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성과연봉제 도입에 대해 노조가 총파업을 예고하면서 임기 만료를 앞둔 시중은행장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올해 주요 은행들은 대체로 좋은 경영성적표를 받아들었기에 경영성과만 놓고 본다면 교체되는 은행장은 많지 않을 전망이었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성과연봉제를 밀어붙이며 노동조합과 갈등을 겪으면서 상황이 변했다. 노조는 총파업을 예고했고, 당국은 성과연봉제를 은행장 평가의 잣대로 활용하려는 눈치다.
요즘 주요 시중은행 은행장들의 머릿속은 복잡하다. 가뜩이나 올 연말과 내년 초 임기만료를 앞두고 예민해져 있는 상황에 노조가 총파업에 나서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어서다.
올해 상반기 주요 은행들은 제법 좋은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신한·KB국민·KEB하나·우리 4대 은행의 상반기 순이익은 3조 3192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조 7802억 원보다 19.4% 늘었다.
실적이 좋은데도 은행장들의 표정이 밝지 못한 이유는 금융당국이 강한 의지를 보이며 추진 중인 성과연봉제가 은행권은 물론 금융권 전체에 전운을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은행연합회는 성과연봉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는데, 금융산업노동조합은 즉각 총파업을 선언하며 맞불을 놨다.
금융노조는 오는 9월 23일을 디데이로 잡고 있다. 총파업 예정일까지 두 달여가 남았다는 점에 비춰볼 때 협상의 여지를 열어놓은 포석이라고 볼 수 있지만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은행장들이 전전긍긍하는 이유는 성과연봉제를 둘러싼 이번 갈등에서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총파업을 방치할 수도 없고, 노조의 요구를 들어줄 수도 없는 입장이다.
총파업이 실행될 경우 은행 고객들은 어떤 형태로든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고, 연말 줄줄이 임기만료를 맞는 은행장들은 고객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을 게 불을 보듯 뻔하다. 금융당국 역시 금융소비자보호라는 측면에서 총파업을 막지 못한 은행장에게 힘을 실어주기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성과연봉제 도입을 머뭇거리거나 이미 도입된 제도를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특히 금융당국이 성과연봉제를 은행장 평가의 잣대로 삼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만큼 노조에 밀리는 모습을 보이면 자칫 ‘괘씸죄’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
민영화에 올인하고 있는 이광구 우리은행장은 민영화 작업이 틀어질 경우 연임을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연합뉴스
하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가 9월에 방점을 찍은 이유가 따로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은행은 오는 9월 행장추천위원회(행추위)를 구성해 차기 행장 선출 준비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 시점에 민영화 작업이 가시권에 들어온다면 이 행장은 연임을 통해 민영화를 마무리짓는다는 명분을 쥘 수 있다.
금융당국 한 고위 관계자는 “행추위가 가동되기 전에 우리은행 인수 희망자가 나타나고 이 행장이 협상테이블에 앉게 된다면 연임 쪽으로 기울지 않겠느냐”면서 “매각협상 도중에 최고의사결정권자를 바꾸는 것은 상대방도 납득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대로 행추위가 꾸려질 때까지 눈에 보이는 성과물이 없을 경우 이 행장의 연임은 고사하고 우리은행 민영화 자체가 또 한 번 물 건너 갈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연임이 불가능해지면 이 행장이 추진력을 잃게 되고 민영화 작업도 표류할 것이라는 해석이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우리은행 민영화는 임종룡 금융위원장과 이광구 행장이 진두지휘해온 작업”이라면서 “당국이 레임덕 조짐을 보이는 상황에서 이 행장까지 힘이 빠지면 이번 정부에서 민영화를 이끌 인물은 없다고 봐야 하지 않겠나”라고 내다봤다.
이를 반영하듯 우리은행 내부에서는 이미 차기 행장을 노리는 잠룡들의 물밑 움직임이 시작됐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일부 인사들이 ‘줄대기’에 나섰다는 얘기가 들리는가 하면 내부 세력 결집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조용병 신한은행장은 내년 3월 임기가 만료된다. 조 행장은 일단 경영성적표로는 합격점을 받았다. 하지만 다른 변수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평가다. 한동우 신한금융그룹 회장이 그와 함께 임기만료를 맞기 때문이다.
사실 조 행장은 은행장 연임 여부보다 신한금융그룹 회장에 오를지 여부로 더 주목받는 인물이다. 신한금융은 내부 규정에 따라 만 70세가 넘으면 회장직을 맡을 수 없기 때문에 올해 만 68세인 한 회장은 사실상 연임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의 뒤를 이을 인물이 누가 될지에 금융권 전체의 시선이 쏠려 있는데, 조 행장은 유력한 후보 중 한 명이다.
신한금융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신한은행의 수장이지만 그가 우위에 있다고 평가하기는 이르다. 신용카드 업계 부동의 1위인 신한카드를 이끄는 위성호 사장이 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위 사장은 오는 8월 말 임기가 끝나는데, 그의 연임 여부에 따라 조 행장의 행보가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현재까지는 한 회장이 위 사장을 1년만 연임시키는 방식으로 조 행장과 함께 회장 후보군에 올려놓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두 거물 간 경쟁에서 누가 이기건 한쪽은 신한금융을 떠날 것으로 금융권은 보고 있다.
앞의 은행권 관계자는 “태양이 두 개일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면서 “내분 사태 등 과거의 전례도 있는 만큼 두 사람 중 회장에 오르지 못하는 쪽은 신한금융에 계속 남기 힘들 것”이라고 전했다.
함영주 KEB하나은행장도 내년 3월 임기가 끝난다. 지난해 9월 취임한 함 행장은 불과 1년 6개월 만에 임기만료를 맞는 셈인데, 이는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김 회장이 함 행장의 임기를 본인의 임기인 오는 2018년 3월까지로 하지 않고 굳이 어정쩡한 기간인 1년 6개월로 정한 이유를 ‘재신임’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이 때문에 함 행장이 실적부담 등이 상당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하지만 은행권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들의 얘기는 조금 다르다. 하나금융그룹 내에서 세력이 예상보다 많지 않은 김 회장에게 같은 서울은행 출신인 함 행장은 오른팔이나 다름없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은행권 다른 관계자는 “함 행장은 김 회장이 김승유 전 회장 측과 힘겨루기에 밀려 한 차례 고배를 마시면서까지 은행장에 올린 인물”이라면서 “버릴 수 있는 카드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은행권 유일한 여성 은행장인 권선주 IBK기업은행장은 연임 포기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겸 국민은행장은 아직 임기가 1년 반 이상 남아 있는 만큼 다른 은행장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마음이 편한 축에 속한다. 오히려 그와 관련해서는 겸직하고 있는 국민은행장을 언제 내려놓을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