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북아현동 이화여대 기숙사 신축공사 현장. 공사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지난 7월 18일 오후 1시께, 이화여대 신축 기숙사 건설현장 인근 야산에서 현장 소장을 맡고 있던 김 아무개 씨(53)가 숨진 채 발견됐다. 공사 초반부터 현장 소장으로 근무해 온 그는 이날 아침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한 뒤 팀장인 양 아무개 씨에게 앞으로의 공사 일정에 대해 설명했다. ‘공사를 잘 부탁한다’는 마지막을 암시하는 듯한 말도 없이 평이했다고 후에 양 씨는 말했다.
김 씨는 이날 점심께 자취를 감췄지만 현장 직원들은 모두 김 씨가 구청이나 관계 업체 사람들을 만나고 있을 것으로 짐작했다. 완공 예정일을 한 달가량 앞둔 상황이라 밤늦게까지 공사를 진행한 탓으로 소음에 대한 민원이 잦아들지 않았다. 이 때문에 김 씨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자리를 비울 때가 많았다.
그런 가운데 현장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김 씨의 부인이었다. 그는 “남편이 죽음을 암시하는 듯한 문자를 보냈다”며 김 씨의 행방을 물었다. 그때서야 현장에 있던 직원들과 경찰이 함께 김 씨를 찾아 나섰다. 수색을 시작한 지 두 시간 만에 김 씨는 현장 인근 야산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부인에게 남긴 문자메시지 외에 유서는 없었다. 경찰은 단순 자살로 사건을 규정하고 시신을 유족에게 인도했다.
현장 관계자들은 김 씨를 철두철미했던 사람으로 기억했다. 한 관계자는 “일정에 따른 상세한 스케줄을 미리 계획해놓고 그에 맞춰 움직였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완공일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이 짜놓은 계획대로 스케줄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걱정하기도 했다”라고 조심스럽게 밝혔다.
올 8월 중순 준공을 앞두고 있는 이화여대 신축 기숙사는 서울시가 2013년 8월 제13차 도시계획위원회를 열고 계획안을 통과시키면서 이듬해 7월부터 공사가 진행됐다. 신축 기숙사는 부속동을 포함해 지하 2층~지상 5층 등 건물 총 6개 동으로 이뤄졌으며 연면적 6만 1078.94㎡의 규모로 수용인원은 2344명이다. 여기에 이화여대가 투입한 사업비가 약 900억 원 상당으로 ‘초대형 기숙사’라는 말을 실감하게 했다.
그러나 첫 삽을 뜨기가 무섭게 각종 논란과 소송, 감사 등 문제가 불거지면서 공사는 수차례에 걸쳐 지연되거나 중단돼 왔다.
첫 번째 논란은 2014년 9월 생존권을 들고 나온 서대문구 일대 원룸 및 하숙집 연대와의 마찰이었다. 신축 기숙사가 들어온다면 원룸과 하숙집에 공실이 급증해 생계에 지장이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이들은 이와 더불어 신축 공사로 발생하는 소음 및 먼지로 인한 환경피해와 조망권 침해 등을 내세워 공사 중단을 요구하기도 했다.
두 번째로 불거진 문제가 자연파괴 논란이다. 2014년 10월부터 불거진 이 문제는 이화여대 기숙사 건설 부지가 산지임에도 불구하고 이화여대와 서대문구청이 산지전용허가를 받지 않고 공사를 진행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시작됐다. 공사가 시작된 뒤인 2014년 9~12월 약 3개월 동안 신축 기숙사 부지인 북아현숲 3만 149㎡ 내에서 수목 약 1200그루가 불법적으로 베어내졌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2014년 9월 12일에 촬영한 이화여대 기숙사 신축공사 현장.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산림청은 해당 부지를 산지로 판단해 이화여대와 서대문구청 측에 ‘공사 중단 후 허가 재검토’ 등 시정조치를 권고했다. 그러나 서대문구청은 “건설 부지를 둘러싼 벽은 옹벽(재해방지용 구조물)이 아니라 학교의 담장이기 때문에 산지가 아니다”라며 반발했다. 이로 인한 관할 구청, 산림청 등 관계기관과 주민들 사이의 갈등 중재로 공사는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논란이 됐던 것은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화여대 사이의 커넥션 의혹이었다. 일부 보수시민단체는 기숙사가 건설되고 있는 북아현숲이 비오톱(생태환경) 1등급 지역으로 건설허가가 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시가 이화여대 기숙사를 짓기 위해 2등급으로 하향 조정했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기숙사 부지 약 1만 9000㎡의 등급이 완화됐다는 것. 이처럼 대학 내 부지 비오톱 등급 조정에 서울시가 관여했다는 점을 내세워 보수 정치단체인 국민행동본부는 “박원순 시장의 역점 공약사업인 ‘희망서울 대학생 주거 환경 개선 사업’ 추진을 위한 맞춰주기식 조치”라며 서울시를 맹공격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서울의 각 대학 부지 내의 조경부지가 비오톱 1등급지로 지정돼 이용에 지장이 있다는 민원을 받고 전문 생태조사기관에 재조사를 의뢰한 것”이라며 “새로 마련된 평가 기준에 따라 비오톱 등급을 현황과 맞게 조정한 것이고, 비단 이화여대뿐 아니라 일반지역에 대해서도 생태현황에 맞게 등급조정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앞선 논란에 대해 북아현동 주민들과 시민단체는 감사원 감사 청구, 관련 기관 소송전에 나섰다. 그러나 2014년 11월 감사원은 서대문구가 산지전용허가 기준 등에 대한 검토 없이 건축을 허가했다는 점은 인정했으나, 서울시의 이화여대 기숙사에 대한 수백억 원 특혜 가능성과 비오톱 하향 평가에 대해서는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종결 처리했다.
또 북아현동 주민들이 제기한 서대문구의 건축허가에 대한 처분 무효확인 소송에서 법원은 “산지관리법상 이화여대 기숙사 부지의 산지 전용허가권은 산림청이 아닌 서대문구가 갖고 있으므로 건축허가에 문제가 없다”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문제가 제기되면서 건설사는 주민들의 편의와 보상을 위해 소음벽 보완, 가림막 설치 등 부가적인 대처에 나서야 했다. 이 때문에 공사 진행에 여러 번 차질이 생겼음은 당연하다.
건설을 맡고 있는 대림산업에 따르면 2016년 7월 현재 이화여대 신축 기숙사 건설 공정률은 약 90%다. 완공되더라도 기숙사 주변의 조경과 내부의 가구 설치 등 발주처인 이화여대 측이 해결해야 할 부분도 있다. 이 때문에 오는 9월 새학기에 맞춰 기숙사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늦어도 8월 중순까지는 완공돼야 하는 상황이다. 차질이 생겨 완공 일정이 지연될 경우 대림산업에 ‘페널티’가 발생한다.
통상적으로 건설 공사 도급 계약에서는 ‘천재지변 등 공사 외적 사안이 아닌 사안과 관련하여 공사가 지체될 경우 건설사 측이 1일당 0.1~0.3%가량의 지체금을 지불’하도록 돼 있다고 대림산업은 설명했다. 이 때문에 최대한 예정된 완공기일에 맞춰야 했다는 것.
더욱이 애초 2016년 2월 완공 목적이었던 이곳 기숙사는 현장의 지질조건 문제로 인해 완공 예정일이 5~6개월가량 연기됐다. 이 때문에 2016년 3월 입학생을 받지 못하게 되면서 9월 2학기 학생들은 무슨 일이 있어서도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 학교 측의 입장이었다는 것. 현장소장을 맡고 있던 김 씨가 이에 따른 압박을 받았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발주처인 이화여대 측은 “실제 예정대로라면 완공이 예정일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는 것으로 보이고, 공사 지연과 관련 대림산업의 고의나 책임을 물을 만한 사안이 없다면 우리 쪽에서 지체금 부담을 요구하지 않는다”며 자신들과 김 씨의 죽음 간 연관이 없음을 해명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