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배우 손예진이 영화 <덕혜옹주>에 제작비 10억 원을 투자한 사실이 공개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영화의 주연 배우가 자신의 작품에 10억 원에 이르는 제작비를 투자하는 경우는 영화계에서 그 사례를 찾기 어렵다. 특히 그동안 티켓파워를 과시하며 높은 개런티를 받아온 30~40대 남자배우가 아닌, 상대적으로 낮은 출연료에다 영화 출연 기회마저 적은 여배우의 선택이란 점에서 더욱 시선을 끈다.
손예진이 영화 ‘덕혜옹주’에 제작비 10억 원을 투자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사진제공=호필름
손예진의 <덕혜옹주> 제작비 투자는 작품을 향한 각별한 애정에서 출발했다. 영화를 촬영하는 과정에서 몇몇 장면이 축소돼 촬영되는 등의 상황을 목격한 그는 고심 끝에 직접 투자자로 나서 제작 환경을 여유롭게 만들기로 결심했다. 이후 소속사와 상의해 공동으로 10억 원을 마련, 제작에 참여했다. 손예진이 받는 개런티보다 약 두 배 더 많은 금액이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 <덕혜옹주>는 손예진의 추가 투자 덕분에 마무리 작업을 한층 여유롭게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총제작비 역시 110억 원 규모로 늘어났다. 손예진 소속사 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영화를 완성도 있게 만들고 싶다는 배우의 뜻을 고려했다. 투자사와 상의 끝에 결정했다”이라고 밝혔다.
손예진은 수십 개 브랜드의 광고 모델로 활동하며 수십억 원의 매출을 거두는 한류스타는 아니다. 물론 여배우 가운데 가장 개런티가 높은 편에 속하고, 화장품 등 광고 모델로도 활동하지만 일부 한류 톱스타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수입이 적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제작비 100억 원 규모 대작에 기꺼이 투자자로 참여한 데는 <덕혜옹주>에 거는 기대, 자신의 새로운 도전을 관객에 더 효과적으로 알리겠다는 적극적인 의지의 표현이다.
손예진은 <덕혜옹주>의 기획이 처음 알려진 2013년, 가장 먼저 주인공인 덕혜옹주 역을 제안 받고 망설임 없이 출연을 확정했다. 하지만 원하는 대로 촬영을 시작할 수는 없었다. 시대극인 영화는 몇 차례 시나리오 수정 과정을 거쳤고 남자 배우 캐스팅 작업 등을 이유로 촬영이 연기되기도 했다. 그 사이 손예진은 변함없이 자리를 지켰다. 보통 영화가 계획한 일정보다 늦어질 경우 다른 선택으로 ‘갈아타는’ 배우가 많다는 점에서 손예진의 선택은 보기 드문 결정으로 주목받았다.
손예진은 <덕혜옹주>를 통해 실존인물을 그리는 주연 배우로서의 책임뿐 아니라 투자자로서의 무게감까지 안게 됐다. 손예진은 “지금까지 출연한 영화 가운데 가장 힘들게 완성한 작품”이라고 밝혔지만, 그만큼 의욕을 보이고 있다.
김혜수는 소속사가 제작한 영화 ‘굿바이 싱글’에 노개런티로 출연, 의외의 흥행성과를 거두고 있다. 사진제공=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김혜수 역시 통 큰 양보와 기다림 덕분에 반전의 흥행성과를 거두고 있다. 김혜수가 주연한 영화 <굿바이 싱글>이 누적관객 200만 명을 동원하면서다. 연기 경력 30년 동안 쌓은 ‘이름값’과 ‘실력’에 더해 이제는 여배우로서 독보적인 ‘티켓 파워’까지 과시하고 있다.
<굿바이 싱글>은 김혜수 없이는 탄생하기 어려웠던 영화다. 2013년 전 시나리오를 받은 김혜수는 “운명처럼 다가오는 이야기”라는 생각에, 3년을 기다렸다. 더욱이 영화는 김혜수가 몸담은 매니지먼트사가 처음 제작하는 작품. 물론 김혜수는 “소속사가 제작하는 영화라는 사실이 내가 출연하는 데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지만, 영화계의 시선은 다르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개런티를 양보한 것은 물론 다양한 아이디어와 의견을 내면서 영화의 완성을 도왔다”고 밝혔다.
영화가 흥행하면 보통 배우들은 그 성과에 따른 보너스를 받는다. 관객 한 명당 일정 금액을 배당받는 ‘러닝 개런티’부터, 출연료 계약 때부터 총 수익의 일정 비율을 받는 ‘지분 확보’까지 그 방식도 다양하다.
이처럼 배우들의 개런티 계약과 지급 방식이 갈수록 구체화되고 있지만 이런 환경과 무관하게 자신의 주관대로 출연료조차 받지 않는 ‘뚝심’의 배우들도 있다. 제작진과 나눈 ‘의리’, 영화가 담은 메시지에 갖는 ‘신념’으로 가능한 일들이다.
배우 손숙은 최근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 5000만 원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3000만 원을 기부했다. 올해 2월 개봉한 영화 <귀향>이 358만 관객을 동원해 흥행에 성공하면서 최근 제작사로부터 보너스를 받자, 망설임 없이 이를 전부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돕는 데 내놓았다.
손숙은 ‘귀향’에 출연해 받은 흥행 보너스 전부를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돕는 데 내놓았다. 사진제공=제이오엔터테인먼트
사실 손숙은 <귀향>에 출연할 때 개런티를 받지 않았다. 제작진이 촬영 비용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처음부터 “재능기부로 하겠다”고 선뜻 제안했다. 이후에도 비용 마련이 어려워 촬영이 중단되기 일쑤였지만 그는 약속을 지켰다. 영화는 일제강점기 위안부 피해 소녀들의 이야기다. 손숙은 <귀향> 개봉 전 “영화가 잘된다면 보너스를 받아 전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기부하는 것이 내가 가진 목표”라고 밝힌 바 있다. 손숙의 기부금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돌보는 호스피스 병동과 인권센터 마련 등에 쓰일 예정이다.
‘다작 배우’로 유명한 성동일도 ‘노 개런티’를 선택할 때가 있다. 어려움을 겪는 영화계 동료의 재기를 돕기 위해서다. 성동일은 지난해 개봉한 영화 <비밀>의 주인공을 맡으면서도 출연료는 거절했다. 대신 촬영장의 맏형으로 후배들을 독려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 같은 ‘의리’의 시작은 2011년부터 싹을 틔웠다. 당시 성동일은 영화 <미쓰 GO>를 촬영하고 있던 때였다. 하지만 영화는 촬영 도중 어려움을 겪으면서 연출자가 바뀌는 상황을 맞았다. 일부 배우들이 혼란스러워하던 때, 성동일은 중심을 잡고 후배들을 다독였다. 당시 부산의 촬영장에서 ‘힘을 모아 영화를 완성하자’고 외친 사람도 그였다. <비밀>의 노 개런티 참여는 이렇게 시작됐다.
고현정 등 스타 배우가 출연한 <미쓰 GO>는 아쉽게도 만족할 만한 흥행을 이루지 못했다. 성동일은 의기소침해 하는 제작자에게 쉼 없이 전화를 걸어 안부를 챙겼다. “다음 영화는 꼭 같이 하자”고 용기도 북돋았다. 성동일은 1년에 두세 편의 영화에 참여할 정도로, 충무로에서는 누구보다 바쁜 배우이지만 <미쓰 GO>의 제작자가 새롭게 <비밀>을 준비하자, 열 일 제치고 그에 참여했다. 성동일이 출연하는 영화마다 흥행에 성공하는 ‘행운’은 이런 마음 씀씀이가 있어 가능한 일이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