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의 부친이 하와이 독립운동 유적지 ‘한국독립문화원’을 외국기업에 매각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인다. 사진제공=고송문화재단
하와이 주당국에 접수된 부동산 매매 서류에 따르면, 한국독립문화원의 실 소유주였던 홍 의원의 부친 홍우준 전 의원(11, 12대)은 지난 6일 독립문화원을 포함한 건물 2채와 토지 3만 1193㎡에 따르는 부속물 등을 145만 달러(약 16억 3000만 원)에 외국계 유한책임회사 ‘루크 드래곤(Rooke Dragon LLC)’에 매각을 완료했다.
매각 사실을 접한 하와이 한인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지도현 하와이 한인회 사무총장은 “독립운동의 발상지였던 독립문화원이 매각됐다는 것에 대해 하와이 한인 동포들은 망연자실하며 한탄하고 있다”며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면서도 한인회는 독립운동 유적지를 홍 의원 측이 소리 소문 없이 팔아버린 것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인회 측은 지난 7월 25일 하와이 현지서 기자회견을 갖고 “하와이 이민 선조들의 독립운동 유적지가 한인사회 몰래 팔려나간 사실에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당초 홍 의원은 매각 사실이 알려지자 “부친(홍우준 전 의원)이 직접 관리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관여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곧 보도자료를 통해 “그동안 사재를 털어 한국독립문화원을 관리해왔다”며 “더 이상 관리 및 유지가 힘든 상황이었다”고 반박했다.
이처럼 독립운동 유적지를 둘러싼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논란은 진실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 한국독립문화원 매입한 ‘루크 드래곤’ 실체
지난 7월 23일 국내 한 언론매체는 한국독립문화원의 건물과 토지를 매입한 ‘루크 드래곤’이 일본계 유한책임회사라고 보도했다. 이에 홍문종 의원은 이튿날 보도자료를 통해 “본 거래를 중개한 업체에 따르면 ‘루크 드래곤’이 일본계 유한책임회사가 아니라 하와이 유한책임회사 즉 미국계임을 밝혀왔다”고 반박했다. 홍 의원실 관계자는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자체적으로 알아본 결과, 루크 드래곤의 현 대표는 미국인으로 일본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계 미국인도 아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지 교민들은 ‘루크 드래곤’이 일본계 회사라는 의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특히 ‘루크 드래곤’의 자금 상당 부분이 하와이 자산관리사를 거쳐 일본계 은행인 ‘센트럴 퍼시픽 뱅크(Central Pacific Bank)’에서 유입된 점에 주목하고 있다. ‘센트럴 퍼시픽 뱅크’는 1954년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일본계 2세들이 주축이 돼 설립된 하와이 지역은행이다.
이와 더불어 일본계 미국인이 ‘루크 드래곤’의 증인 격으로 매매 계약을 체결한 사실에도 주목하고 있다. 고서숙 고송문화재단 이사장은 이와 관련해 “매매 서류를 보면 매입자 ‘루크 드래곤’의 매니저로 ‘칼튼 카주미 쿠수노키(Carlton Kazumi Kusunoki)’가 명시돼 있다”며 “이걸 보면 충분히 일본계 투자 회사라고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한인회의 한국독립문화원 기증요청 거절했나
교민들은 매입 업체의 국적 자체보다 한인과 관련 없는 외국계 회사와 거래를 체결했다는 점에 분노하고 있다. 고 이사장은 “매입 업체가 일본계인지 미국계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며 “중요한 것은 한인사회가 매입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왜 거짓말을 하면서 비밀리에 이 거래를 강행했는지 그것이 궁금하다”고 주장했다.
사실 한국독립문화원 매각 논란이 불거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3월에도 매각설이 돌아 한인회 측은 홍 의원 측에 한국독립문화원 매각을 즉시 중단하고 타인에게 넘어가지 않고 잘 보존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마음을 전했다. 당시 한인회 측은 기자회견을 갖고 “한인사회는 독립문화원을 후손들을 위해 지켜가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하고 “독립문화원을 하와이 한인사회에 기증할 것”을 호소했다.
당시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고 이사장은 “처음에는 경민학원 측이 독립운동 부지를 사가지고 독립문화원으로 바꿨으니 (팔 생각이면) 국가에다 기증하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한인사회에 기증하라고 했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한인사회에서 매입할 수 있게 하라고 경민학원 측에 뜻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민학원 측은 당시 매각설에 대해 “한국독립문화원의 매각은 전혀 사실무근이며 매각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하와이 한인회의 기증 요청은 들은 적 없다”고 해명한 바 있다. 이어 이번 매각 논란에 대해선 “독립문화원 개장 당시에는 교민들이 문화원 관리에 힘을 보태겠다고 했지만 지난 15년 동안 어느 누구도 관심을 보인 적 없다”고 반박했다.
# 운영자금 정부 지원 둘러싼 진실은
홍문종 의원 측 보도자료에 따르면, 홍 의원의 부친은 지난 15년간 매년 1억 원이 넘는 개인 사재를 들여가며 한국독립문화원을 지키려 노력했다. 홍 의원실 관계자는 “홍우준 박사가 국내에 들어왔을 때 정부의 지원을 받기 위해 정부 관계자도 많이 만나려 노력했고, 하와이 현지에서는 총영사관에도 접촉을 많이 시도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 측에도 독립문화원 유지를 위해 수차례 도움을 요청했으나 외면당했다”며 “홍우준 전 의원은 독립유공자의 후손으로 항일역사의 아픔을 되새기고 숭고한 정신을 계승발전 시키고자 지속적인 노력을 해왔지만 정부나 교민들 누구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홀로 독립문화원을 운영·유지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홍 의원 측의 입장과 전혀 다른 내용의 의혹이 제기돼 논란은 쉽게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한인회 측은 25일 기자회견에서 홍 의원 측의 해명에 대해 “한국 정부가 해외 독립유적지로 지원하기 위해 총영사관을 통해 현지 운영위원회를 설립할 것을 제의했지만 당시 홍 전 의원이 이를 반대했다는 현지 관계자 증언이 있다”고 밝혔다.
과거 노무현 정부시절 정부차원의 지원 계획이 있었지만 이를 거절한 것은 홍 전 의원이었다는 주장이다. 당시 현지 관계자의 증언에 따르면, 2004년 하와이를 방문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인동포 간담회에서 한 교민으로부터 홍 전 의원이 외국인에 넘어갈 뻔한 독립유적지를 사재 50여만 달러를 들여 매입한 사실을 전해 들었다. 이에 당시 최흥식 주호놀룰루 총영사는 노 전 대통령에게 운영자금을 정부가 지원해달라고 부탁했고, 노 전 대통령이 국가보훈처를 통해 매년 5만 달러를 지급해주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약속된 운영자금을 집행할 운영위원회 구성 과정에서 홍 전 의원이 운영위원회는 필요 없다며 구성을 거절해 지원금을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한국독립문화원은 개인재산으로 분류돼 법적인 잣대를 들이댈 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이미 매각이 완료된 상태로 한국독립문화원을 지키기 위해선 현실적으로 다시 매입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가장 큰 문제는 한국독립문화원 내 소장된 유물과 유적이다. 한인회 한 관계자는 “독립문화원 자리가 팔렸으니 그 안에 있는 독립운동가의 유물을 개인적으로 가져가 보존하고 싶다는 사람도 있었다”며 “아직 안에 있는 유물과 유적을 한 개도 건들지 말라고 엄포를 놓은 상황이다. 하루빨리 소장된 우리 유물을 되찾을 수 있게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홍 의원실 관계자는 “독립유공자로서 홍 전 의원의 아버지 유품도 한국독립문화원에 있기 때문에 현재 건물에 남아있는 유물과 유적은 경기도 의정부에 있는 경민문화원으로 가져올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무명 애국지사 추모비는 하와이 주호놀룰루 총영사관에 기증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
하와이 한인 역사 담긴 ‘한국독립문화원’ 명맥만 유지하다 최근엔 폐쇄 한국독립문화원 내부에 세워진 무명 애국지사 추모비. 사진제공=고송문화재단 그러다 2002년 홍우준 전 의원(당시 경민학원 이사장)이 ‘재단법인 하와이 한국독립문화원’을 설립해 국민회로부터 55만 달러에 매입한 뒤 2003년 미주 한인 이민 100주년을 맞아 한국독립문화원으로 개장했다. 이후 지난 2007년에는 소유주가 홍 전 의원 개인 명의로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독립문화원에는 하와이 초기 이민에서부터 독립운동, 해방 후 고국 지원 활동에 이르기까지 각종 유물과 사진이 전시돼 있다. 대한인국민회 회관 사진을 비롯해 대한인국민회 하와이 지방총회 창립회원들의 사진, 이승만 대한인국민회 입회 증서, 독립운동을 위해 군인 양성에 앞장선 박용만 선생의 모습과 당시 훈련 장면을 담은 사진 등 귀중한 사료가 전시돼 있다. 또한 2003년 한국독립문화원 건립에 맞춰 독립운동을 하다 스러져간 한인들의 넋을 기리고자 ‘무명 애국지사 추모비’도 문화원 안에 세워졌다. 그러나 한국독립문화원은 개원 이래 ‘주택가’라는 토지 이용규제에 발이 묶여 공공시설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유명무실한 시설로 전락했다. 2007년에는 문화원으로서의 활동보다는 건물에 만두공장을 임대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한국독립문화원은 얼마 전까지 하와이를 찾는 방문객들이 개인적으로 찾는 시설로 그 명맥을 유지해오다 최근에는 사실상 폐쇄된 상태였다. 이에 대해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은 “15년간 매년 1억 원이 넘는 개인사재를 들어가며 지켜왔으나 이제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워 매각을 결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