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인 머신’이었던 류현진의 억울한 논란
미국 애리조나주 글렌데일. LA 다저스의 스프링캠프지다. 2013년 막 다저스에 입단한 ‘루키’ 류현진은 첫 스프링캠프부터 하루에 수십 번씩 사인을 했다. 스프링캠프장은 일반 팬들에게 개방되고, 선수들이 지나다니는 통로에만 가이드라인이 쳐져 있다. 훈련을 마치고 클럽하우스로 향할 때면 늘 한 무더기의 팬들이 경계선 밖에서 선수들을 기다린다. 기대주 류현진 역시 팬들의 쏟아지는 사인 요청에 응하느라 여러 차례 발걸음을 멈춰야 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취재진 눈에 비친 류현진은 딱 두 가지 모습이었다. 훈련하거나, 아니면 사인하거나. 훈련 장소로 향하다가도 수십 차례 발걸음을 멈추고 사인을 했다. 특히 류현진은 한국인 팬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수많은 현지 팬들의 외침 사이에서 익숙한 한국어는 유독 잘 들리기 마련이다. “류현진 선수!”를 부르는 한국 팬들의 목소리가 몇 차례 들릴 때마다 바삐 옮기던 발걸음을 돌려 손을 내밀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한국인 아닌가.”
그런데 공교롭게도 바로 그 캠프 때 어떤 팬이 동영상을 하나 찍었다. 류현진이 사인 공세를 피해 재빨리 달려가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일주일가량 캠프를 지켜봤던 당시 취재진의 눈엔 류현진이 억울함을 호소해도 이상할 게 없는 장면이다. 끊임없이 수많은 팬들에게 사인을 해줬지만, 훈련 일정이 바빠 서둘러야 했던 바로 그 순간 사인을 받지 못한 팬은 상처를 받고 말았다. 그 동영상이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에 떠돌면서 류현진은 졸지에 ‘팬을 기피하는 선수’가 돼버렸다. 류현진이 메이저리그 진출 전부터 영어 사인을 미리 연습했을 만큼 팬서비스에 열의를 보였다는 걸 알고 있는 이들에게는 오히려 안타까운 해프닝이다.
‘2016 KBO리그 올스타전’ 경기를 앞두고 드림팀 삼성 이승엽의 사인을 받기 위해 많은 야구팬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 사인은 팬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프로야구 선수라면 누구나 사인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특히 각 구단 스타플레이어들은 경기 전후로 사인을 하는 게 주요 일과 중 하나다. 출근길에는 먼저 와서 기다리던 팬들에게 사인을 해줘야 야구장에 들어갈 수 있고, 훈련이 끝난 뒤에는 구단이 요청하는 수십 개의 야구공에 쉴 새 없이 사인을 한다. 경기가 끝나고 나오면 또 한 무더기의 팬들이 오매불망 선수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한 지방 구단의 간판타자는 “내가 입단 이후에 사인한 야구공이 몇 개인지 세어보고 싶다. 1년에도 수백, 수천 개를 했으니 전국으로 퍼져나간 공을 다 모으면 그 수가 엄청나지 않을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화려한 경력만큼이나 남다른 팬 사랑으로 유명한 한 선수도 “솔직히 나도 너무 많은 사인을 하다 보면 귀찮기도 하고 지칠 때도 있다”며 “그래도 사인이 팬들의 응원에 보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피곤하거나 힘들 때가 아니면, 웬만하면 사인 요청은 거절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다.
요즘은 각 팀 감독들도 선수들에게 사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무엇보다 어린이 팬들을 소중하게 대하라고 주문한다. 김경문 NC 감독은 “나도 어린 시절 좋아하는 선수를 만나고 기뻐했던 일이 아직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말 한 마디, 사인 하나가 한 야구팬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된다”고 했다. 선수들에게 늘 “어린이 팬의 사인 요청을 거절하지 말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염경엽 넥센 감독도 “내가 받는 연봉에는 팬에 대한 의무도 포함돼 있는 것”이라고 했다. “2군 선수들은 오히려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게 소원일 것이다. 주전 선수가 처음 됐을 때 마음이 간절하지 않았겠나”라며 “자리를 잡고 난 뒤에도 초심을 간직해야 한다. 야구만 잘 하는 게 아니라 팬들을 얼마나 확보하느냐도 성공의 척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사인 때문에 몸살을 앓는 선수들
팬들 역시 사인의 가치를 존중할 필요는 있다. 한 프로야구 감독은 목욕탕에서 만난 팬이 급한 마음에 우유팩을 펼쳐 사인해달라고 내밀자 고개를 저었다. 대신 자신의 승용차에 있는 팬북을 한 권 가져와 그 위에 사인을 해서 건넸다. 수도권 구단의 한 선수는 “여성 팬 세 명이 다가오더니 너덜너덜하고 작은 종이 한 장을 내밀면서 그 위에 사인을 하고 세 명의 이름을 모두 적어달라고 했다”며 “손등 위에 종이를 올려놓고 마지못해 사인을 해주긴 했지만,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고 토로했다.
특히 선발 투수에게는 등판 당일 경기 전에 사인 요청을 하지 않는 게 불문율이다. 그날은 감독과 동료들, 심지어 가족조차 투수의 기분을 배려한다. 취재진도 더그아웃에서 그 투수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한 경기를 가장 오래 책임져야 할 선수에 대한 예의다. 한 투수는 데뷔 초창기에 선발 등판하는 날 출근길에 팬들에게 사인 수십 장을 해줬다가 조기 강판된 기억이 있다. 이 투수는 “그게 꼭 사인 때문은 아닐 것이다. 내가 잘 못 던졌다. 그래도 나쁜 기억이 있는 날에 했던 행동은 안 하고 싶은 게 야구선수의 징크스”라며 “이후 일부러 인터뷰를 통해서 ‘등판 날은 사인을 못 해드리니 이해 부탁드린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고 털어 놓았다.
요즘엔 ‘전문 사인꾼’들도 등장했다. 선수들의 사인을 받은 뒤 인터넷에서 비싼 값에 되파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야구를 보지 않고 야구장 밖에 지키고 서 있다가 닥치는 대로 유명 선수들의 사인을 받아간다. 그리고 그 사인으로 수입을 챙긴다. 지방구단의 한 선수는 “언제부턴가 팬들에게 사인을 해줄 때 유독 자주 보이는 얼굴이 있었다. 그 후로는 왠지 ‘이 사인이 어디에 쓰일까’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딱히 거절할 방법도 없어 그냥 해주게 됐다”고 귀띔했다.
# 메이저리거들도 사인 공세에 몸살
사실 이런 풍토는 메이저리그라고 다르지 않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에서는 1990년에 이미 비슷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사가 실렸다. 1989년 애너하임에서 열린 올스타전을 앞둔 시점이었다. 지정 호텔에 묵고 있던 참가 선수 전원이 갑작스러운 화재 경보를 듣고 전원 밖으로 대피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경비원의 제지로 선수들에게 접근을 못했던 한 팬이 사인을 받기 위해 허위로 화재경보기를 작동시킨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메이저리거들은 운동장 안팎은 물론 숙소 앞에서도 사인을 해주느라 새벽까지 방에 못 들어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전문 사인꾼’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도 이 즈음이다. 메이저리그는 스포츠용품 경매 시장이 활성화돼있다. 선수의 사인을 받아 경매에서 비싸게 팔거나 어린이 팬들에게 판매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유망주 선수들의 사인을 아예 ‘투자’ 개념으로 모으는 사람들도 등장했다. 레전드 선수들의 사인볼이 수천 달러에 팔리는 일이 종종 벌어졌기에 가능했다. 한 사인꾼은 당시 현역 선수였던 놀란 라이언과 보 잭슨의 사인볼을 약 50달러에 팔겠다는 광고를 내기도 했다. 또 <스포츠 콜렉터 다이제스트>와 <터프 스터프>와 같은 잡지도 생겼다. “어떤 선수가 사인을 잘 해주고, 누구는 잘 안 해준다” “특정 선수의 사인이 담긴 야구공을 어느 도시에 가면 어느 정도 가격에 살 수 있다”와 같은 정보가 이 잡지들에 담겼다.
이 때문에 일부 유명한 선수들은 경기가 끝난 뒤 일부러 아기를 안고 밖으로 나가는 방법을 썼고, 어떤 팀은 아예 선수 전용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통로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해 팬들의 접근을 막기도 했다. 물론 팬들의 과격한 항의가 빗발쳐 곧 무용지물이 됐다. 당시 미국 언론은 “선수들의 연봉이 날로 높아지고 주목도도 높아지면서 선수들이 사인으로 그 대가를 갚고 있다”고 해석했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사인값’ 구로다>오타니>다르빗슈 ‘프로 사인꾼’이 생긴 이유는 간단하다. 그만큼 프로야구 선수들의 친필 사인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플레이어들의 기념비적인 사인은 경매를 통해 천문학적인 금액에 팔려 나간다. 역대 가장 비싼 사인볼 가운데 하나는 전설적인 타자 조 디마지오와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의 공동 사인이 담긴 공이다. 2006년 진행된 헤리티지 갤러리스 경매에서 이 ‘세기의 커플’ 친필 사인이 담긴 야구공이 무려 19만 1200달러(약 2억 1835만 원)에 낙찰됐다. 새 주인은 미국 동부에 사는 수집가로, 이 커플의 열렬한 팬이라고만 알려졌다. 디마지오와 먼로는 1961년 뉴욕 양키스의 플로리다 스프링캠프 때 이 공에 나란히 사인했다. 9개월간 부부였던 이 커플이 이혼 후 다시 만나 재결합을 모색하던 시기다. 불치병으로 은퇴하고 사망한 루 게릭이 1935년에 사용했던 사인 글러브도 2014년 한 경매에서 28만 7500달러(약 3억 2833만 원)에 낙찰됐다. 게릭은 1930년대 베이브 루스와 함께 양키스의 핵 타선을 이끌던 1루수다. 17년간 양키스에서만 뛰었고, 은퇴 전까지 2130경기 연속 출전 기록도 보유했다. 그러나 1939년 근육위축가쪽경화증으로 은퇴한 뒤 2년 후 37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이후 이 병에는 ‘루 게릭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글러브는 게릭의 사망 이후 가치가 훨씬 더 높아졌다. 이뿐만 아니다. 2012년 미겔 카브레라(디트로이트)가 45년 만에 아메리칸리그 타격 트리플 크라운(타율·홈런·타점 1위)을 달성한 뒤 그의 사인볼 가격은 껑충 뛰어 올랐다. 시즌 중반에는 150달러에 불과했지만, 시즌 막바지에는 이미 200달러를 넘겼다. 또 타격 3관왕이 확정된 직후 카브레라의 사인과 ‘트리플 크라운 2012(Triple Crown 2012)’라는 문구가 새겨진 기념 사인볼이 약 350~400달러(한화 약 40만~46만 원)에 팔려 나갔다. 일본의 원조 ‘괴물 투수’ 마쓰자카 다이스케가 보스턴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렀던 사인볼 역시 2500달러(약 286만 원)에 팔렸다. 메이저리그 첫 등판과 첫 승리를 장식한 기념구였다. 보스턴 지역 언론인 보스턴 글로브와 지역 스포츠방송이 주최한 자선 이벤트에서 시카고에 거주하는 한 30대 남성이 이 가격에 구입했다. 이 경매에서는 커트 실링이 사용했던 사인 글러브가 1000달러(약 114만 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일본의 괴물 투수 오타니 쇼헤이(니혼햄)도 이미 미국에서 스타 대접을 받는다. 올해 초 미국 애리조나로 스프링캠프를 갔다가 현지 팬들에게 나눠준 친필 사인볼이 200달러 이상의 높은 가격에 거래되기도 했다. 당시 유명 경매 사이트에는 오타니의 사인볼이 275달러, 사인이 들어간 사진이 350달러로 각각 등록됐다. 심지어 이미 메이저리그에서 한 획을 그은 일본인 투수 다르빗슈 유의 사인 사진보다 200달러 정도 비싸게 팔렸다. 오타니는 이변이 없는 한 수년 안에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선수다. 미국 야구팬들은 향후 오타니의 사인볼에 희소가치가 생길 것이라고 미리 내다봤다. 그러나 지난해 일본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사인 유니폼의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메이저리그 생활을 정리하고 친정팀 히로시마로 복귀한 구로다 히로키(41)였다. 지난해 일본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선 동일본 지진 피해자 지원 단체에 기부하기 위한 선수 사인 유니폼 경매가 진행됐다. 선수들이 각자 자신의 올스타 유니폼에 사인을 해서 내놨다. 총 68명의 유니폼을 일주일간 경매한 결과 무려 2403만 4578 엔(약 2억 5754만 원)의 수입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구로다의 유니폼은 무려 200만 1000엔(약 2144만 원)에 낙찰돼 최고가를 기록했다. 일본 최고의 스타 오타니의 유니폼(125만 9000엔)보다 두 배 가까이 비싼 가격이었다. 반면 팬들의 외면을 받는 사인도 있다. 메이저리그 통산 최다 안타(4256개)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피트 로즈는 경매 시장에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신시내티 감독 시절이단 1989년 승부를 걸고 도박한 혐의가 발각돼 메이저리그에서 영구 추방된 탓이다. 2012년 골딘 옥션 경매에 로즈와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영구 추방 합의문서 원본이 출품됐지만, 최저가 낙찰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팔리지 못했다. 로즈는 물론 메이저리그 사무국 고위 관계자 5인의 사인이 담겼고, 메이저리그 야구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문서였지만, 수집가들의 시선은 크게 쏠리지 않았다. 1919년 양키스가 보스턴에서 베이브 루스를 데려오면서 작성했던 양도양수 계약서가 99만 6000달러(약 11억 3743만 원)의 가치를 인정받은 것과 대조적이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