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의원.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7월 8일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 소속 의원 전원을 청와대로 초청해 점심을 함께 먹었다. 정진석 원내대표가 20대 국회 개원 전 당선자 신분으로 원내대표 경선에서 이긴 뒤 당시 현기환 정무수석을 통해 박 대통령에게 요청한 뒤로 수차례 읍소한 끝에 만들어진 자리였다.
박 대통령은 이날 낮 12시부터 87분간 오찬을 함께했고 78분간 의원들을 배웅했다. 당초 10분 정도 예상했던 인사가 이렇게 늘어난 것은 박 대통령이 의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환담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초반부 10여 초간의 짧았던 인사는 뒤로 갈수록 늘어났다는 전언이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박 대통령과 유 의원의 인사였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지난해 7월 8일 유 의원이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난 지 꼭 일 년째 되는 날이었다. 냉랭한 분위기를 예상했던 의원들과 청와대 관계자들은 둘의 인사가 얼마나 이어질지 초를 재거나 입으로 수를 세기도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꼭 36초간 인삿말을 나눴다”고 귀띔했다. 유 의원의 앞뒤로 있던 의원들과 청와대 측, 김희옥 비상대책위원장과 정진석 원내대표, 유 의원 등의 말을 종합해 재구성하면 이렇다.
“오랜만에 뵙습니다(박).”
“오랜만에 뵙습니다, 대통령님.”
“이번에 상임위는 어디로 가셨나요.”
“네 기획재정위원회로 갔습니다.”
“국방위원장까지 하시며 국방위에 오래 계시더니 이번에는 전공을 찾아 가셨네요.”
“네 그렇습니다. 열심히 잘 하겠습니다.”
“대구에서는 K2공군기지 이전이 숙원사업이죠? 신경 많이 쓰셨는데….”
“네. 영남권 신공항이 무산되고 또 K2 이전도 지지부진해 대구 민심이 그리 좋지 않습니다.”
“네. 아무쪼록 대구시민들께 잘 말씀해 주시고 앞으로도 서로 의논하며 잘 하시죠.”
이날 박 대통령과 의원들과의 개별 악수는 청와대 정무수석실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박 대통령이 20대 국회 여소야대 정국에서 ‘소통하는’ 이미지의 대통령으로 변화한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었고 그렇다면 유 의원과의 화해가 상징적으로 담겨야 했다는 얘기다. 유 의원과만 따로 인사를 나눌 수 없는 일이니 그렇다면 소속 의원들과 모두 인사를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유 의원은 다른 의원과는 5~10초 정도 더 긴 인삿말을 나누게 됐다.
박 대통령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사흘이 지난 1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유 의원 지역구 숙원사업이자 대구의 골칫덩어리였던 K2공군기지와 대구공항 통합 이전을 지시한다. 일종의 깜짝 선물이었다. 대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DD·사드)의 배치를 TK인 경북 성주로 결정하게 된다. 사실상 TK에 당근과 채찍을 함께 내린 셈이다.
당초 경북 칠곡에 사드가 배치될 것으로 알려졌을 때 ‘칠곡에 사드가 배치되면 수도권 방어가 안 된다’는 논리로 반대의사를 피력했던 유 의원은 경북 성주로 발표되기 직전 언론 인터뷰를 통해 “국방부나 군이 주한미군과 함께 입지를 결정하고 나면 그 입지가 군사적으로는 왜 최적의 입지인지, 또 주민 피해는 어떻게 하면 최소화할 수 있는지 잘 설명하면 된다. 그런 설명이 납득할 만하면 수용할 수 있는 문제”라는 입장을 표한다.
또 유 의원은 “군 입지에 대한 설명이나 배경, 목적을 설득하고 리더십을 발휘하면 되는 문제”라고도 했다. TK에 배치되더라도 납득할 만하면 전격 수용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박 대통령과 유 의원 간에 온기가 일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이다.
유 의원은 “원내대표 사퇴 결심을 하고 나서 대통령을 뵙고 공무원연금 개혁 추진 과정에서 있었던 소통 부족이나 오해에 대해서 풀고 싶었다” “앞으로도 차차 자연스럽게 소통할 기회가 오지 않겠나” “서로 있었던 오해나 이런 게 풀리면 저는 대통령께서도 제 진심에 대해서 이해를 해주실 날이 오리라고 생각한다” 등의 말을 하기도 했다.
유 의원 주변부에서는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면서도 은근한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한 측근은 “싫으면 그쪽으로 고개도 돌리지 않았던 박 대통령의 스타일을 봤을 때 이번 조우와 선물은 어떤 시그널일 수 있다”고 말했다. 유 의원도 사석에서 “그렇게 한 번에 풀어질 수 있겠나”라면서도 싫지 않은 기색을 내비쳤다는 후문이다.
8·9전당대회에 출마하는 당 대표 주자들도 유 의원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자신을 지지해 달라는 요청과,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말을 밖으로 꺼내지 말라는 당부로 나뉜다고 한다. 친박계 강경파들의 회유와 읍소로 출마를 장고하고 있는 서청원 전 최고위원도 유 의원에게 혹 출마하게 되면 도와줄 수 없느냐는 취지의 인사를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정병국 김용태 주호영 등 비박계 당권주자들은 모두 유 의원을 직접 만나 출마 배경을 설명하고 도움을 구했다고 한다. 이런 차에 박 대통령과 유 의원과의 화해기류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면서 유 의원 주가가 더욱 오르는 모양새다.
그 때문인지 차기 대권주자들 행보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2014년 7·14전당대회 당선 2주년 행사를 한 김무성 전 대표는 사실상 대선 출마를 공식화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전국 당원 1500여명이 참석해 열린 행사에서 김 전 대표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데 선봉에 서겠다”며 “한 사람만의 인치(人治)로는 대한민국을 운영할 수 없다. 제왕적 대통령 권력 체계를 여야간 연정할 수 있는 권력 구조로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김 전 대표는 축사 중간 중간에 원고에 없던 내용을 넣어 읽기도 했다. “다시 한 번 저 김무성을 믿고 힘을 모아 달라”고 말할 땐 목소리를 높였고 핏대를 세웠다. 이날 행사를 준비했던 김 전 대표의 측근은 “백브리핑을 할 필요도 없겠다. 오늘 발언 수위가 셌으니 더 드릴 말씀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 김 전 대표는 백브리핑 없이 행사를 끝냈다.
청와대와 국회의 세종시 이전을 주장하며 사실상 ‘수도 이전’ 입장을 밝힌 남경필 경기도지사도 사안마다 견해를 밝히며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다. 사드의 경기도 평택 이전에 찬성하면서 뭇매를 맞았지만 사드 배치의 당위성을 조목조목 설명하며 보수층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다.
자신의 사퇴를 촉구하며 단식농성 중인 도의원에게 ‘쓰레기’라고 발언한 홍준표 경남도지사도 ‘핫 피플’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홍 지사 주변부에서는 홍 지사가 이목을 끌기 위해 계산된 발언을 했다는 설과,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존재감을 피력하는 데에는 일단 성공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정필 언론인
“믿을맨은 형님뿐” 친박계, 서청원 미는 진짜 이유 친박계 핵심 실세인 최경환 의원의 불출마 직후 친박계 강성파 초재선 의원과 5선의 정갑윤 의원은 서청원 전 최고위원을 찾아가 당 대표 출마를 종용했다. 언론 인터뷰에 대대적으로 나서며 ‘서청원 추대론’도 설파했다. 경기도 화성 지역구와 강원도 모처에서 두문불출하며 칩거 중인 서 의원을 떼로 찾아가 회유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청와대 측은 “서 의원 개인으로는 절대 나가지 않겠다는 생각이 강하다”면서도 내심 출마를 바라는 눈치이기도 하다. 친박계가 서 의원을 대대적으로 띄우는 까닭은 그가 ‘믿을 만한 맏형’이기 때문이다. 친박계는 당초 신박(新朴) 혹은 범친박으로 분류되는 이주영 의원을 미는 것으로 공감대를 이뤘지만 이 의원이 “총선 참패 책임론을 심판해야 한다”는 말을 하자 즉각 지지를 철회했다는 후문이다. 친박으로선 일종의 ‘금기어’를 이 의원이 들고 나서자 “계파 대표로 밀기엔 ‘믿을맨’ 이 아니다”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서 의원도 당초 이 의원에게 경선 경험이 많은 실무진을 지원하려다 올스톱시켰다고 한다. 서 의원과 친했던 일부 당직자 등도 이주영 캠프에서 대거 빠졌다는 말이 돈다. 그렇다면 당권주자를 자처한 ‘박근혜의 입’ 이정현 의원도 있는데 왜 서 의원일까. 우선 이 의원이 청와대 홍보수석 당시 세월호 보도와 관련한 KBS 보도국장과의 녹취록 파문이 컸다. 이 의원이 3선이라는 점도 걸린다. 친박 색채가 너무 강하다는 것도 이번 당 대표 경선에서 약점으로 꼽힌다. 친박계는 대신 전임 지도부였지만 ‘진박 마케팅’과 ‘옥새 파동’에서 자유로운 서 의원이 나서야 한다는 쪽으로 방향을 튼 셈이다. 친박계 홍문종 의원이 “서 의원이 나오면 전당대회에 나오지 않겠다”고 한 점도, 원유철 전 원내대표가 불출마를 선언한 것도, 정우택 의원이 대권으로 방향을 튼 것도 모두 서 의원을 위한 ‘멍석깔기’라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서 의원은 8선으로 국회를 통틀어 최다선이다. 서 의원이 나선다면 후반기 국회의장을 사실상 포기한 것과 같아 당원과 대의원으로부터 ‘희생하는’ 리더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도 친박계가 서 의원을 강하게 미는 이유로 꼽힌다. 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과도 막역하다. 정무수석, 당 대표, 최고위원 등 8선의 경험도 무시할 수 없다. 친박계 교통정리를 위해서 청와대 정무수석과 홍보수석을 했던 이정현 의원을 이번 개각요인으로 꼽기도 한다. 단일화를 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입각시켜 출마를 막는다는 시나리오도 있다. 녹취록 파문으로 청문회 통과가 어렵게 되면 이 의원의 당권 도전의 길도 자연스럽게 막힐 수 있다. 현재 4명을 뽑는 최고위원에는 강석호 이장우 의원만 출마를 선언한 상태. 일각에선 서 의원이 당 대표에 도전하면 일부 친박계 후보가 최고위원 쪽으로 유턴할 수 있다는 대본도 흘리고 있다. 서 의원 측 관계자는 “서 대표의 결단만 기다리며 모두 스탠바이 중”이라며 “주위에서 압박이 굉장히 심하다”고 전했다. [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