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긴급제동장치가 있었더라도 봉평터널 참사를 막지는 못했을 것이다. 연합뉴스
봉평터널 사고 동영상의 댓글 중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대형 트럭·버스부터 AEB를 의무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AEB란 자동긴급제동장치(Automatic Emergency Braking)의 약어다. 이 장치는 자동차 운행 중 전방 차량과 충돌이 감지되면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지 않아도 자동으로 브레이크를 작동해 차량을 정지시키는 장치다.
#AEB가 있었다면 참사 막았을까
AEB가 모든 차에 달려 있으면 좋겠지만, 지금은 고급차에서도 최고급 옵션으로만 선택할 수 있는 비싼 장치다. 현대차 제네시스에서도 7170만 원짜리 최고급 사양에만 장착돼 있다.
현대자동차(현대차)는 2013년 11월 출시한 신형 제네시스(DH)부터 AEB를 적용했다. 이는 미국 IIHS(Insurance Institute for Highway Safety: 미국고속도로안전협회)에서 전방추돌 방지기능을 안전등급 산정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현대차 중에는 제네시스 출시 이후 나온 아반떼, 투싼 정도에만 선택 가능하고 예외적으로 IIHS 안전등급 낙제점을 받았던 싼타페가 안전사양을 대폭 강화하면서 AEB를 적용했다(맥스크루즈 포함).
AEB는 2009년 볼보 XC60에 ‘시티 세이프티(City Safety)’라는 이름으로 최초 장착됐다. 시속 50㎞ 이하에서 앞차와 추돌이 감지되면 자동으로 브레이크가 작동돼 차를 세운다. 주행 중인 앞차와 속도 차이가 시속 15㎞ 이하에서도 브레이크가 작동한다. 볼보는 모든 차량에 시티 세이프티가 기본 장착돼 있다.
시티 세이프티가 출시됐을 때 볼보는 포장용 상자를 쌓아놓고 시연했다. 이때는 자동차 등 비교적 면적이 넓은 물체에 대해 반응했다. 2011년 볼보는 보행자 추돌 방지 시스템을 내놓았는데, 이는 카메라를 통해 사람 형태를 인지하는 기능이 추가된 것이다. 자동차보다 사람을 인지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고도의 소프트웨어 기술이 필요하다. 볼보는 2013년 ‘사이클리스트 감지 시스템’도 내놓았다. 싸이클(자전거)을 탄 사람을 감지하는 것이 보행자를 감지하는 것보다 어렵다.
현대차도 제네시스(DH)에 최초 적용된 AEB는 차량만 감지했고, 2015년 나온 아반떼에 최초로 보행자 보호 기능까지 추가됐다. 지금은 AEB가 달린 현대차는 모두 보행자 보호 기능까지 가능하다.
AEB가 만능은 아니다. 현대차는 ‘AEB가 모든 상황에 작동하는 것은 아니며 운전자의 전방 주시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현대차 AEB도 고속에서는 ‘감속’, 저속에서는 ‘급정지’로 세팅돼 있다. 이는 시속 100㎞가 넘는 고속에서는 급정지를 한다고 해도 추돌을 피할 수 없고, 대신 운전자의 조작으로 추돌을 피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봉평터널 사고에서 만약 고속버스에 AEB가 장착됐다 하더라도 사고를 막진 못했을 것이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안전의식이다. AEB보다 추돌을 감지하면 요란한 소리와 핸들의 진동으로 운전자에게 경고를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프리 크래시 세이프티 시스템의 개념도
#충돌 직전부터 대비 태세 완료
AEB는 그보다 앞서 나온 ‘프리 크래시 세이프티 시스템(Pre Crash Safety System)’에서 유래했다. 이는 밀리미터파 레이더가 전방 차량 또는 장애물을 감지했음에도 운전자가 이를 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을 때 작동된다.
우선 안전벨트를 조이고 가볍게 제동을 걸어 운전자에게 주의를 준다. 탑승자가 시트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시트 각도를 세우고, 창문과 선루프를 닫는다. 브레이크와 에어백의 작동이 빠르게 되도록 미리 준비한다.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강하게 제동을 걸어 충돌하더라도 충격을 감소시킨다.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에 이 시스템이 적용돼 있다.
대개 차량끼리 충돌 시에는 에어백이 능동적으로 작동하는 유일한 장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안전벨트 텐셔너(seat belt tensioner)라는 것도 있다. 충돌이 일어났을 때 탑승자의 무게와 속도로 안전벨트가 늘어날 수 있는데, 에어백이 작동할 정도의 충격이 일어난다면 텐셔너가 안전벨트를 순간적으로 조인다. 안전벨트 텐셔너에는 화약식과 모터식이 있는데 화약식은 에어백처럼 순간적으로 강한 압력으로 작동하며, 모터식은 프리 크래시 세이프티 시스템처럼 충돌 직전부터 작동한다.
정면충돌뿐 아니라 후방 추돌에서 탑승자를 보호하는 장치도 진화하고 있다. 후방 추돌 시 헤드레스트가 앞으로 돌출해 머리 흔들림을 막아주는 것을 ‘액티브 헤드레스트’라고 한다. 현재 고급차에는 후방 추돌이 감지될 때 사전에 헤드레스트를 전진시키는 프리 크래시 세이프티 개념의 액티브 헤드레스트도 도입돼 있다.
한편 탑승자의 안전뿐 아니라 보행자 안전을 위한 첨단장치도 속속 도입되고 있다. 엔진룸 덮개인 후드(보닛이라고도 함)가 엔진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하는데, 이는 보행자 충돌 시 머리가 단단한 엔진과 부딪히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후드를 높이면 공기저항이 커지고 날렵한 디자인이 어렵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것인 ‘팝업 후드’로 보행자 충돌 시 후드 뒷부분을 들어 올리는 기능이다.
보행자용 에어백도 등장했다.
최근에는 보행자용 에어백도 등장했는데 후드가 팝업(순간적으로 들어 올려짐)됨과 동시에 에어백이 후드에서 외부로 펼쳐진다. 보행자의 머리가 앞유리 앞부분 또는 A필러처럼 딱딱한 곳과 직접 부딪히지 않도록 한다. 볼보의 일부 차량에 도입돼 있다.
현재 상용화되진 않았지만 안전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다. 대부분 자동차에 내비게이션이 장착돼 있기 때문에 GPS를 이용해 주변의 차량 움직임을 감지하고, 교차로 등에서 사고를 막도록 경고하는 기능도 시도되고 있다. GPS를 이용하면 고속도로 진입로에 잘못 들어가 역주행이 예상될 때 이를 경고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비게이션이 없는 차 또는 꺼진 차도 있기 때문에 이런 첨단 안전장치들도 보조적인 역할이 그친다. 결국 운전자의 안전의식과 주의가 사고예방의 첫걸음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우종국 자동차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