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실의 품위 2013-4>(2013) 150*120, 닥종이에 금박·채색.
Future Art Market-Artist 1
‘고품격 한국 미감의 선두주자’ 서수영
우리 미감의 첫머리에는 서민적인 아름다움이 떠오른다. 고졸하고 소박하며 담백함이다. 절제된 색감과 함축된 형상으로 정제시킨 아름다움이다. 심지어 백색의 미, 비애의 미라고까지 부른다. 여기에는 부정적 요소가 깃들어 있다. 이런 미감이 형성된 뒷면에는 일제강점기의 교묘한 문화 술책이 숨어 있다. 일제 식민 정책 중 하나로 우리의 정신을 개조하려 했다.
그런 시도 중 한국적 미감의 한 측면만을 강조했던 것이 있다. 이런 미감은 우리 문화의 특징 중 하나인 것만은 사실이다. 일제강점기 일본 학자 야나기 무네요시가 찾아낸 미감이다.
그리고 고졸, 절제, 백색의 미감만이 우리 미의 정수라고 믿는 데는 표현을 억제했던 유교 이념이 빚은 조선의 미감이 이를 정당화시키는 데 한몫 거든 것도 사실이다.
<황실의 품위-선물Ⅱ>(2014) 130*95 닥종이에 금박·동박·석채.
이게 우리 미감의 전부일까. 우리에게는 화려한 색감과 뛰어난 장식미 그리고 감각적인 아름다움도 있다. 거기에 다이내믹한 요소도 있다. 고려불화나 신라의 공예 그리고 고구려 벽화, 백제의 불상들이 그렇다. 이런 미감을 주목하고 표현하는 작가가 서수영이다.
그는 왕실의 화려한 색채와 섬세한 장식미를 통해 우리가 잊고 있는 한국 미감의 고급스러움을 보여준다. 전통기법의 섬세한 묘사와 현란한 색채 운용으로 우리 미감의 진면목을 표현하고 있다.
이런 감성을 담기 위해 서수영이 선택한 것은 금박이다. 금박은 순금을 얇은 종이처럼 만든 것으로 고귀한 이미지를 덧칠하기 위해 쓰는 재료다.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이 고귀한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 문화 중 품격 있는 고급문화다. 즉 궁중을 중심으로 한 사대부 계층이 만들어낸 우리의 고급스런 미감을 자신의 작품 속에서 되살려 보고 싶은 것이다. 그것이 막강한 힘으로 밀려들어오는 서구 문화와 맞서 우리 미감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무기라고 생각한다. 이는 매우 의미 있는 발상이다.
그의 작품은 금박으로 표현한 전통 이미지의 인물이나 사물, 그리고 전통 회화기법으로 처리한 추상화된 배경으로 나누어져 있다. 인물은 주로 왕과 왕비의 초상이며, 사물의 경우에는 사대부 계층의 일상용품인 책상, 등잔, 서가, 문방구 등이다. 때에 따라서는 황실의 품위를 상징하는 용이나 봉황 같은 상상 속 동물이 등장하기도 하며, 문양이나 연꽃 또는 민화적 이미지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소재는 모두 본받아야 할 우리의 정신적 유산을 상징하는 것이다. 어느 나라에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고 격조 높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 고귀하다고 작가는 생각한다.
전통회화 기법인 먹과 채색을 위주로 처리한 배경에서는 투명한 깊이가 느껴진다. 금박을 입혀 그린 주제 덕분에 배경의 깊이감은 더욱 깊어 보인다. 배경 처리에 이처럼 공을 들이는 이유는 시간의 이미지를 그리기 위함이다. 과거에 존재했던 주제를 현재로 끌어와 보여줌으로써 그 가치가 지속된다는 생각이다. 즉 우리 선조들이 만든 고귀한 아름다움은 시간을 뛰어넘어서도 유효하다는 생각이며 당당히 대접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준엽 화가·아트에디터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