 물론 조선소 측은 ‘그런 일이 없다’고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지만 상황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군산조선소는 올해 4월 5250명 수준의 직원 수를 5월 5089명, 6월 4825명 등 순차적으로 감축해나가는 한편, 군산조선소 소장직에 대해서도 본사 전무에서 상무로 격하했다. 부서 역시 15개 부서에서 9개 부서로 감축하는 등 구조조정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내년 7월 이후 작업할 신규 물량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선박건조계획을 고려할 때 올해 말부터 선체블럭을 제작하는 사외 협력업체들부터 일감이 부족하거나 떨어져 가동이 중단되는 사태가 우려된다. 도크가동이 중단되고 나아가 군산조선소가 철수한다면 수많은 협력업체의 도산은 물론 공장 내 40개 협력업체 3400명의 직원과 군산 관내 10여 개 사외 협력업체 1340여 명 근로자들의 대량 실직이 우려된다. 또한, 군산조선소와 관련돼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근로자 약 6000명과 가족 등 약 2만 명이 타격을 입게 됨으로써 군산은 물론 전북경제는 나락의 길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난 12일 전북도와 군산시,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도청 상황실에 모여 긴급 대책 회의를 갖고 대책마련에 나섰다. 이날 회의에서는 정부가 직접 선박을 발주하는 계획조선제도 도입과 독일의 사례처럼 선박펀딩 운영, 중소선박 협력업체 경영안정자금 지원 등의 방안이 제시됐다.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는 방안들이어서 새로울 것이 없고 지자체 차원의 대책이 제한적인 만큼 정치적 대응주문의 목소리가 컸다. 현대중공업 최길선 회장도 최근 문동신 군산시장과의 통화에서 “경제논리 측면에서 답이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적 해법의 중심축엔 지역 출신 국회의원들이 자리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핵심 관계자와 형성돼 있는 인적네트워크를 활용하면 ‘해법’ 도출이 의외로 쉬울 수 있다는 기대다. 송하진 전북도지사는 13일 국회를 방문해 정세균 국회의장을 비롯해 김관영, 이춘석, 조배숙, 정운천 국회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군산조선소에 대한 현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군산조선소의 문제는 경제적 논리보다는 정치적 논리로 접근해야 할 사안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이들 국회의원들은 “직접적인 결정권을 가진 사람을 만나서 군산조선소 상황을 이야기하고 선박 수주 물량의 최우선 배정을 요구하겠다”며 현대중공업 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과 산업부장관 등을 직접 만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 얼마나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업계에서는 정부 해당 부처를 통한 현대중공업 경영진과의 접촉 이후 물량배정에 관한 논의를 제기하겠다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부가 조선 3사 구조조정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는 상황에서 스스로 자기 논리를 부정하는 일을 하겠느냐는 것이다. 더욱이 현대중공업은 민간 경제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영리 회사인 만큼 조선업 전반적인 불황에 따른 침체 상황에서 과연 ‘지역경제 살리기’라는 명분이 먹혀들 수 있겠냐는 의구심 역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일각에서는 전북도의 대응시점이 뒷북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최근 몇 달간 조선산업 구조조정에 따라 군산조선소 철수설이 꾸준히 제기됐는데도 손을 놓고 있다가 문제가 불거지자 뒷북을 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5월 25일 전남·부산·울산·경남 등 4개 시·도지사는 ‘조선·해양산업 위기극복 대정부 공동건의문’을 작성해 정부에 제출했지만 전북은 당시 포함되지 못했다. 최근에야 정부에 조선업 밀집지역 4개 시·도에 준하는 지원사업 지정을 건의했으며 현대중공업이 지난 5월 순차적 도크가동 중단방침을 시사했으나 울산 본사 방문은 지난달 13일에서야 이뤄지는 등 선제적으로 대응할 기회를 놓치는 바람에 화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전북도청 주변에선 ”군산조선소가 전북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상징성을 고려한다면 정책적 판단이 선행돼야 하는데 누구 하나 관심을 두지 않다가 뒤늦게 호들갑을 떨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성환 기자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