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연구원이 올 초 발표한 2015년 가구당 보험가입률은 전년 대비 2.2%포인트 상승한 99.7%다. 대다수 국내 소비자들이 이미 하나 이상의 보험상품에 가입했다는 뜻이다. 보험침투율 세계 1위다. 보험산업의 연간 매출은 174조 원으로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12%에 달한다.
그런데 한 해외 컨설팅사가 발표한 2014년 글로벌 보험소비자 만족도 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보험소비자 중 15%만 구매 결과를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조사 대상 30개국 중 최하위다.
우리나라 보험계약은 대부분 ‘인맥’으로 이뤄진다. 친인척과 친구, 지인의 소개 등이다. 상품 비교가 아니라 인간적 친밀도에 따라 가입이 결정된다. 엄밀히 말해 가입하는 게 아니라 ‘들어주는 것’이다.
최근 생명보험사들이 성장동력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삼성생명서초타워.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이른바 투자 성과에 따라 보험금이 달라지는 변액보험은 21세기 들어 보험사들의 배를 불리고 가입자들은 눈물을 흘린 가장 대표적인 상품이다. 2000년대 초반 주식투자 및 펀드 열풍이 불면서 ‘투자’와 ‘보험’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상품으로 각광받았다. 지난해 말 기준 적립금이 104조 7000억 원, 가입 건수는 850만 건에 달하는 ‘국민 보험’이다.
통계를 보면 변액보험은 종신형의 경우 13년이 지나야 원금에 도달하지만, 가입자 절반 정도가 그 전에 계약을 해지해 원금조차 건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변액보험 가입자 해지율은 59.6%로 절반이 넘는다. 보험 중도해지는 보험사에 절대 유리하다.
변액보험은 가입자가 낸 보험료 가운데 위험보장에 필요한 위험보험료와 설계사 수수료와 보험사 이익 등 사업비를 뺀 금액을 투자한다. 애초 투자원금이 납입보험료에 한참 못 미친다. 보험사가 투자를 잘 한다면 원금 회복 기간도 짧아질 수 있지만, 그렇지도 않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2005~2006년 설정 후 10년이 지난 현재 국내 주식형펀드에 투자하는 변액보험 수익률(누적)은 대부분 마이너스(-)다.
그런데 돈 잘 벌던 보험사들이 최근 사면초가에 몰렸다. 지난 5월 대법원은 생명보험사들에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자살도 재해이므로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해석이다. 판결 이후 일부 보험사는 보험금 지급을 약속했지만, 몇몇 대형 생보사는 소멸시효에 대한 기준이 필요하다며 시간을 끌고 있다. 당장 보험금을 지급하라는 금융감독당국의 압박에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이다. 현재 금융감독원은 자살보험금을 미지급한 보험사들에 대해 현장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검사 결과에 따라 제재에 들어갈 방침이다.
저금리도 보험사들의 목을 죄고 있다. 이들은 주로 장기 채권에 만기까지 투자하는데, 금리가 떨어지면 자산운용 수익률도 덩달아 낮아진다. 보험사들은 외환위기 이후 몸집 경쟁을 하면서 경쟁적으로 확정금리 상품을 판매해왔다. 당시 약속했던 금리가 10%에 육박할 정도로 높았던 만큼 시장금리가 1%대인 지금으로서는 상당한 부담이다. 이 때문에 보험사들은 외환위기 이후 시중금리가 계속 하락하면서 역마진 압박에 시달려왔다. 한때 보험사들은 설계사들을 통해 확정금리 상품 해약을 유도하라고 종용해왔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한때 확정고금리 상품을 해지한 직원에게 인센티브를 주기도 했다. 하지만 보험사 직원들도 가까운 이들에게는 절대 해지하지 말라고 귀띔해줬다. 고객들에게는 불리한 권유였다”고 말했다.
자살보험금과 저금리에 이어 보험사들에 치명타가 되고 있는 것은 또 있다. 새로운 회계제도 도입이다.
2020년 국내 보험사에 ‘국제회계기준(IFRS4) 2단계’가 도입될 예정이다. 3년 이상 뒤의 일이지만 내용이 엄청나다. 그동안 보험사들이 부채를 원가로 평가하던 것을 시가(공정가치)로 평가하는 ‘혁명적’ 변화기 때문이다. 다른 금융권에서 모두 시가평가가 기준이었는데, 그동안 보험만 제외되면서 누리던 엄청난 혜택을 이제야 반납하게 된 셈이다.
내용은 이렇다. 그동안은 정상적으로 보험금을 주는 상황이 아니라 현재 시점에서 중도해지해 환급금을 돌려주는 경우로 부채를 계산해왔다. 그런데 기준이 바뀌면 만기에 보험금을 정상적으로 지급할 경우를 상정해 부채를 계산해야 한다. 부채가 크게 늘고, 수십조 원의 자본을 확충해야 한다. 즉 주주들이 돈을 더 내거나 자산을 팔아 처분이익으로 잉여금을 늘려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경쟁적으로 판매했던 확정고금리 상품이 치명적이다. 연 7%의 고정금리 상품을 판매한 경우 지금은 현재의 해약환급금으로만 부채를 인식한다. 기준이 바뀌면 현재의 저금리로 이를 할인해야 한다. 금리차만큼 이자는 보험사가 메워야 한다. 엄청난 비용부담이다.
돈이 급해진 보험사들이 택한 곳은 대출시장이다. 채권에 투자하는 것보다 수익률이 높고, 주식에 투자하는 것보다 안전해 빠른 기간 내에 이익을 늘리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험대출의 문을 두드리는 이들 대부분이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한다는 점에서 중장기적으로는 부실 가능성이 제기된다. 납입보험료나 해약환급금이 담보가 된 약관대출이 아니라면 돈을 떼일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도 버틴 보험사들이지만 가계부채 문제가 터지면 이겨내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최열희 언론인
직격탄 맞은 삼성생명 ‘삼성전자 지분 매각 가능성’ 보험사들이 사면초가에 처하면서 가장 깊은 고민에 빠진 기업이 삼성이다. 삼성전자와 함께 그룹의 양대 축을 이루고 있는 삼성생명이 회계기준 변화에 직격탄을 맞게 돼 자칫 그룹 전체 지배구조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이다. 현재 보험업법에서 보험사는 특정 주식에 대한 투자금액이 전체 자산의 3%를 넘어서는 안 된다. 다만 투자금액을 취득원가로 인정해주고 있다.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전자 주식은 시가로 14조 원에 달하지만 취득원가로는 6000억 원에 불과하다. 삼성생명의 운용자산은 약 250조 원이다. 원가 인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3%(7조 5000억 원)를 넘게 된다.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같은 보험업법의 특혜(?)를 없애자는 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정부와 여권이 반대하는 상황인 데다 국회선진화 조항 때문에 여소야대임에도 당장 국회 통과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런데 보험업법이 안 바뀌어도 회계기준이 변경되면 문제가 생긴다. 2020년 도입되는 새 회계기준에서는 주식 자산에 대한 위험부담금 적립 기준이 상향된다. 감독 기준 개편으로만 삼성전자 보유 주식에 대한 추가 위험 부담금(요구자본)이 최대 7조 원 안팎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가뜩이나 보험금 부채에 대한 부담이 커지는데 계열사 지분부담까지 겹치면 설상가상이다. 재계 관계자는 “당장 2020년 전에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할 가능성이 크다. 회계기준 변경의 파고를 넘는 것은 물론 차기 대선에서 야권이 집권할 때 생길 보험업법 개정 위험도 피하려면 일찌감치 문제의 싹을 제거하는 게 옳은 방법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순환출자를 피하려면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을 살 수 있는 곳은 이재용 부회장이나 그가 지배하는 삼성물산뿐이다. 이 부회장이 14조 원 가까운 현금이 있을 리 없다. 삼성물산이 사업부문 매각 등 구조조정과 바이오 자회사 상장 등으로 현금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을 인수하는 시나리오가 가장 유력하다. 다만 이를 위한 전제 조건이 있다. 중간금융지주회사다. 일반 지주회사와 금융계열사 사이에 중간금융지주회사가 허용되지 않는다면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물산과 삼성생명을 따로따로 직접 지배해야 한다. 그러려면 이 부회장이 이건희 회장이 가진 삼성생명 지분을 증여·상속받거나 삼성물산이 가진 삼성생명 지분을 매입해야 한다. 이 부회장 입장에서 전자는 2조 원대의 상속증여세 부담이, 후자는 4조 원의 현금이 필요하다. 중간금융지주회사가 만들어지면 이 부회장은 돈 들일 필요 없이 삼성물산 아래 중간금융지주를 두고 금융계열사들을 지배할 수 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중간금융지주회사 도입을 위한 입법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대우조선해양을 삼성중공업에 넘기는 방향으로 조선업 구조조정을 진행한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