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양. 사진출처=NC 다이노스 홈페이지
[일요신문] 7월 한 달간 바람 잘 날 없던 야구계에 정점을 찍는 사건이 일어났다. 프로 스포츠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로 여겨지는 ‘승부조작’이 불거진 것. 2012년 적발 이후 4년 만에 벌어진 이번 승부조작 사건이 더욱 사람들을 놀라게 한 이유는 승부조작의 주인공이 탄탄대로를 향해 나아가는 듯 보였던 투수 이태양과 외야수 문우람이기 때문이다.
지난 7월 20일 오후, NC 다이노스 소속 이태양이 승부조작 가담 혐의로 창원지검 특수부에서 조사를 받은 사실이 보도됐다. NC 측은 이를 인정하며 발 빠르게 사과문을 내고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이태양의 실격처분과 계약해지 승인을 요청했다.
곧이어 승부조작에 가담한 선수가 더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그 주인공은 곧 넥센 히어로즈 소속으로 현재 국군체육부대에서 군 복무중인 외야수 문우람으로 밝혀졌다. 문우람은 경기 중 직접 승부조작 행위를 하지는 않았지만 앞서 브로커와 친분을 쌓고 이태양을 소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튿날 검찰이 보도자료를 내며 이번 사태의 실체가 낱낱이 밝혀졌다. 검찰의 조사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는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가장 놀라운 부분은 현역 선수인 문우람이 먼저 브로커와 이태양에게 승부조작을 제의했다는 점이다. 그는 조작을 ‘설계’했을 뿐만 아니라 그 결과 부당하게 얻은 수익을 중간에서 전달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검찰은 이태양을 국민체육진흥법위반죄로 기소했고 상무에 있는 문우람은 군 검찰로 이첩했다.
이태양이 21일 오전 사죄의 뜻을 밝힌 데 반해 현재 문우람은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원 소속팀 넥센 측은 “선수가 결백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만큼 혐의가 밝혀진다면 가장 무거운 징계를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검찰은 “혐의를 입증할 충분한 자료를 갖고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태양과 문우람의 승부조작 방식은 2012년 적발된 박현준·김성현 사건 당시 사용된 1회 초구에 고의로 볼을 던지거나 볼넷을 내주는 수법에서 더욱 발전한 모습을 보였다. ‘1회 볼넷’, ‘1회 실점’, ‘4이닝 오버(양팀 점수 합산 6점 이상)’ 등을 놓고 다양하게 조작을 시도했다. 검찰은 “1회 볼넷을 범하거나 사구, 실투 등으로 몸이 아직 풀리지 않은 것처럼 가장해 감독이나 관객이 조작을 눈치 채지 못하도록 했다”고 전했다. 이들의 교묘한 수법을 전해들은 팬들은 더욱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승부조작 방식이 발전한 만큼 이태양과 문우람이 부당하게 취한 이득 또한 박현준·김성현에 비해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승부조작 정보로 베팅사무실 운영자는 1억 원의 수익을 올렸고 이 가운데 절반이 브로커에게 전달됐다. 브로커는 전달 받은 5000만 원 가운데 이태양에게 현금 2000만 원을 지급했으며 문우람에겐 명품 시계와 의류 등 1000만 원 상당의 물품을 건넸다.
이들은 이후에도 3차례에 걸쳐 조작을 시도했고 이 가운데 한 번을 성공해 또 다시 수천만 원대의 금품이 오간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박현준과 김성현에게는 승부조작 행위 1회에 수백만 원 단위의 대가가 건네졌다.
이번 사건이 박현준·김성현 건과 또 한 가지 유사한 것은 각각 93년생(이태양)과 92년생(문우람)인 전도유망한 선수들이라는 점이다. 앞서의 두 선수 또한 LG의 미래를 짊어질 투수자원으로 평가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난 2012년 넥센에 동시에 입단하며 절친한 사이로도 알려진 이태양과 문우람은 두 선배의 몰락을 눈으로 지켜보고도 스스로의 앞길을 막은 꼴이 됐다.
넥센 소속으로 프로에 입문한 이태양은 2013년 NC의 신생구단 특별지명에서 선택을 받고 적을 옮겼다. 불펜과 선발을 오가며 가능성을 보인 그는 지난해 자신의 잠재력을 터뜨렸다. 22경기에서 10승 5패 평균 자책점 3.74를 기록, NC 돌풍에 힘을 보태며 팀을 가을 야구로 이끌었다. 지난해 활약에 힘입어 11월 열린 국가대항전 ‘프리미어12’에 국가대표로 나서기도 했다.
이후 NC는 이태양의 활약을 인정해 연봉 협상 테이블에서 기존 3300만 원에서 200% 이상이 인상된 1억 원으로 계약을 마무리 지었다. 이 같은 활약을 이어간다면 수년 뒤 FA계약에서 수십억대의 초대형 계약도 꿈이 아닌 듯했다.
문우람. 사진출처=넥센 히어로즈 홈페이지
문우람 또한 이태양만큼은 아니지만 넥센의 차세대 주자로서 ‘제2의 김현수’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유망한 선수였다. 신고 선수로 어렵게 프로무대에 입성한 문우람은 군 입대 전 마지막 시즌인 지난해 9000만 원의 연봉을 받았다. 이처럼 본인의 노력에 따라 미래에 얼마든지 큰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었던 이들은 단 몇 천만 원의 검은돈에 모든 것을 잃게 됐다.
4년 전 박현준과 김성현은 각각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 봉사활동 120시간을 선고받고 KBO로부터 영구 제명당했다. 따라서 이들은 대한민국은 물론 KBO와 협정을 맺고 있는 미국, 일본, 대만에서 야구 선수나 지도자로 활동할 수 없게 됐다. 법적 절차가 진행 중인 이번 사건에서도 당시와 비슷한 수준의 처벌이 내려질 것으로 점쳐진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4경기 시도 2경기 성공…‘알고 보니 보이네’ 창원지검 특수청에 따르면 이태양이 직접 나선 승부조작 행위는 총 4경기에 걸쳐 이뤄졌고 이 중 2차례만 성공했다. 조작 행위의 성패 여부에 베팅 수익금이 지급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입단동기 문우람의 제의를 받고 이태양이 승부조작 행위로 2000만 원의 현금을 챙긴 것으로 알려진 경기는 지난해 5월 29일 열린 NC와 KIA의 3연전 첫날이었다. 이날 ‘1이닝 실점’을 청탁 받은 이태양은 상대 1번타자 신종길을 2구째 몸에 맞는 볼로 출루 시켰다. 2번 강한울의 희생번트로 진루한 신종길은 3번 김주찬의 2루타로 득점을 올렸고 이태양은 ‘짜인 각본’을 실현시킬 수 있었다. 다음 조작 경기는 2개월여의 시간이 지난, 지난해 7월 31일 이뤄졌다. 넥센과의 경기에 나서게 된 이태양은 이날 4이닝 동안 양 팀 합산 6점 이상이 나야 수익을 올릴 수 있는 ‘4이닝 오버’를 청탁 받았다. 유한준의 희생플라이로 1회부터 1실점한 이태양은 이후 양 팀의 공격력이 터지지 않으며 조작에 실패했다. 세 번째 조작경기는 투수 로테이션이 돌고 난 직후인 8월 6일 롯데와의 경기였다. 세 번째 거듭된 시도에 과감해진 탓인지, 아니면 지난 경기의 실패에 조급함 때문인지 승부조작 시도 경기 간격이 짧아졌다. 이날 비교적 간단한 1회 볼넷을 주문받은 이태양은 2번·4번타자 정훈과 아두치를 상대로 볼넷을 기록했다. 특히 아두치를 상대로는 스트레이트 볼넷을 기록해 눈길을 끈다. 마지막 kt와의 9월 15일 경기에서 이태양은 1회에 실점을 허용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브로커 측의 청탁과 달리 이태양은 1회를 삼자범퇴 처리하며 조작에는 실패했다.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