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청와대의 4·13 총선 개입 의혹으로 대혼돈에 빠진 새누리당과는 달리, 범야권의 ‘8말 9초’ 권력구도는 큰 줄기가 잡힌다. 변수는 기존의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와 안철수 전 상임 공동대표, 8월 말 퇴각하는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의 행보 등이다. 이들을 둘러싼 세 가지 큰 그림이 차기 대권구도의 중대 분수령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야권의 8월 정국이 초읽기에 돌입했다. 김종인 대표와 문재인 전 대표.
첫 번째 그림은 더민주 8·27 전대다. ‘추미애 vs 송영길 vs 김상곤’으로 압축된 당권 경쟁이 ‘그들만의 리그’라면 이를 둘러싼 문 전 대표와 김종인 대표, 손학규 전 고문의 행보는 ‘메이저리그’다. 여기에 야권 세대교체의 선두주자인 김부겸 더민주 의원과 안희정 충남도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등은 판의 맛을 한층 높이는 ‘감초’다.
관심사는 더민주의 ‘태생적 딜레마’ 극복 여부다. 더민주 8·27 전대의 최대 변수는 친노(친노무현)·친문(친문재인)과 호남 표심이다. 이는 60년 전통 제1야당의 핵심 축이다. 김대중(DJ) 전 대통령 이후 참여정부 때부터 이들은 때로는 긴장관계, 때로는 공조관계를 각각 형성하면서 동거 체제를 형성했다. 참여정부 시절 열린우리당 창당 때 ‘난닝구(호남) vs 빽바지(친노 개혁파)’ 대결의 양자 간 충돌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지점은 더민주 계파 패권주의의 덫으로 작용했다. 8·27 전대 표심의 방향이 야권 발 정계개편을 촉발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8·27 전대는 애초 ‘추미애 vs 송영길’의 2파전에 김상곤 전 더민주 혁신위원장의 가세로 기존 판에 균열이 가해진 상태다. 김 전 위원장은 7월 19일 김종인 대표를 찾아가 “고민 끝에 출마하게 됐다”고 보고했다. 이에 김 대표는 “출마를 결심했으니, 열심히 잘 해보라”며 격려성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상곤 혁신위’에서 정치혁신안의 일환으로 폐지했던 사무총장제는 ‘김종인 비대위’ 체제에서 부활했다. 양측이 향후 대립 구도를 형성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진보성향 인사로 분류된 김 전 위원장이 4·13 총선 당시 당 혁신위를 이끌면서 사실상 친문 인사로 돌아섰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 주류 표심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당 내부에선 친노·친문계 일부 인사가 전대 흥행에 빨간불이 켜지자, ‘김상곤 등판’ 카드를 준비했다는 말이 나온다.
그간 친노계 내부에선 김 전 위원장에 대한 마음의 빚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진보성향 ‘교육 대통령’으로 평가받았던 김 전 위원장은 2014년 6·4 지방선거 땐 경기도지사 경선에서 패했고, 같은 해 7·30 재보선 땐 경기 수원을 공천에서 배제됐다. 범주류 한 관계자는 “문재인 체제 당시인 지난해 당 원내대표의 당무 거부 및 비노(비노무현)계의 대표 사퇴 요구 등으로 당이 아비규환이 됐을 때 혁신위를 이끌면서 중심을 잡아줬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 전 대표 측이 ‘전대 개입은 없다’며 문심(문재인 의중) 원천 봉쇄에 나섰음에도 친노계 특유의 ‘배제 리더십’이 여전히 작동한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친노성향 이재명 성남시장의 불출마로 전대 흥행에 적색 경고등이 켜진 상황에서 당 주류의 ‘김상곤 물밑지원’ 정황이 포착된다면, 만만치 않은 후폭풍이 불가피하다. 이 경우 차기 대권 블루칩인 김부겸 의원과 박원순·안희정·이재명 등 더민주 소속 지방자치단체장의 등판 문은 좁아진다. 문 전 대표로 사실상 정해진 ‘각본 있는 드라마’에 이들이 등장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차기 대선 전대 과정에서 문 전 대표와의 차별화가 필수인 이들은 내걸 수 있는 구도는 ‘탈계파·탈호남’이다. 자칫 친노 패권주의 프레임을 건들기라도 한다면 2012년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때 이를 선거 구도로 삼은 손학규 전 상임고문과 김두관 의원과 같이 변방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친노계 한 보좌관은 이들을 거론하며 “친노 패권주의를 고리로 문 전 대표를 공격했던 것은 패착 중 패착”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역동성 없는 경선은 곧 ‘문재인 필패론’으로 귀결한다는 점이다. 문 전 대표는 8·27 전대 전 네팔에 이어 두 번째 해외체류 방안을 검토 중이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AD) 정국 이후 ‘한·미·일 vs 북·중·러’의 신냉전 구도가 형성된 만큼, 미국이나 중국 등을 방문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친문계 내부에서는 북유럽 방문도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문 전 대표의 ‘호남민심 복원 플랜’은 또다시 후순위로 밀려남에 따라 차기 대권 전략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다음은 ‘김종인·손학규’ 연대설이다. 이들은 야권 발 정계개편의 ‘키맨’이다. 양측의 묵묵부답에도 이들의 연대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는 이유는 ‘독자세력화’의 깃발이 없기 때문이다. 친노계와 대립각을 세워온 김 대표도, 손 전 고문도 독자세력화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김 대표는 지역적 기반과 조직, 손 전 고문은 대중성이 아킬레스건이다. 이들이 독자세력화를 꾀해도 더민주와 국민의당에서 뛰쳐나갈 인사는 거의 없다. 야권 관계자는 손 전 고문을 거론하며 “더민주와 국민의당 내 계파가 적지 않지만, 자기 식구를 챙기지 못하는 스타일”이라며 “이인제 전 의원도 그 약점 때문에 독자세력화에 실패했다”고 말했다.
결국 기존 당 안에서 개헌이나 빅텐트를 앞세워 판을 흔들 수밖에 없다는 셈법이 나온다. ‘문재인 대항마’를 고리로 한 양측의 시나리오도 이런 맥락에서 꾸준히 거론된다. ‘문재인 vs 손학규’ 구도를 보였던 이른바 ‘어게인 2012년 대선 경선’이다. 김 대표도 7월 17일 오찬간담회에서 손 전 고문 복귀 여부에 대해 “지금이 적기”라며 “국민의당, 더민주 어느 쪽으로 가나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손 전 고문이 7월16일 강진의 한 식당에서 팬클럽인 ‘손학규를 사랑하는 모임’(손사모) 회원 50여 명과 식사를 한 자리에서 “산속 기거를 마치고 현실 정치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지 하루 만에 ‘손학규 독자세력화’를 일축한 것이다.
이 경우 8·27 전대 결과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여의도 안팎에선 손 전 고문이 애초 항로인 신당 창당을 접고 더민주 내 ‘역할론’에 대한 고민에 들어갔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모래알 조직인 비노계가 어느 정도 세력 확산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현 당적인 더민주에 정착해 ‘김종인·손학규’ 연대에 착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당권 주자인 송영길 의원이 손 전 고문과 가까운 만큼 ‘송영길 체제’가 열릴 경우 손 전 고문의 복귀에 걸림돌이 제거될 수 있다. 송 의원은 2007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을 탈당해 대통합민주신당에 합류한 손 전 고문 캠프에 합류했다. 당시 캠프 대변인은 우상호 현 더민주 원내대표였다. 차기 대권에서 손 전 고문과 ‘캐스팅보트’로 역할론을 튼 것으로 알려진 86(80년대 학번·60년대 생)그룹 간 연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송 의원도 최근 손 전 고문의 더민주 대선 후보 여부에 대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더민주 전대가 친노 패권주의로 얼룩진다면, 손 전 고문의 선택지는 국민의당과 제4의 길로 좁아진다. 손 전 고문의 복귀 시점은 ‘8말 9초’가 유력하다. 8·27 전대 직후 독일로 떠나는 김 대표의 귀국 시점과 맞물려 정계개편이 촉발될 것으로 분석된다.
마지막 퍼즐은 국민의당 전·현 대표인 ‘안철수·박지원’ 행보다. 일단 이들은 ‘정책행보(안철수)·대외행보(박지원)’로 역할 분담을 한 모양새다. 안 전 대표는 숨 고르기를 통해 3대(과학·교육·창업) 혁명 구상과 자신이 제안한 국회 미래일자리특별위원회 등 대권 플랜 구상, 박 위원장은 당내 장악력 제고에 각각 나섰다. 킹과 킹메이커의 ‘절묘한 조화’다. 안 전 대표는 국민의당 조기 전대론이 사실상 소강상태에 접어든 만큼, 당분간 강연정치를 통한 소통 행보와 함께 9월 정기국회 전인 8월 중 해외에 체류할 것으로 전해졌다. 행선지는 독일과 핀란드를 비롯해 중·일 등이 꼽힌다.
국민의당 한 당직자는 “현실 정치 경험이 부족한 안 전 대표 약점을 박 위원장이 메워주는 형국”이라며 당분간 공존 가능성을 피력했다. 대표적인 장면이 ‘사드 국민투표론’이다. 안 전 대표는 7월 정국에서 “국민 투표는 대통령이 국면을 해결해나갈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했지만, 이후 박 위원장 권유로 수위를 낮춰 ‘국민 비준동의’로 틀었다. 이 당직자는 박 위원장이 “내가 국민투표 제안은 하지 말라고 했는데…”라고 주변에 토로했다고 전했다.
‘안철수·박지원’ 역할분담론에 나선 당은 물밑에서 여권 실세인 친박(친박근혜)의 몰락으로, 정계개편 유동성이 커졌다고 판단하고 여야를 아우르는 정계개편 시나리오 준비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중도층에 소구력 있는 손 전 고문과 비박근혜 지지층을 포섭하는 여의도 발 빅텐트가 핵심이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차기 대선은 중도층 싸움”이라며 “38석에 불과하지만, 중도층의 안철수·호남의 박지원을 앞세우면 확장성은 문재인보다 낫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8월 정국은 대권 기지개를 켜는 문재인·안철수 전 대표와 8말9초로 예상되는 김종인·손학규 연대설 불 지피기, 여야 전대 결과에 따른 여의도 균열 등이 일시에 터지는 별들의 전쟁터가 될 전망이다.
윤지상 언론인
‘중도·무당층 떠날라’ 박지원 리더십 시험대 오른 까닭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의 리더십은 양날의 칼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제20대 국회 초반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와 검찰 개혁 이슈를 진두지휘하지만, ‘박지원 색깔’ 강화는 중도층 민심 이반으로 이어진다. 박 위원장의 광폭 행보는 이른바 ‘안철수 현상’을 이끈 행동하는 중도·무당층과 일정 부분 상충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당 내부에선 일단 박 위원장의 리더십을 믿고 가자는 분위기다. ‘김수민 리베이트’ 파문으로 안철수 전 상임 공동대표와 천정배 공동대표 등 ‘투톱 체제’가 무너진 비상 상황에선 박 위원장 같은 노련한 조율자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정치 8단’의 리더십이 가져온 효과다. 한 당직자는 ‘박지원 리더십’이 빛난 순간으로 세 장면을 꼽았다. 투톱 체제가 막 내린 6월 29일 직후 당내 최대 화두는 ‘조기 전당대회’ 개최였다. ‘박지원 독주체제’를 우려한 당내 안철수계와 일부 호남 의원들이 가세하면서 ‘조기 전대론’은 한층 탄력을 받을 조짐이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박 위원장이 ‘안철수 색깔’을 뺀 비대위를 구성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 국민의당이 조기 전대를 둘러싸고 혼돈에 빠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그러나 박 위원장은 7월 6일 단행한 총 11명의 1차 비대위원 선임 과정에서 안철수계 인사를 7명을 포함,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박 위원장 측은 이를 “대탕평책을 핵심으로 하는 박지원 리더십”이라고 평가했다. 국민의당 조기 전대는 여전히 살아있는 불씨지만, 당분간 박 위원장 중심의 권력집중화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박 위원장이 대변인단을 포함한 당직자 전원에게 내린 특명도 ‘박지원 리더십’ 구축에 한몫했다. 박 위원장은 주말이었던 7월 9일 국회에 나왔다가 대변인 등 당직자들이 없자, “앞으로 국회에 기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으면 당직자는 무조건 나와야 한다”고 언론 대응 방침을 하달했다. 또한 박 위원장은 7월 12일 DJ(김대중)정부에서 환경부 장관을 지냈던 연극인 손숙 씨가 ‘햄릿’ 공연 관람을 주문하자 “내가 가면 기자들도 따라가니까,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손 씨는 박 위원장의 재차 요청에 기자석 20석 이상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상체제에 선 박 위원장이 햄릿의 ‘죽느냐 사느냐’와 오버랩되면서 정치권 안팎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 당직자는 “국민의당이 순항한다면, 이 세 장면은 오래도록 회자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장의 ‘당내 장악력 제고’와 ‘사드’ 등 진보 이슈 선점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지층 통합을 위한 전략적 행보로 분석된다. 리베이트 의혹으로 휘청거렸던 국민의당이 위기 극복의 첫 단추로 ‘호남 민심’ 복원을 택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암초도 만만치 않다. ‘호남’과 ‘안철수 현상’은 이질적인 정체성이다. 양자의 조화를 꾀한다면, 호남과 수도권 확장을 통한 정권교체의 길이 보이지만, 반대의 경우 어느 곳 하나도 건지지 못하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 위원장이 연일 중도 확장성을 가진 손학규 전 상임고문의 등판을 촉구하는 이유도 ‘플랜 B’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양자의 ‘전략적 공조’ 여부가 박 위원장 리더십의 최대 시험대인 셈이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