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에서 즐기는 포켓몬 고는 성남의 한 스타트업 회사에 근무하던 고승일 씨(25)의 아이디어에서부터 출발했다. 자신을 “하고 싶은 것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고 소개한 고 씨는 “‘포켓몬 고’ 열풍에 당장이라도 자신도 참여하고 싶었지만 직장에 출근해야 하는 현실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고 씨는 “고민과 나름의 조사 끝에 일정 공간과 ‘GPS 시뮬레이터’라는 기계가 있으면 ‘포켓몬 고’를 즐기기가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1억 원을 훌쩍 뛰어넘는 고가의 기기가 필요했지만 게임을 하고 싶은 많은 사람들이 조금씩 참가비를 모으면 되겠다는 생각에 그는 곧바로 참가자 모집에 돌입했다.
자신만의 공간에서 ‘포켓몬 고’를 시험해보고 있는 고승일 씨.
개인적으로 공고를 인터넷에 올렸을 뿐만 아니라 일부 언론에 보도자료를 제공하기도 했다. 폭발적인 관심이 쏠렸고 더 많은 언론과 스폰서를 하겠다고 나선 기업의 문의가 빗발쳤다. 수백 명의 참가자가 참가비 없이 판교에 모여 제공된 음식을 함께 먹으며 포켓몬을 잡는 일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연락을 취해온 기업들은 현장을 중계하는 미디어, 참여자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업체 등 다양했다. 한 대형 유통업체는 장소와 거액의 비용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한 매체에서 위법성 문제 등을 제기하면서 프로젝트에 제동이 걸렸다. 이번 행사에 GPS를 조작하는 것이 결정적인 문제였으며 기업이 개입됐다는 부분도 걸림돌이 됐다. 또한 포켓몬 고 코리아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도 있었다. 이러자 지원을 약속한 기업들이 각종 논란으로 행사 참여를 망설이기 시작했다.
또한 수없이 많은 문의를 받는 과정에서 고 씨가 근무하던 회사와 회사 대표에게도 수십 통씩 전화가 걸려왔다. 업종의 특성상 수시로 걸려오는 전화는 회사의 피해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결국 고 씨는 해고되고 말았다. 회사에서 진행한 프로젝트였다면 문제될 게 없는 상황이지만 고 씨가 개인적으로 진행하던 프로젝트였던 터라 결국 퇴직하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고 씨는 “부모님께서는 지금이라도 회사에 찾아가서 ‘죄송하다’고 말하고 다시 다니라고 한다“면서 “사과를 드리는 것은 맞지만 개인적 계획이 있기 때문에 다시 회사에 다닐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7월 23일로 예정됐던 1회 행사는 연기될 수밖에 없었다. 해고와 동시에 사용하던 회사 전화기를 반납하면서 개인 연락처가 변경돼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결과적으로는 주요 기업 몇 군데에서 행사에 참여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놓으며 ‘판교 포켓몬 고’는 잠정적으로 중단됐다. 자연스레 7월 30일로 예정됐던 행사도 무산됐다.
고 씨는 휴학 이후 스타트업 회사에 다니다 수억 원대의 행사를 기획하던 중 해고되고 행사마저 열지 못하게 됐다. 그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며 “최종적으로는 행사와 관련해 문제 제기가 되지 않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는데 준비 과정에서 대처를 잘못하는 바람에 이렇게 됐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잠정적으로 행사 진행은 중단된 상황이지만 돕겠다는 문의가 이어지고 있어 재개될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하지만 이전보다 조심스럽게 준비할 것이고 강행할 계획은 없다. 앞으로 포켓몬 고가 국내 정식 발매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명확하게 말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편, 아직 국내에서 서비스가 되고 있지 않은 포켓몬 고는 정부의 정밀지도 국외 반출 불가 방침에 막혀있는 상태다. ‘구글 지도’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포켓몬 고는 증강현실(AR) 기술을 이용해 현실의 도로나 풀숲에서 게임이 이뤄지는 만큼 정밀 지도 데이터는 필수적이다. 정부는 이와 관련해 지난 6월 1차 회의에 이어 오는 8월 초 2차 회의에서 반출 허가 여부를 최종 결정할 계획이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포켓몬 고’가 만든 신풍속 “손님들이 방안에서 나오질 않아요” 설악산과 맑은 바다로 유명한 강원도 속초는 국내에서 ‘포켓몬 고’ 플레이가 유일하게 가능하다는 입소문이 초반부터 확산되며 포켓몬에 등장하는 ‘OO마을’과 같이 ‘속초마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도시 내 특정 지역에서 낮은 확률로 발견되는 ‘전설의 포켓몬’이 잡히면 그 일대는 곧장 핫 플레이스로 변한다. 초등학생들이 횟집을 찾아 돈을 모아 물회 한 그릇만을 시켜놓고 삼삼오오 둘러 앉아 포켓몬 고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포켓몬 고 가능 지역이지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양양에서 펜션을 운영하고 있는 김 아무개 씨(29)는 “이전에는 손님들이 펜션에 도착해 짐만 풀고 지역 명소나 바닷가로 나가기 바빴다. 그런데 요즘은 포켓몬 고 플레이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손님들이 방안에서 나오질 않는다”며 웃었다. ‘속초마을’을 위아래로 둘러싸고 있는 고성과 양양에서도 포켓몬 고의 플레이가 가능하다. 해외에서도 포켓몬 고와 관련한 에피소드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 미시간주에서는 지명수배 된 범죄자가 게임에 빠져 스스로 경찰서로 걸어 들어가 붙잡히는가 하면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에서는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유저가 신사 내 포켓몬 체육관을 점령하고 ‘ABE IS ASSHOLE(아베는 멍청이)’라는 닉네임을 남겨 놓기도 했다. 또한 잉글랜드 프로축구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새롭게 부임한 조세 무리뉴 감독은 포켓몬 고에 열중하는 선수들에게 “경기 48시간 전부터는 게임 금지”라는 내부 규율을 신설해 화제가 됐다.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