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V 여배우 고자이 사키가 최근 AbemaTV에 나와 전 소속사로부터 AV 출연을 강요당한 적이 있음을 털어놨다.
지난 3월, NPO법인 ‘휴먼라이츠나우’가 발표한 보고서는 일본 AV업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 단체는 “에이전시와 계약한 젊은 여성들이 AV 출연을 강요당하는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면서 피해 방지를 위한 제도적 보완을 촉구했다.
보고서에 의하면, 에이전시 업체들은 연예인을 꿈꾸는 여성들에게 접근해 모델이나 탤런트로 활동하게 해주겠다며 계약을 맺는다. 이때 음란물에 출연한다는 사실은 철저히 감춘다. 계약한 여성은 촬영 전날이나 당일에서야 AV에 출연한다는 사실을 알고 거부하지만, 업체 측은 계약을 파기할 경우 어마어마한 위약금을 내야 한다며 압박한다. 또 학교로 찾아가거나 가족들에게 AV 출연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위협하는 경우도 많다. 보고서는 “자신이 찍힌 AV가 판매된다는 두려움에 목숨을 끊은 여성도 있다”고 전했다.
피해자 지원단체에 접수된 상담은 2012년에는 1건에 불과했으나 2014년에는 32건으로, 2015년에는 81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들어서는 무려 130건이 넘는다. 상담 내용은 주로 ‘AV 출연 강요’ ‘위약금 문제’ ‘과거 AV를 삭제하고 싶다’ 등등 여성들의 상담이 많지만, 최근에는 “게이 비디오에 출연한 남성들의 상담도 늘고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이토 가즈코 사무국장은 “교묘한 계약서로 성행위를 강요당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번 찍힌 음란물은 반영구적으로 남게 된다. 이는 명백한 인권침해”라면서 “AV 제조 과정에서 이뤄지는 인권침해를 근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가 발표되자 AV업계 종사자들은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특히 현직 AV 여배우들의 이의제기가 잇따랐다. 가사이 아미는 트위터에 “억지로 AV에 출연하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는 글을 올렸고, 하쓰미 사키 역시 “적어도 내가 보는 AV업계는 깨끗하다. 오히려 언론이 직업 차별을 조장하고 있다”고 못 박았다.
전직 AV 여배우 가와나 마리코가 AV업계 출연자를 지원하는 단체를 출범시킬 예정이라고 밝혔다. 출처=마이니치신문
팽팽히 맞섰던 양측의 균형은 지난 6월 중순, 대형기획사 ‘막스재팬’의 사장 등이 근로자 파견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면서 깨졌다. 체포된 사람은 현재 사장인 고시 다카시와 전 사장인 무라야마 노리히데, 그리고 남성 직원 세 사람이었다. 이들은 2013년 9월 30일과 10월 1일, 이틀간 회사에 소속된 20대 여성을 AV 제작회사에 파견하고 음란물에 출연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 여성은 경찰조사에서 “그라비아 모델로서 계약했지만, 다음날 AV 촬영을 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여성은 “계약해지를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소속사는 ‘부모에게 청구서를 보내겠다’며 해제에 응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이 여성은 25만 엔(약 268만 원)의 출연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불똥은 업계 ‘옹호 발언’을 한 여배우들에게 튀고 있다. 트위터에는 해당 여배우들을 비난하는 인신공격성 글들이 수없이 올라와 일부 여배우는 SNS 계정을 비공개 상태로 전환한 상태다. 여배우 A 씨는 <마이니치신문>을 통해 “확실히 피해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부분의 AV 출연자들은 잘 다듬어진 환경에서 성실하게 일하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또한 “이번 논란을 계기로 나처럼 AV 일을 좋아하는 여성들이 보다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되길 바란다”는 바람도 드러냈다.
유명 AV 제작사의 한 관계자는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털어놨다. “일본 AV업계의 시장 규모는 수천억 엔대에 달한다. 하지만 요 몇 년간 해외 성인사이트에 일본산 AV가 무단으로 게재되거나, 자율규제단체의 심사를 거치지 않은 무삭제 동영상이 떠도는 등 업계를 둘러싼 상황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의 말을 더 빌리자면, 수익성이 현저하게 떨어진 업체들이 이익을 늘리기 위해 AV 신작을 마구 찍어내고, 새로운 여배우를 차례로 데뷔시키는 데 혈안이란다. 게다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파격적인 내용’을 앞다퉈 제작하느라 출연자를 속이거나 지나친 성행위도 버젓이 강요되고 있다.
관계자는 “연간 제작되는 AV는 2000여 개로, 적어도 500명의 신인 여배우가 매년 데뷔하고 있는 셈”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아마추어 장르까지 합산하면 연간 2000~3000명의 여성이 AV 데뷔를 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는 “AV 제작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는데, 개인적으로 찬성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AV업계 스스로 목을 조르는 것과 다름없다”고 경종을 울렸다.
한편, 일본 직업안정법 등에는 ‘유해 업무에서 근로자를 보호하는 규정’이 있지만 AV업체 측은 근로 계약 대신 여성이 관리를 위탁하는 형태의 계약을 취하는 등 교묘하게 규제를 피하고 있다. 다만 “이런 계약이라도 자신의 뜻에 반하는 AV 출연이라면 따를 필요가 없다”고 <산케이신문>은 지적했다. 민법상 계약이 통상적인 미풍양속에 반할 경우 계약 자체가 무효화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성 측이 법정에서 승소한 사례도 있다. 지난해 9월, 기획사 측이 AV 출연을 거부한 20대 여성에게 위약금 2400만 엔(약 2억 6000만 원)을 요구하는 소송이 벌어졌는데, 도쿄지방법원은 “기획사는 막대한 위약금을 방패삼아 뜻에 반하는 출연을 강요하고 있다”면서 “위약금을 물지 않아도 된다”고 판결한 바 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