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사업 실체와 실현가능성을 두고 광주시와 시민단체간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광주시청 전경
그동안 ‘광주형 일자리 모델’은 “실체가 없다”, “실현 가능성이 적다”라는 일부의 지적을 받아왔다. 광주시 공직자들조차 ‘광주형 일자리’가 “이거다”하고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동차 100만 대 생산기지 조성사업을 통해 현대·기아차의 생산라인을 유치, 연봉 4000만 원대 일자리를 만든다”는 것 정도가 그나마 공통된 인식이다. ‘슈투트가르트 모델’, ‘아우토(AUTO) 5000프로젝트’, ‘연봉 4000만 원 일자리’ 등 명칭도 그때그때 바뀌다보니 개념에 혼란도 생기고 있다.
하지만 ‘광주형 일자리’ 실험을 위한 하드웨어 격인 ‘자동차 100만 대 생산기지 및 클러스터 조성사업’이 지난 7월 8일, 우여곡절 끝에 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면서 ‘광주형 일자리’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특히 새누리 정진석 원내대표가 최근 박 대통령 초청 새누리당 의원 청와대 오찬 자리에서 이 사업의 긍정성을 공식 언급하고 공영방송이 외국사례를 심층 보도함으로써 전국적인 관심도가 부쩍 높아지고 있는 모양새다.
윤장현 광주시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제조업 등 한국 주력산업의 몰락과 세계사적 경기 침체 위기에서 더 이상 기업의 투자나 정부 정책에만 의지해서는 일자리 창출이 쉽지 않다”는 점을 ‘광주형 일자리’ 추진의 배경으로 제시했다. ‘동일 임금 동일 노동’, 기존의 노사 관계 등 현 사업구조와 틀 속에서는 새 일자리를 만들어내기가 어려우니 “새로운 접근과 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광주시는 독일 폴크스바겐의 ‘아우토(AUTO) 5000’과 GM의 ‘새턴(Saturn)’의 성공 사례를 비춰봤을 때 ‘광주형 일자리’도 향후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입장이다. ‘광주형 일자리’는 노사민정 사회적 대타협을 토대로 임금, 노동조건, 생산방식 등을 결정하고 경영에 있어 공동책임을 지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노사관계와 생산방식이 혁신을 통해 적정임금의 일자리를 만들어내자”는 것이다. 최대 40% 가까이 차이 나는 원청과 하청업체, 사내하청과의 임금 격차를 해소하는 것도 목표 중 하나다.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이냐’다. 광주시는 ‘제3지대 3법인’을 ‘광주형 일자리’ 모델 구현의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기존 노사관계나 임금체계와는 독립된 영역에 새로운 법인을 만들고 여기에서 “노사와 지자체, 시민 등이 함께 참여하는 사회적 대타협의 공동경영 시스템을 운영해보자”는 것이다. 시는 특히 노사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상징적으로 지분에 참여하겠다는 뜻도 밝히고 있다.
독일 폴크스바겐사의 경우 2002년 대량 실업사태를 겪으면서 ‘아우토(AUTO) 5000’이란 별도의 법인과 공장을 세워 5000명의 실업자를 채용했다. 이들의 임금은 본사 직원들보다 20%가량 적었는데, 독일 주 정부가 일정 지분을 갖고 이 일을 지속하는 데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한 공장 안에 두 개의 법인과 두 개의 임금체계가 공존한 셈이다. 아우토(AUTO) 5000은 노동자와 사용자 동수로 구성된 사업장평의회 등을 통해 직장 내 주요 사안을 결정하는 노사 협치 모델을 정착시켰다. 여기서 ‘힌트’를 얻어 광주시가 추진하는 것이 ‘광주형 일자리’인 셈이다.
‘광주형 일자리’사업은 윤장현 광주시장의 공약1호다.사진=윤장현 광주시장/광주시 제공
현재 추진되는 ‘광주형 일자리’는 광주시의 핵심 현안인 ‘자동차 100만 대 생산기지 조성사업’과 떼놓고 얘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의 연간 최대 생산규모인 62만 대에다가 30만~40만 대 규모의 자동차 생산 시설을 추가로 유치, 이를 통해 윤 시장이 말한 ‘제3지대 3법인’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게 광주시의 구상인 셈이다. 이때 유치할 자동차 회사로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게 현대·기아차이다. 기아차 광주공장 노조의 경우 우호적이지만, 현대·기아차는 시큰둥한 상황이다. 지난 20여년간 현대·기아차의 국내 투자가 없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사실상 현대·기아차 유치는 어렵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에 광주시는 현대·기아차 외의 대안을 찾아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최근 2500억 원 규모의 투자협약을 체결한 중국 조이롱 자동차도 그러한 사례다. 윤 시장은 “현대·기아차의 투자 조건을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도 중요하다”면서도 “인도 마힌드라 그룹, 테슬라 등 자동차 완성업체들에 서신을 보내 광주가 가고자 하는 길을 알리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지난 7월말 한국법인을 설립할 예정인 중국 조이롱 자동차의 경우도 “투자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제3지대 3법인 설립을 통한 광주형 일자리 모델 구축 등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지역 시민사회단체는 회의적이다. ‘광주형 일자리’가 실제로 실현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자동차 100만 대 생산기지 조성사업의 정부 예타 통과로 빛그린 산단에 자동차 전용산단이 조성된다하더라도 여기에 기업들이 투자를 결정하느냐는 별개의 문제라는 입장이다. 광주경실련 김동헌 사무처장은 “‘제3지대 3법인’과 ‘광주형 일자리’에 동의하는 기업의 투자유치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데 광주형 일자리가 반값 일자리 사업으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게 어디 쉽겠느냐”고 반문했다.
광주시가 지난 2년간 ‘광주형 일자리’ 모델 구축에 많은 공력을 쏟아 부었지만 이렇다 할 실적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점도 반격의 빌미가 되고 있다. 광주시민단체협의회는 지난 6월말 민선6기 광주시 2년 시정평가 기자회견에서 “2년간 실질적 성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광주에는 플랜B가 필요하다”며 사업의 전면 수정이나 재검토를 주장했다. 최근 ‘광주형 일자리’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게 될 광주시의 ‘더 나은 일자리 위원회’가 출범했으나 노(勞)·사(社)·민(民)·정(政) 연대의 노동계 한 축인 민주노총이 불참한 것도 이같은 기류가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럼에도 광주시의 의지는 확고하다. 윤 시장의 얘기다. “실체가 없다는 말이 있는데 ‘이상향’의 실체는 분명히 있다. 이 일은 시장의 정치력 하나로 되는 것이 아니고, 시장은 시민사회, 노조, 사용자 등의 협업 틀을 제안하고 구체적으로 이 일을 할 수 있는 정부 예산을 확보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만드는 것이다. 임기 내 어느 그림까지 그려질 것이냐를 이야기할 수 없지만, 그 일의 절박함이나 필요성이 정말 크기 때문에 흔들림 없이 전진하겠다.”
윤 시장은 이어 ”IT, 광산업, 금형 등 다른 산업분야도 ‘광주형 일자리’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면서 ‘광주형 일자리’가 자동차산업을 넘어 지역 산업 전반의 새로운 일자리 모델로 자리매김할 것임을 시사했다.
광주시 관계자는 ”광주형 일자리는 한국사회의 일자리 문제를 이제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정부가 주도하고, 지역민들의 응집력을 결집시켜 사회통합적이고 연대지향적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라며 ”해외 사례에서 봤듯이 광주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 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광주시와 시민단체가 ‘광주형 일자리’ 성공여부를 두고 시각을 달리함에 따라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기 전까지 논란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정성환 기자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