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이 계속된 오보로 비난을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기피아’ 등 내부 시스템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기상청 건물 전경.
예보가 빗나가면서 시민들이 겪는 불편 역시 가중되고 있다. 야외활동에 차질을 빚는가 하면 휴가철을 맞아 일정을 잡기 어렵다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기상청 체육대회 날에도 비가 온다’는 우스갯소리는 더 이상 웃지 못 할 말이 됐다. 기상청은 지형적 문제 등으로 인한 예보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지만 내부 자체의 문제점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야구 고수들은 외국 기상청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구름 방향을 보고 날씨를 판단한다.” 열혈 야구팬인 직장인 조 아무개 씨(여·27)의 말이다. 조 씨는 “야구팬들은 기상청을 ‘구라청’이라고 부를 정도로 예보를 믿지 않는다. 비 예보가 없어서 야구장에 갔는데 시작 10분 전 쯤 비가 와 경기가 취소된 경우가 다반사다. 심지어 경기가 취소되니 비가 그친 적도 있다”고 전했다.
대학원생 김 아무개 씨(여·26)도 “친구들과 휴가를 맞춰 가평으로 여행 계획을 세웠는데 예보와 달리 당일 폭우가 쏟아졌다. 바비큐는커녕 숙소에만 있다가 막국수 한 그릇 먹고 왔다”며 허탈한 추억을 털어놨다. 이렇듯 오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시민의 몫으로 남는다.
기상청은 “오보는 날씨 변동성이 많은 여름철에 국한된 이야기”라고 해명하고 있다. 기상청 관계자는 “장마 전선은 지형·지세 영향을 많이 받는 데다가 우리나라의 경우 바다와 산지가 있어 예측이 특히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기상청 자체의 내부 시스템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2014년 기상청은 납품 및 인사 비리 등으로 몸살을 앓았다. 같은 해 10월 ‘기상청 비리 척결단’까지 출범됐을 정도다. 당시 척결단은 “정확한 관측과 예보로 기상재해를 예방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기상청이 온갖 비리와 후진적 조직 문화로 ‘오보청’ ‘파벌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며 “그 중심에는 특정 대학 출신의 학맥으로 연결된 ‘기피아(기상청+마피아)’가 자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기피아’는 서울대와 연세대 기상 관련학과 출신의 학맥을 의미한다. 지난 2013년 10월 1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종훈 새누리당 의원이 기상청에서 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5년간(2008~2012년) 5급 이상 승진자 80명 중 40%에 해당하는 32명이 서울대 대기과학과와 연세대 기상학과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정 학맥이 승진에서 특혜를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대두된 이유다.
기상청 관계자도 학맥에 대해 일부 시인했다. 관계자는 “간부 가운데 서울대와 연대 출신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80~90년대 얘기다”라고 말했다. 현 간부들이 입사했을 당시엔 기상 관련 학과가 설립된 대학이 극소수였고 더구나 특채가 많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어 기상청 관계자는 “지방 국립대 등에서 기상 관련 학과가 늘어났고 특채가 사라져 파벌은 없다. 현재 국장급부터는 다양한 학교 출신이 포진해 있다”고 말했다.
학맥으로 인한 인사 문제뿐 아니다. 2014년 국정감사에서는 기상청의 납품 비리가 도마에 올랐다. 2014년 감사원 감사에서도 민낯이 드러났다. 감사원에 따르면 기상청은 한국기상기후아카데미에 2011년부터 3년간 모든 교육 훈련 용역 계약을 몰아준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기상기후아카데미는 퇴직한 기상청장이 설립했고, 당시 원장 등 간부들은 기상청 퇴직 임원들로 발탁됐다.
이처럼 여러 문제가 연이어 불거지자 기상청은 뒤늦게 국민 감시 기능을 강화하는 옴부즈만 제도를 도입하고 기상 장비 구매 총괄 부서를 신설하는 등 자체적으로 수습에 나섰다. 기상청 관계자는 “변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도 국민 생명과 재산 보호에 힘쓰며 특히 내부 문제에 대해서도 시정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 국민들은 ‘예보’를 ‘확보’로 받아들인다. 선진국에선 예보를 ‘정보’라고 인식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기상청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여기엔 최근의 연이은 오보가 큰 영향을 미쳤다. 유명재 화이트피스국제연맹 사무총장은 “최근 계속되는 오보 사태 등을 보면서 결국 셀프 개혁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이라며 “기상 예보의 가장 큰 피해자인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기상청으로 거듭나기 위한 실효성 있는 개혁을 위해서는 순수한 민간이 참여하는 민관산학협의체 구성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