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 사상 초유의 승부 조작 스캔들. 박현준은 이튿날 검찰에 출두했고, 하루 만에 승부 조작 사실을 인정했다. 본인은 물론 LG 구단 관계자들까지 “절대 아니다”라고 펄쩍펄쩍 뛰었지만, 진실이 드러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박현준의 은행 계좌에는 승부 조작 사례금으로 받은 500만 원이 버젓이 찍혀 있었다.
같은 팀 투수 김성현도 박현준보다 먼저 승부 조작을 인정했다. 김성현은 진주에서 잔류군 스프링캠프를 치르던 중이었다. 훈련 도중 수사관들에게 체포됐다. 대구지방검찰청에서 8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승부 조작 사실을 낱낱이 실토했다.
박현준과 김성현은 사상 최초로 ‘영구 실격’ 처분을 받았다. 영구 실격은 무기한 실격과 달라서 향후 징계의 감경이나 해제가 불가능하다. KBO리그는 물론 한국과 협정을 맺은 일본·미국·대만 프로야구에서도 선수로 뛸 수 없다. 전도유망했던 투수 둘은 그렇게 자신의 미래를 잃었다.
유창식이 한화 시절 두 경기에서 볼넷 두 개를 내주고 받은 돈은 고작 300만 원이었다.
# 승부 조작, 더 커지고 더 대담해졌다
그 후로 4년이 흘렀다. 2016년 KBO리그는 다시 승부 조작 사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강도 높은 징계로 승부 조작의 뿌리를 뽑은 줄 알았더니, 오히려 음지에서 더 깊고 넓게 자라고 있었다. 이번에도 앞날이 창창한 투수들이 돈을 받고 고의로 볼넷을 내주거나 점수를 줬다고 고백했다. 심지어 한 명은 아예 승부 조작을 먼저 제안하고 ‘설계’했다는 혐의까지 받고 있어 더 충격적이다. 이뿐만 아니다. 이미 혐의가 드러난 인물들 외에 다른 유명 선수들에 대한 소문이나 의혹도 끊이지 않는다. 확인되지 않은 루머에 휩싸여 억울하게 피해를 입는 선수가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결국 2012년의 철퇴가 선수들에게는 아무런 경각심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는 얘기가 된다.
올해 가장 먼저 세상에 알려진 인물은 NC 투수 이태양이다. 이태양은 지난해 선발 등판한 4경기에서 승부 조작에 가담했다. 검찰 조사에서 모두 시인했다. 더 놀라운 것은 이태양에게 브로커를 소개해준 인물이 팀 동료였던 넥센 문우람(상무 군복무 중)으로 추정된다는 점이다. 둘은 2011년 넥센 입단 동기다. 고교 3학년이던 2010년에는 세계 청소년 야구선수권대회 국가대표로 함께 뛴 친구 사이다. 검찰은 문우람이 이태양에게 브로커를 소개해줬을 뿐만 아니라 승부조작 역시 브로커에게 먼저 제의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문우람은 일단 이태양과 달리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정황은 분명히 있다. 2015년 5월 29일 창원 KIA전. 이태양이 처음으로 승부 조작을 시도한 날이다. NC는 당시 8연승으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날 이겼다면, 역대 월간 최다승 신기록을 작성할 수 있었다. 그 경기 선발 투수가 바로 이태양이었다. 그는 1회 1실점 이상을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마운드에 올랐다. 그리고 2점을 줬다. ‘투수’로서는 실패한 이닝이었지만, ‘승부 조작범’으로서는 완벽한 임무 완수였다.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 운영자는 이태양의 조작 덕분에 1억 원을 벌었다. 그 가운데 2000만 원이 이태양에게 돌아왔고, 브로커도 2000만 원을 챙겼다. 이때 문우람은 이 경기의 조작을 ‘알선’한 대가로 1000만 원 상당의 고급 시계와 명품 의류를 받았다. “선물로 받은 것일 뿐, 대가성은 없었다”는 게 문우람의 주장이다.
어쨌든 조작은 계속됐다. 이태양은 7월 31일 마산 넥센전에서 새로운 형태의 청탁을 받았다. ‘4이닝 오버’. 4회까지 양 팀의 득점 합계가 6점 이상이어야 돈을 따는 게임이다. 투수 혼자 힘으로는 하기 어렵지만, 이태양은 도전했다. 결과는 실패. 양 팀 타선이 그날따라 점수를 못 냈다. 이날 NC 선수단은 4연패 탈출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선발 투수는 홀로 다른 생각을 했다.
임무는 다시 단순해졌다. 8월 6일 창원 롯데전에서 다시 ‘1이닝 볼넷’에 성공했다. 이때부터 조짐이 이상했다. 약속했던 돈을 받지 못했다. 9월 15일 창원 kt전에선 ‘1이닝 볼넷’을 또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상대 타자들은 이태양이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않았는데도 그 공을 쳐서 땅볼로 아웃됐다.
첫 이닝을 삼자범퇴로 깔끔하게 막고 마운드를 내려오는 선발 투수의 얼굴에는 이상하게도 그림자가 드리웠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던, 그리고 이유를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그 장면들은 결국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야구의 뿌리를 뒤흔드는 대형 사건으로 번졌다.
# 한 선수의 ‘자수’와 새로운 충격
두 선수의 얘기로 세상이 떠들썩해지는 동안, 또 다른 선수가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KIA 왼손 투수 유창식이다. KBO는 이태양과 문우람의 사례가 밝혀지자 ‘자진 신고 기간’을 선포했다. 승부 조작은 무조건 영구 실격으로 이어지는 심각한 행위지만, 8월 12일까지 스스로 털어 놓는 선수에게는 최소한 몇 년 뒤 그라운드에 복귀할 수 있는 길은 열어 주겠다고 설득했다.
고민하던 유창식은 결국 ‘광명’을 택했다. 구단에 자수했다. KIA가 아니라 한화에서 뛰던 2014년, 승부 조작에 가담했다고 털어 놓았다. 2014년이라면 박현준과 김성현 사건이 벌어진 지 불과 2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그래서 또 다른 의미로 충격을 안겼다.
유창식은 자백 다음 날 경기북부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출두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두 경기 승부 조작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2014년 4월 1일 삼성과의 대전 홈 개막전에서 1회 볼넷을 내줬다고 시인했다. 그날 유창식은 1회 두 타자를 아웃시킨 뒤 삼성 3번 타자 박석민을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내보냈다. 유창식이 던진 공은 눈에 띄게 높거나 아예 땅으로 꽂혔다. 황당해하는 포수의 얼굴이 화면에 잡힐 정도였다. 그리고 한 경기가 더 있었다. 같은 해 4월 19일 대전 LG전에서도 유창식은 다시 1회 2사 후 상대 3번 타자 조쉬 벨에게 볼넷을 허용했다. 역시 ‘고의’로 내준 볼넷이었다.
유창식이 두 경기에서 볼넷 두 개를 내주고 받은 돈은 고작 300만 원. 첫 경기에서 100만 원, 두 번째 경기에서 200만 원이다. 계약금 7억 원을 받고 한화에 입단했던 ‘역대급’ 유망주가 돈 300만 원에 야구 선수의 본분을 포기했다. 물론 그 이면에는 돈보다 더 큰 이유가 도사리고 있다. 유창식을 승부조작으로 이끈 브로커의 정체는 전 동료 투수의 친형으로 알려졌다. 그 브로커 역시 학창 시절까지 야구 선수 생활을 했다. 동생과 친한 투수들과 자주 어울리며 친분을 쌓았다. 그때는 ‘우정’인 줄 알았는데, 결국 ‘잘못된 만남’이 됐다.
# 불법 스포츠 도박이 뻗어온 ‘검은 손’
모든 게 불법 스포츠 도박에서 시작됐다. 스마트폰은 현대인들에게 많은 편의를 제공하지만, 나쁜 쪽으로 사용하기에도 무척 편리한 도구다. 손가락을 몇 번만 움직이면 손쉽게 불법 스포츠 도박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 물론 국내에는 합법적인 스포츠 베팅 게임인 스포츠토토가 존재한다. 그러나 토토는 베팅 금액이 하루 10만 원으로 제한돼 있다. 사행성으로 변질되는 위험을 막기 위해서다. 게임의 종류도 많지 않다. 고득점 팀을 맞히거나, 경기별 점수대를 예측하거나, 홈런 유무를 따지는 방식이다. 말 그대로 건전한 ‘게임’에 가깝다. 더 많은 돈을 걸어서 더 많은 돈을 따고 싶은 ‘도박 중독자’들의 성에 찰 리가 없다.
결국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가 열리고, 사람과 돈이 모이고, 브로커가 탄생했다. 검색만 하면 수백 개의 불법 사이트가 눈앞에 펼쳐진다. 베팅 금액을 마음대로 늘릴 수 있으니, ‘한탕’을 노려볼 수 있다. 3시간이 넘는 야구 경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다. 1회에 그날의 성패가 갈리는 게임이 부지기수다.
당연히 야구 선수의 ‘조작’이 개입되면 돈을 따기가 쉬워진다. 브로커들은 이런 유혹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행동대장’이 돼줄 선수를 물색한다. 특히 투수가 주요 타깃이다. ‘첫 이닝 볼넷’을 가장 자연스럽게 성공시켜줄 수 있는 인물은 단연 선발 투수다. 이태양도, 유창식도, 박현준도, 김성현도 모두 자신이 선발 등판한 경기에서 조작에 참여했다.
# ‘아는 형님’의 탈을 쓴 폭력 브로커
처음부터 수상한 사람이 접근해 “돈을 줄 테니 승부 조작을 하자”고 한다면? 한 번에 넙죽 받아들일 선수는 거의 없을 것이다. 1군 경기에 선발 등판하는 투수들은 대부분 그렇게 큰 위험을 굳이 감수해야 할 만큼 돈이 궁하지 않다. 그래서 브로커들은 일단 ‘팬’의 탈을 먼저 쓴다. 돈 많고, 성격 좋고, 발 넓고, 아낌없이 퍼주는 ‘형님’으로 분장해 가까이 다가온다. 밥을 사고, 술을 사고, 선물을 안기면서 환심을 산다.
그러다 선수에게 슬쩍 검은손을 내민다. 법으로는 허용되지 않는 제안을 한다. ‘정’으로 덥석 받아들여 주면 좋고, 그게 안 된다면 미리 파악해놓은 ‘약점’을 들이민다. 그러다 ‘딱 한번만’의 마수에 걸리면, 또 다른 약점이 생긴다. 그 다음엔 헤어나올 수 없다.
이태양에게 접근한 브로커는 스스로를 ‘스포츠 에이전시를 준비하고 있는 야구팬’으로 소개했다. 끊임없이 이유 모를 호의를 베풀어 마음을 얻었다. 유흥이 즐거웠던 젊은 선수들은 통 큰 형님과 어울리는 게 즐거웠다. 그리고 끝내 형님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이태양이 ‘미션’에 실패했던 지난해 9월 15일. 바로 그 ‘형님’과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자가 야구장으로 찾아왔다. “볼넷을 주려고 했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며 멋쩍게 웃는 이태양에게 주먹이 날아왔다. 사이트 운영자는 “내가 돈을 얼마나 잃었는데 네가 지금 실실 웃고 있느냐”며 이태양을 때렸다.
세상에 대가를 바라지 않는 ‘공짜’란 없다. 학창 시절 내내 야구만 하다 막 화려한 세계에 발을 들여 놓은 일부 선수들은 냉혹한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형님’들의 웃는 얼굴 뒤에 얼마나 무서운 표정이 숨겨져 있는지, 직접 당하기 전엔 깨닫지 못했다. 해도 되는 일과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는 방법 역시 알지 못했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가 사과 성명을 통해 “검은 유혹의 온상인 스폰서 문화의 현실을 선수들에게 각인시키고자 노력하겠다”고 강조한 이유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아내 죽이겠다” 협박에 월드시리즈 고의 패배 승부 조작은 야구의 뿌리를 뒤흔드는 초대형 악재다. 한 원로 야구인은 “박현준과 김성현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우리 프로야구에도 승부 조작 같은 엄청난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실제로 우리보다 역사가 훨씬 오래된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는 이미 승부 조작으로 심각한 홍역을 앓은 적이 있다.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블랙삭스 스캔들’과 니시테쓰 라이온즈의 ‘검은 안개 사건’이 대표적이다. 화이트삭스는 1919년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에 올랐다. 전설적 타격왕 조 잭슨을 위시해 에디 콜린스, 치크 갠딜, 에디 시카티, 클라우드 윌리엄스 등이 투타에 포진한 스타 군단이었다. 그러나 월드시리즈가 시작되기 전 ‘화이트삭스가 내셔널리그 챔피언 신시내티에 일부러 패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결과는 소문대로였다. 화이트삭스는 1차전에서 19승 투수 시카티를 내고도 1-9로 졌다. 2차전에선 23승 투수 윌리엄스가 4사구를 남발해 2-4로 패했다. 경기 후 포수 레이 쇼크가 윌리엄스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휘두를 정도로 석연치 않은 볼넷들이었다. 4차전에서도 시카티가 5회 결정적 실책 2개로 2점을 내줘 0-2로 패했다. 5차전에선 잭슨의 실책 때문에 0-5로 졌다. 결과도 결과지만, 내용이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의혹은 사실이었다. 월드시리즈 3주 전 투수 시카티와 윌리엄스, 외야수 잭슨을 비롯한 8명의 선수들이 도박사들에게 8만 달러를 받고 고의로 시리즈에서 패하기로 계약했던 정황이 드러났다. 이들은 5차전이 끝난 뒤 도박사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리란 점을 간파했다. 6차전과 7차전을 이겼다. 그러나 도박사들은 8차전 선발 윌리엄스에게 “아내를 살해하겠다”는 협박을 했다. 결국 화이트삭스는 우승에 실패했다. 이듬해 메이저리그 커미셔너는 선수 8명을 모두 영구 추방시켰다. 법정은 ‘무죄’ 판결을 내렸지만, 야구가 이들을 용서하지 않았다. 일본은 니시테쓰의 일부 선수들이 1969년부터 1971년까지 잇따라 돈을 받고 경기를 져줬던 사실이 발각돼 큰 풍파를 겪었다. <스포츠 호치>와 <요미우리신문> 사회부가 공조 취재한 결과, 당시 니시테쓰 에이스였던 이케나가 마사키를 비롯해 투수 3명과 포수 1명, 내야수 2명이 조직폭력단 관계자에게 승부 조작 제의를 받고 실행에 옮겼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커미셔너가 이 선수들을 대상으로 사정 청취를 했고, 투수 3명이 영구 추방됐다. 니시테쓰는 이후 3년 연속 최하위에 머물렀고, 1972년 결국 팀을 매각했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