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학원 성추행’ 피해 아동을 돕기 위해 네이버카페 ‘아동학대방지시민모임’이 다음 아고라에 게시한 청원 내용이다.
[일요신문] “엄마, 선생님이 나를 사랑한대. 그리고 자꾸 이런 일을 해.” 지난해 5월 27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둘째 딸과 함께 단 둘이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던 엄마는 아이에게서 이상한 이야기를 듣는다. 아이가 다니던 바둑선생에 대한 이야기라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었지만 ‘이런 일’이라며 직접 보여주는 행위가 아무래도 이상했다. 아이는 마치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듯한 몸짓을 하며 엄마에게 “이러고 (선생님이) 휴지로 막 닦아”라고 덧붙였다. 엄마는 눈앞이 캄캄해지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이제 아홉살이 된 아이는 지능지수 약 61의 경도의 지적장애를 앓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이는 엄마가 묻는 질문에 명확하게 대답했다. 어디서 어떻게 행위를 했는지, 선생님이 자신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언제부터 행위가 이어졌는지에 대해 아이는 비교적 정확히 기억하고 막힘없이 이야기했다. 이런 악몽 같은 현실 속에서 아이가 이해하지 못한 단 한 가지는 ’그 행위가 어떤 의미였는지‘뿐이었다. 그리고 아이의 진술에서 자신을 사랑한다며 이상한 행위를 하는 선생님은 아이가 2년여 동안 다니던 바둑학원의 교사 김 아무개 씨(70)였다.
# 계속된 성추행…아이의 정확한 기억
이야기는 파고들수록 더욱 충격적이었다. 김 씨가 아이에게 몹쓸 짓을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것. 아이는 김 씨가 범행을 할 때마다 “사랑한다, 엄마한테는 꼭 비밀이다”라고 당부했다고도 말했다. 이 때문에 1년 반 동안 이야기하지 않다가, 지난해 5월 중순경 엄마와 저녁을 먹던 중 우연히 이야기를 꺼내게 됐다는 것이다. 엄마는 곧바로 김 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이후 검찰로 사건이 송치되면서 아이는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에서 진술 분석을 받았다. 결과는 “아이에게 경도의 지적장애가 있지만 자신의 경험을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진술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사건의 핵심사실과 관련해 일관된 진술을 하고 있다”며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했다.
아이의 진술에 따르면 김 씨의 범행은 학원 내 이곳저곳에서 벌어졌다. 아이는 김 씨가 하원 시간에 맞춰 다른 아이들에게는 집에 가라고 내보내고 자신만 남아 있으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다른 아이들이 학원에 남아있는 동안에도 범행이 지속됐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화장실에 갔을 때도 했다”라며 “(아이들이) 화장실 갔다 올 때 발자국 소리가 시끄러운데 그러면 선생님이 벌떡 일어나서 다시 바둑을 가르쳐줬다”라고 말했다. 교실, 상담실, 정수기가 있는 공간 등 아이의 진술 속에서 나온 학원 내 범행 장소는 이후 수사기관 진술에서도 일관되고 정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는 첫 피해에 대해 “바둑 할아버지(김 씨)가 작은 목소리로 ‘이리 와’라고 부른 뒤에 엎드리라고 했고, 내 위에 올라탔다”라고 말했다. 그런 일이 있은 뒤에는 김 씨가 자신에게 ‘마이쭈’ 같은 젤리나 건빵을 먹으라며 쥐어줬다고도 덧붙였다.
아이는 2013년 12월부터 2015년 5월까지 총 네 건의 성추행 사실을 기억해 내 진술했다. 진술에서는 “50번, 100번도 더 한 것 같다”라고 했으나 그나마 시점을 특정하고 비교적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 네 건이었다. 이처럼 반복적인 추행이 발생하면서 아이는 김 씨가 엎드리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또 다시 그 행위를 하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 목격자가 있었다
여기서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당시 바둑학원 원장을 맡고 있던 여성 K 씨다. 아이는 K 씨가 김 씨의 행위를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아이의 어머니 L 씨에 따르면 아이는 몇 번이고 강조해서 “사모님(K 씨)도 봤어”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날도 김 씨는 아이만을 학원에 남겨놓은 채 추행을 하고 있었는데, 문이 열린 틈으로 K 씨가 그 장면을 봤다는 말이었다. 아이는 K 씨가 김 씨에게 불 같이 화를 내며 자신을 상담실로 데려간 뒤 “(김 씨가) 또 그런 일을 하면 ‘싫어요’라고 하고, 상담실로 와서 ‘도와주세요’라고 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는 엄마와의 대화에서도, 수사기관 진술에서도 동일하게 나온 이야기다.
아이의 진술에 따르면 K 씨가 김 씨의 범행을 목격한 것은 2014년의 일이다. L 씨는 “2014년 8월경부터 김 씨가 독감에 걸렸다며 학원에 나오지 않았고 같은 해 9~11월까지 학원을 그만둔 상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 씨는 해당 기간 동안 학원을 그만뒀고, K 씨는 동네 인근의 다른 건물 바둑학원으로 옮겨 학원을 운영해 왔다. 당시 아이의 피해 사실을 몰랐던 L 씨도 옮겨진 학원으로 아이를 계속 보냈다. 그리고 학원을 그만둔 것으로 알려졌던 김 씨는 2014년 12월경 또 다시 K 씨에 의해 채용됐다고 L 씨는 주장했다. 김 씨의 범행은 이 학원에서도 계속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K 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범행 현장을 본 적도 없고 나야말로 김 씨로 인한 피해자”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K 씨는 “나도 피해 아동과 같은 여잔데 그런 장면을 보고 가만히 있었을 리 있느냐”라며 “뒤늦게 피해 아동 어머니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김 씨에게 ’정말 그런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그러더라. 그걸 믿었다”라고 말했다. 오히려 이 사건으로 인해 모든 장사를 접게 됐으니 김 씨를 고소하고 싶은 것은 바로 자신이라며 답답하다고도 덧붙였다.
L 씨는 원장인 K 씨가 김 씨의 범행 현장을 목격하고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그를 명목상으로만 해고했다가 다시 재채용한 것, 아이를 김 씨와 함께 단 둘이서만 놔둔 것을 주장하며 13세미만 미성년자 강제추행 방조 및 아동복지법 위반(아동유기·방임)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나 검찰은 K 씨에 대해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했다. 고소한 지 1년여 만의 일이었다.
# 사건 일자조차 모르는 검찰
1년 만에 불기소이유 통지서를 받은 아이의 부모는 황당해할 수밖에 없었다. 통지서에 검찰의 이름으로 적힌 피의사실에 범행 일시가 전혀 다른 날짜가 적혀있었기 때문. 검찰은 김 씨가 아이를 성추행한 기간이 2014년 9월부터 11월까지라고 적었다. 이는 김 씨가 학원을 그만둔 시기다. 특히 K 씨에 대한 불기소이유 통지서에도 같은 기간을 피의사실로 적은 뒤에 “K 씨의 방조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인정할 증거도 없으며, K 씨가 김 씨의 추행행위를 알면서도 보호를 게을리 했다고 인정할 증거도 없다”며 범죄혐의가 없다고 결정했다.
피해아동의 어머니가 서울고등검찰청 앞에서 검찰의 수사를 항의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출처=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L 씨에 따르면 K 씨에게 불기소 결정을 내린 해당 검사는 지난 1월 검찰청 인사이동을 통해 교체된 검사다. L 씨는 “담당검사가 바뀐 뒤 여러 차례 전화를 시도했지만 검사실에서 ‘담당자가 자리에 없고, 사건이 진행된 것도 없다’는 말만 들었다”라고 호소했다. 불기소 이유 통지서에 기재된 범행시기 일자의 오류에 대해서는 “이미 손을 떠난 사건이라 검사님은 답변하지 않는다”는 대답이 전부였다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실제 기자가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북부지검과 통화한 결과, 검찰 관계자는 “피의사실이 잘못 기재돼 있다면 법원이나 검찰 측에 직접 피해자가 탄원서나 진정서를 제출하면 될 일”이라며 “일일이 (검찰이 수사한) 사건 하나하나에 대해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어렵다”라며 자신들과 관계가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피해 아동의 아버지는 검찰청에 두 차례의 탄원서를 제출한 상태다. 그는 “검사 교체 이후 진전된 것은 아무 것도 없었고 도리어 대검의 진술 분석마저도 ‘달리 인정할 근거가 없다’는 말로 무시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지난 7월 1일 첫 재판에 다녀왔는데, 공판검사에게 ‘공소장의 범행시기가 틀렸다’라고 하니 처음 듣는다는 표정이더라”라며 “최소한의 인수인계를 했을 것인데 이번 사건의 가장 기초적인 사실조차 파악이 안됐다면 누구 책임이고 누가 피해를 보는 거냐”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일요신문>은 김 씨와의 통화를 시도했지만 김 씨는 “할 말이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한편 이들 부부는 서울고등검찰청 앞에서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대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