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사는 과도한 운임경쟁 탓에 대형면허증만 있으면 알바로 운전시키기도
[일요신문]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는 표현이 딱 맞아요. 하루에도 두 세 번은 왔다갔다 합니다. 결국 돈이 문제죠.”
전세버스 운전기사 정 아무개 씨(52)의 말이다. 정 씨는 지난 17일 발생한 영동고속도로 연쇄 추돌 사고가 남 일 같지 않다. 사고와 관련한 언론보도 이후 운전기사들의 교통 무전방은 하루종일 씨끄러웠다. 정씨는 “‘아찔하다’ ‘영상만 봐도 잠이 확 깨더라’ 등의 분위기였다. 무리한 운행을 하다보면 자신들도 (사고 낸 버스기사처럼)언제든 졸음운전 위험에 놓이기 쉬운 환경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무리한 운전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회사에서 운전자의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배차를 하는 것도 문제”라고 토로했다.
지난 17일 평창군 용평면 영동고속도로 상행선 봉평터널 입구에서 관광버스가 교통체증으로 정차 중이던 승용차 5대를 잇달아 들이받아 4명이 숨지고 3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진=강원지방경찰청 제공
영동고속도로 관광버스 연쇄 추돌사고 원인도 운전자의 과실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가운데 전세버스의 무리한 배차 운영이 대형사고를 부를 수 있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회사의 지시대로 따르다보면 버스 운전자들은 20시간~30시간 동안 운전대를 잡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쪽잠 운행, 무박 운행이 공공연하게 이뤄진다는 것이다.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전세버스 교통사고는 지난 2013년 47건에 그쳤던 데 반해 지난해에는 78건으로 2년 전과 비교해 크게 늘어났다. 사상자 숫자 역시 같은 기간 212명에서 362명으로 41% 이상 증가했다.
문제는 대형버스 운전자의 부주의가 가장 큰 사고 원인으로 꼽힌다는 점이다. 경찰이 지난 2014년 전세버스 사고 원인을 조사한 결과 안전운전 의무 불이행, 안전거리 미확보, 신호위반 등 안전불감증 등이 사고 원인의 81%(960건)를 차지했다.
운전자들은 회사의 무리한 배차 구조를 지적한다. 정 씨는 “하루 두세 번 왔다갔다 하는 건 기본이다. 출퇴근 버스 운전할 때는 출근시간에 한 번, 퇴근시간 한번 그리고 그 사이에도 운행을 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루 종일 일해도 받는 임금은 턱없이 부족하니 계속 차를 몰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구조에서 운전하다 보면 안전거리 미확보, 졸음운전 등 안전문제가 발생한다는 주장이다.
한 관광버스 회사 운전기사 김 아무개 씨(54)는 “이번 사고는 무조건 운전자를 일벌백계해야 하는 게 맞다”며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번 사고를 낸 운전자에 대해) 이해가 간다. (사고 운전기사가)차에서 쪽잠 잤다고 하는데 얼굴 한 번도 못 본 사람들하고 함께 밤을 지내는 게 사실 불편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봐도 운전해야 하니까 자야하는데 밤새 술판 버리고 그 무리들 속에서 숙면을 취하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세버스 회사들은 이같은 배차구조 변화가 힘들다는 입장이다. 과도한 운임경쟁 탓에 일감 확보가 우선이기 때문에 운전자를 배려한 배차가 힘들다는 전언이다. 한 관광버스 회사 관계자는 “회사 자금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이 지입차(회사의 명의로 등록된 개인 소유의 차량)고 가용할 수 있는 버스에 비해 버스기사들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대형 면허증만 있으면 아르바이트 식으로 사람을 뽑아 운전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해외처럼 대형차 운전자에 대해 휴식 의무화 규정을 엄격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교통안전공단 관계자는 “독일의 경우 졸음·과로운전을 방지하기 위해 운전자들의 휴식을 법으로 강제하고 있다”며 “1일 최대 9시간이며 운행시간이 2시간일 때는 30분 휴식, 최대 4시간 30분일 때는 45분 휴식을 취하도록 되어 있다”고 말했다.
한국교통연구원 임재경 박사도 “우리나라도 독일, 미국, 일본과 같이 연속 운전시간을 제한하거나 최소 휴식시간을 의무화하고 있는 규정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지키지 않는 운수업체에 영업정지를 내리는 등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