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아카데미 사상 최초 흑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할 베리.
‘오스카의 저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확산된 결정적인 시기는 2000년대 초였고,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배우는 바로 할 베리였다. 1991년에 데뷔한 그녀는 10년 동안 할리우드 장르 영화의 남성 스타들 속에서 10년을 버텼고, <엑스맨>(2000)과 <스워드피쉬>(2001)로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고 있었다. 이 시기 만난 저예산 영화 <몬스터 볼>은 그녀에게 큰 도전이었다. 남편은 사형 집행으로 잃고 아들은 사고로 잃은 여성 레티샤. 할 베리는 역할에 깊게 빠져 들었고, 2002년 시상식에서 그녀는 아카데미 사상 최초로 ‘흑인 여우주연상 수상자’가 된다. 다만 엄밀하게 말하면 그녀의 엄마는 백인, 아빠는 흑인이었다.
하지만 이런 역사적 의의에도 불구하고 ‘오스카의 저주’는 비켜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가혹하게 그녀를 괴롭혔다. 사실 할 베리는 남자 복 없기로 유명한 배우였다. 무명 시절 그녀는 시카고의 치과의사인 존 로넌과 1989년부터 1991년까지 사귀었는데, 로넌은 1992년에 파산 신고를 하면서 베리에게 8만 달러 배상 소송을 걸었다. 그녀가 배우로서 성공하는 데 자금을 댔다는 것이다. 베리는 그 돈이 로넌의 선물이었다고 주장했고, 법원은 다행히 베리의 손을 들어 주었다.
<마지막 보이스카웃>(1991) 촬영 시기엔 당시 남자친구에게 맞아서 왼쪽 귀 청각의 80퍼센트를 잃었다. 그녀는 누가 그녀에게 폭력을 휘둘렀는지 밝히진 않았는데, 사람들은 당시 그녀와 사귄다고 소문이 돌았던 웨슬리 스나입스, 케빈 코스트너, 에디 머피 셋 중 하나라고 수군거렸다.
첫 결혼은 1993년이었다. 1992년에 MTV에선 셀러브리티들이 야구 게임을 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는데 현장엔 메이저리그의 유명 선수들도 등장했다. 그들 중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강타자 데이비드 저스티스도 있었고, 그에게 매력을 느낀 베리는 연인이 되어 1993년에 결혼했다. 하지만 3년 후 그들은 별거에 들어갔고, 당시 우울증에 빠진 베리는 자살 충동에 시달리기도 했다. “난 내가 가치 없다고 느꼈다. 인생의 큰 실패자 같았고, 사람들이 내 결혼 생활이 파국을 맞이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두려웠다.”
할 베리의 두번째 남편인 R&B 뮤지션 에릭 베네는 10여 명의 여자와 혼외 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이때부터 저주는 시작된다. 에릭 베네가 10여 명의 여자와 혼외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 그들 중엔 베리와 친한 여배우도 있었고, 팝 스타 머라이어 캐리와는 결혼 생활 내내 그렇고 그런 관계였다. 베네는 이 사실을 모두 인정했고, 부부 카운슬링을 받은 끝에 2002년에 섹스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35일 동안 클리닉에 들어갔다. 이후 부부는 화해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1년 동안 단 한 마디의 대화 없이 지냈다가 2003년부터 별거에 들어갔으며, 결국 2005년에 이혼했다.
이후 ‘림프 비즈킷’의 보컬 프레드 더스트, 방송 진행자인 스티브 존스, 배우 마이클 일리 등과 잠깐씩 사귀던 베리는 캐나다 모델인 가브리엘 오브리와 2005년 11월에 만나 2008년엔 딸을 낳았다.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사실혼 관계였던 베리와 오브리의 관계는 2010년 파국을 맞이했고, 당시 베리의 파트너는 프랑스의 배우인 올리비에 마르티네즈였다.
베리는 마르티네즈와 함께 프랑스에서 살기 위해 오브리와 양육권 분쟁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오브리와 마르티네즈의 주먹다짐이 있기도 했다. 결국 2012년에 법적 절차가 끝났고 베리는 오브리에게 매달 1만 6000달러의 양육비를 지급해야 했다.
할 베리와 세 번째 남편인 프랑스 배우 올리비에 마르티네즈. 둘은 지난해 이혼했다.
그렇다면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쥔 지 10년 즈음이 지난 시점에서, 과연 저주는 끝난 걸까? 처음엔 그렇게 보였다. 베리는 마르티네즈와 2013년 7월에 프랑스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같은 해 10월에 베리는 아들을 낳았다. 40대 중반에 낳은 아이였고, 비로소 할 베리에게도 평범한 결혼 생활이 찾아온 듯 보였다. 하지만 베리와 마르티네즈는 2015년에 이혼 수속에 들어갔다. ‘오스카의 저주’에 걸린 많은 여배우들이 그래도 10년 정도 지나면 삶의 안정을 찾는 데 비해, 할 베리의 인생은 너무 험난한 가시밭길처럼 보인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