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공식’이 발표되고 약 20년이 흘렀다. 그동안 우리의 여름은 이별 장면뿐 아니라 거의 모든 순간이 열대 우림 기후로 변했다. 일요일인 지난 24일 저녁도 평소와 다르지 않아 습도 80%에 달하는 찌는 더위는 계속됐다. 그런데 이 여름 한복판, 기자는 쉐이크쉑버거(쉑쉑버거)라는 새로운 햄버거집 앞에 줄을 섰다.
쉑버거 더블의 위용.
알려진 대기 시간은 약 3시간. 어린이날 놀이공원 롤러코스터처럼 길고, 롯데리아의 모짜렐라 인더버거 치즈처럼 늘어지는지라 혼자 기다리기 두려울 지경이었다. 주말 중 시간대를 골라보니 역시 일요일 저녁을 약간 지난, 이때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다행이 줄은 길지 않았다. 물론 ‘줄이 길지 않다’는 상대적 개념이다. 쉑쉑버거의 커다란 빌딩을 이무기처럼 한 바퀴 감았다는 대기 줄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줄 선 사람들을 보니 둘 이상이 같이 기다리며 서로 재잘거리기 바빴다. 셀카를 찍어 쉑쉑버거 ‘인증사진’을 SNS에 부지런히 올리는 사람도 많았다. 셀카를 찍는 사람들을 다시 카메라에 담는 사람들도 보였다.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신기한 듯 쳐다보는 걸 넘어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았다.
기다리는 사람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휴대폰으로 찍는 건 크게 개의치 않아 했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장 찍는 것에서 한 마디 보태는 경우도 있었다. 그 한 마디는 대개 “이해가 안 간다” “뭐 대단하다고” “뭐만 생기면 우르르 몰려다닌다”를 넘어 “미개하다”까지 이르렀다.
50분 정도 지나자 정문이 닿을 듯 가까워졌다. 2시간 30분~4시간까지 걸린다는 이야기는 이제 하나의 민화나 전설이 되는 건가. 1시간이 넘어가자 문 바로 앞까지 왔다. 마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는 느낌. 아스라이 먼 별 같던 저 문이 이제 한 발짝 앞으로 다가왔다. 한 발짝 안이지만 저 안은 천국, 밖은 지옥이었다.
오래 서 있던 탓에 땀이 쏟아지고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땀 냄새도 심해졌다. 강남 찜통 한가운데서 보기엔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 햄버거를 먹는 저 사람들은 천국에 있는 듯했다. 햄버거는 이제 됐다. 그냥 저 안에서 에어컨 바람만 쐴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기다리는 사람은 셀카를, 그 기다리는 사람을, 다시 구경하는 사람들이 휴대폰 카메라로 찍었다.
드디어 주문할 수 있는 카운터로 들어왔다. 문 하나 사이로 천국과 지옥이 갈렸다. 카운터 뒤쪽으로는 다국적의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간간히 이상한 구호를 외치고 서로 화답하는 모습을 보였다. 토종브랜드 맘스터치에서는 볼 수 없는 이런 게 ‘뉴욕의 맛’인가. 토종 한국인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문화다.
마침내 주문. 줄을 기다릴 때 이미 메뉴판을 나눠줬기 때문에 메뉴판 쳐다본 것만 1시간. 주문은 이미 머릿속에 각인됐다. 주문한 메뉴는 대표 메뉴 쉑버거의 더블, 슈룸버거와 쉑버거를 동시에 맛볼 수 있다는 쉑스택, 치즈프라이(감자튀김에 치즈를 끼얹은 음식), 밀크쉐이크 그리고 ‘강남(Gangnam)’이었다.
다른 건 그렇다 치고 강남이 도대체 뭔가. 메뉴 이름이 특이하다 보니 한국 특화 메뉴(누가 봐도 그렇겠지만)로 보였다. 내 돈이었다면 절대 사먹지 않을 메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한 번 먹어보자는 생각으로 추가했다. 후에 SPC 측에 전화로 문의했다. “쉑쉑버거는 새로운 도시에 매장을 낼 때 그 도시에서만 맛볼 수 있는 메뉴를 추가한다. 그게 한국에서는 강남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모든 메뉴를 통틀어 가격은 4만 원이 나왔다.
대표 메뉴 쉑버거의 더블, 슈룸버거와 쉑버거를 동시에 맛볼 수 있다는 쉑스택, 치즈프라이(감자튀김에 치즈를 끼얹은 음식), 밀크쉐이크 그리고 ‘강남(Gangnam)’.
주문을 하고 보니 매장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 물론 밖에 아직도 줄 서 있는 사람들 비해서는 한참 적지만 회전율이 높은 패스트푸드라 그런지 자리는 많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약 10분쯤이 흘러서 드디어 진동벨이 울렸다. 줄을 선 지 약 1시간 20분이 지났을 때였다. 햄버거를 받아들었다. 생긴 건 독특하다. 수제라 그런지 패티가 제멋대로 튀어나와 있다.
일단 한 입 베어 물었다. 패티의 맛은 확실히 상상 이상이다. 살아 있는 느낌이 든다. 쉑스택은 쉑버거 베이스 중간에 버섯 튀긴 게 들어있다. 다만 ‘맛알못(맛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보기엔 쉑버거 더블이 더 맛있어 보였다.
쉑쉑의 자랑이라는 감자튀김은 예상보다는 그저 그랬다. 입맛이 싸구려일 수도 있겠지만 치즈까지 뿌려 놓은 감자튀김은 너무나 느끼해 다 먹지 못하고 남겼다. 밀크셰이크가 필수인 이유도 그때 알았다. 햄버거, 감자튀김 등이 너무 짜서 어쩔 수 없이 밀크셰이크를 마시고, 그럼 또 너무 달아 다시 햄버거를 입에 문다. 극단적 ‘단짠단짠’, 이게 바로 뉴욕의 맛이구나 싶었다.
문제의 강남. 한국에서만 먹을 수 있는 메뉴. 일단 조합이 괴상하다. 소프트 아이스크림에 딸기잼을 몇 스푼 퍼 넣어준 데다 비스킷을 올렸다. 속는 셈치고 한 숟갈 떠먹어봤다. 딸기잼만 입에 들어갔다. ‘안 되겠다, 잘 섞어야겠다’고 마음먹고 휘휘 저었다. 색깔이 마치 새벽 5시 강남역 이곳저곳에 흩뿌려져 있을 그 무엇 같았다. ‘도대체 이런 조합을 왜 한국을 위해 만들었나’라는 의문이 그 색깔을 보는 순간 해결됐다. 아 이게 바로 강남의 맛이구나.
입 안 가득 기름기를 느끼며 쉑쉑버거 정문을 나와 다시 밖으로 향했다. 9시를 향해가는 시간에도 사람이 구름떼처럼 모여 있었다. 쉑쉑은 어디로 갈까. 뜨겁게 타올랐다 철수한 브랜드들의 명단에 한 줄을 추가할까, 아니면 20개 이상의 매장을 내겠다는 SPC의 계획대로 또 하나의 국민 브랜드의 길로 갈까.
김태현 비즈한국 기자 toyo@bizhank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