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후보로 공식 지명된 도널드 트럼프(70)가 내세우고 있는 주된 신념은 ‘미국우선주의’, 즉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다. 트럼프가 지난 4월부터 새로운 슬로건으로 사용하고 있는 이 ‘아메리카 퍼스트’에는 모든 분야에 있어서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며,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은 내리지 않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다른 한편으로는 호된 비난을 사고 있기도 하다. 자칫 극우 성향의 고립주의 혹은 국수주의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메리카 퍼스트’는 지난 수개월 사이 미국인들, 특히 트럼프를 지지하는 백인들 사이에서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너도나도 ‘미국이 우선’이라고 외쳐댔다.
그런데 트럼프가 마치 자신의 참신한 아이디어인 양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는 ‘아메리카 퍼스트’는 사실 그가 처음 고안한 것이 아니다. ‘아메리카 퍼스트’ 운동의 역사는 이미 2차세계대전 때부터 시작됐을 정도로 그 뿌리가 깊다. 요컨대 트럼프가 자신의 것인 양 포장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사실 트럼프의 표절 사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 미국의 온라인 매체인 <데일리 비스트>는 “꾸준히 지속되어 온 트럼프의 상징 가운데 하나는 ‘표절’이었다”고 비난하면서 지금까지 트럼프가 여러 분야에서 교묘하게 남의 것을 베끼거나 훔쳐왔다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상표등록을 한 선거 슬로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선거 슬로건을 표절한 것이다. 사진은 공화당 전당대회 마지막날 트럼프가 대선후보 수락 연설을 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지난 7월 18일(현지시간) 클리블랜드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 첫날. 멜라니아 트럼프는 청중들의 환호와 갈채 속에 무대 위에 올라 또박또박한 말투로 남편의 지지를 호소하는 연설을 했다. 이 연설문을 통해 멜라니아는 미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덩달아 가정적인 트럼프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데도 성공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표절 의혹이 불거졌다. 멜라니아의 연설문이 2008년 미셸 오바마가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했던 연설문과 상당 부분 흡사하다는 것이었다. 이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던 트럼프 측은 논란 끝에 결국 연설문 작성자가 나서서 사과 성명을 내는 등 망신을 당해야 했다.
이와 관련, <데일리 비스트>는 “트럼프 가족의 표절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역사가 길다”라고 비꼬았다. 가령 트럼프가 당당하게 주장하고 있는 선거 슬로건인 ‘아메리카 퍼스트’도 대표적인 표절 사례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트럼프가 처음 ‘아메리카 퍼스트’란 문구를 사용한 것은 지난 3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였다. 인터뷰 도중 먼저 이 문구를 언급한 것은 트럼프가 아닌 인터뷰어였던 데이비드 생어였다. 생어는 트럼프의 외교정책과 관련해서 “고립주의가 아니면 최소한 ‘아메리카 퍼스트’ 같은 것인가”라고 물었고, 이에 트럼프는 “맞다. 나는 고립주의자가 아니라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자)’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표현 마음에 든다. 나는 ‘아메리카 퍼스트’다”라고 거듭 말했다.
이 표현이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그후부터 트럼프는 공식석상에서 ‘아메리카 퍼스트’라는 문구를 재차 사용했으며, 급기야 4월부터는 새로운 선거 슬로건으로 공식 사용하기 시작했다. 외교정책 관련 연설에서도 트럼프는 수차례 ‘아메리카 퍼스트’를 강조했다. 가령 “‘아메리카 퍼스트’는 내 정부의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는가 하면, “내가 내리는 모든 결정은 ‘아메리카 퍼스트’에 기초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만든 것이라고 알고 있는 ‘아메리카 퍼스트’가 사실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아는 미국인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아메리카 퍼스트’의 뿌리 깊은 역사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사실 고립주의, 반유대주의와 동일선상에 놓여있는 ‘아메리카 퍼스트’란 개념은 이미 1920년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당시 1차세계대전이 터지는 등 세계 정세는 시끄러웠지만 미국은 오랫동안 다른 나라의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 고립주의 노선을 택하고 있었다. 이는 1796년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유명한 고별 연설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 당시 워싱턴은 “다른 나라의 골치 아픈 일에 얽히지 말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줄곧 중립적인 자세를 취해왔으며, 1차세계대전 이후 유럽이 비틀거리고 한때 강대국이었던 나라들이 전쟁 후유증에서 회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을 때 홀로 부를 축적하면서 성장했다.
이런 미국을 가리켜 1923년 영국의 <데일리 익스프레스>는 “미국은 ‘아메리카 퍼스트’라는 현명한 정책으로 번영을 이뤄나가고 있다”라고 논평하기도 했다. ‘아메리카 퍼스트’는 1927년 윌리엄 헤일 톰슨이 시카고 시장으로 당선되면서 더욱 탄력을 받았다. 당시 톰슨은 선거 노래로 ‘미국이 늘 최우선이다(America First, Last and Always)’라는 가사를 사용했었다.
하지만 1940년 2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이런 고립주의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미국인들 사이에서 참전해야 한다는 의견과 참전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예일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고립주의를 주장하는 단체인 ‘아메리카 퍼스트 위원회’가 설립됐다. 예일대 법대생이었던 오츠 전 부통령의 아들인 더글러스 스튜어트 주니어를 중심으로 결성된 이 단체는 미국의 참전을 강력히 반대했으며, 중립적인 위치에서 히틀러와의 협상을 통해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트럼프의 또다른 선거 슬로건인 ‘아메리카 퍼스트’도 표절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진은 1941년 ‘아메리카 퍼스트 위원회’에서 연설하고 있는 찰스 린드버그.
좌파 우파를 가리지 않는 진정한 연합 단체였던 ‘아메리카 퍼스트 위원회’는 미국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평화단체 가운데 하나였으며, 당시 소속 회원들의 면면 역시 굵직했다. 가령 헨리 포드 전 대통령, 포터 스튜어트 전 대법관, 케네디와 존슨 정부에서 일했던 서전트 슈라이버, 킹맨 브루스터 전 예일대 학장, 월트 디즈니, 노벨 문학상 수상가인 싱클레어 루이스, 시인인 E.E. 커밍스, 건축가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등이 이 단체의 회원이었다. 미 전역에 수백 개의 지부를 설립했던 단체의 회원 수는 80만 명을 넘었으며, 당시 회원 대다수는 미 중서부 거주자들이었다.
기업가들의 후원도 두둑했다. <시카고 트리뷴> 편집장이었던 로버트 맥코믹, ‘스팸’을 만든 정육업자인 제이 호멜, ‘모톤 소금’사의 회장인 스털링 모튼, ‘시어스’의 전 회장인 레싱 로젠발트 등이 단체를 후원했다.
뭐니뭐니해도 ‘아메리카 퍼스트 위원회’의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하면 단연 찰스 린드버그를 꼽을 수 있었다. 세계 최초 무동력 대서양 횡단에 성공하면서 미국인들의 영웅으로 떠올랐던 린드버그는 줄곧 “유럽의 전쟁에 관여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고립주의 운동을 전개했다. 또한 린드버그는 “미국은 그 어떤 나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 “이제 눈을 뜨고 더 늦기 전에 다시 한 번 우리 조국을 믿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처럼 린드버그 역시 대다수의 미국인들이 자신의 편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린드버그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당시 한 여론조사에서는 미국이 파시즘을 척결하기 위해서 반드시 참전해야 한다는 응답자가 다수를 차지했었다.
결국 미국이 진주만 습격을 계기로 참전을 선언하면서 린드버그를 비롯한 ‘아메리카 퍼스트 위원회’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위원회는 해체됐지만 그들이 주장했던 ‘아메리카 퍼스트’는 트럼프 같은 인물을 통해서 여전히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었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줄곧 사용하고 있는 또 다른 슬로건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는 어떨까. 사실 이 역시도 트럼프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이는 사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이미 1980년 선거 운동 때 사용했던 유명한 슬로건이었다. <데일리 비스트>는 “당시 이 슬로건은 선거 운동 배지부터 포스터, 그리고 레이건 전 대통령의 후보 지명 수락 연설에서도 전폭적으로 사용됐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혹시 트럼프는 이 사실을 몰랐던 걸까.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말했다.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친분을 쌓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트럼프는 자신이 주최하는 각종 행사에 직접 레이건을 초대하기도 했었다. 또한 레이건의 재선 캠페인에 1000달러를 기부하기도 했었다.
최근 진행된 한 TV 인터뷰에서도 트럼프는 “나는 레이건을 매우 존경한다. 그를 도왔고, 또 잘 알았다. 그는 나를 좋아했고, 나도 그를 좋아했다”라고 말했다. 이런 트럼프의 태도에 대해 레이건의 전 보좌관은 “트럼프 특유의 과장된 표현”이라고 말하면서 “트럼프는 분명히 공화당의 상징과도 같았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란 슬로건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현재 뻔뻔하게 슬로건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상표등록까지 해놓은 상태다. 그리고 2015년 3월에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메이크 아메리카 그레이트 어게인’은 내(가 만든) 것이다. 내가 1년 전에 구상한 것이다. 지금도 계속 사용하고 있고, 이제는 모두가 사용하고 있다. 모두들 좋아한다.”
트럼프가 남의 것을 베꼈다는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있다. 2005년 설립된 ‘트럼프 연구소’의 강의 교재도 마찬가지였다. 이름만 빌려줬을 뿐 강의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았던 트럼프는 업체의 광고를 통해 “내가 배운 부동산 투자 기법과 부 축적의 비밀을 가르쳐주겠다”고 떠들었다.
하지만 사실은 전혀 달랐다. ‘트럼프 연구소’가 강의 교재로 사용하기 위해 출간한 <백만장자의 성공 로드맵>이란 책의 내용은 트럼프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는 이 교재가 1995년 <성공 매거진>이 출간한 <부동산 통달 시스템>의 전체 혹은 일부를 베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최소한 20쪽이 그러했다고 말했다. 이에 트럼프 측은 “강의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교재의 표절 내용을 전혀 몰랐다”고 해명했다.
경선 과정에서는 트럼프가 경쟁 후보였던 벤 카슨의 신문 칼럼을 표절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지난 3월 9일 트럼프는 괌의 일간지인 <퍼시픽 데일리 뉴스>에 미국 내 테러범들과 연방에 대한 한 편의 칼럼을 게재했다. 하지만 곧 이 칼럼은 카슨의 것과 비슷하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문장 전체가, 혹은 일부 구절이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가령 이보다 12일 전인 2월 26일 북마리아나제도의 일간지인 <마리아나스 버라이어티>에 실린 카슨의 칼럼을 살펴보면 이렇다.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미국령 사모아, 괌, 미국령 버진아일랜드, 푸에르토리코연방, 그리고 북마리아나제도에 거주하는 우리 형제자매들이 보여준 애국적인 행동에 고마움을 표시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트럼프의 칼럼을 보면 이렇다. “우리 조국의 역사를 살펴볼 때 미국령 사모아, 괌, 미국령 버진아일랜드, 푸에르토리코연방, 그리고 북마리아나제도에 거주하는 우리 형제자매들이 보여준 애국적인 행동들은 종종 인정받지 못해왔다.” 과연 한눈에 봐도 단어 선정부터 표현까지 카슨의 칼럼과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표절 의혹들이 불거질 때마다 트럼프는 매번 부인하고 있는 상태. 하지만 그럼에도 멜라니아의 연설문을 비롯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이런 표절 시비를 접할 때면 과연 트럼프가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지도자가 갖춰야 할 품격을 제대로 갖췄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찜한 사람이 임자? 레이건의 선거구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트럼프에 앞서 이 문구에 대해 독점사용권을 취득한 이들이 있었다. 미 특허청에 접수된 바에 따르면 트럼프는 이 문구의 용도에 대해 “정치활동 위원회를 위해, 다시 말해서 정치 현안에 대해 대중에게 홍보하고 기금을 모금하는 데 사용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트럼프는 이 문구가 지금처럼 유명해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듯하다. 정치 라이벌들이 사용하는 것만 막았을 뿐 이 문구를 티셔츠나 모자 등에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독점사용권은 신청하지 않았던 것. 이런 트럼프의 부주의를 노린 것은 캘리포니아의 메리 바레스와 보비 에스텔이었다. 지난해 8월 5일 발빠르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 대한 상표권을 출원했던 이들은 모자, 티셔츠, 운동복, 수영복, 양말 등 모든 의류를 비롯해 배낭, 동전지갑, 지갑, 심지어 애완견 용품에 이 구호를 사용하는 독점사용권을 취득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트위터를 통해 “이봐요, 트럼프 씨. 10만 달러(약 1억 원)를 성유다 아동병원에 기부하면 상표권을 돌려 드리죠!”라고 전했다. 결국 10월 27일 트럼프는 수표를 발행해 병원에 전달했으며, 액수는 정확히 밝히지 않았지만 10만 달러 수표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트럼프의 이런 상표권 등록 행위에 대해 <데일리 비스트>는 이 선거 구호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대선 운동 때 이미 사용됐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절도의 기술’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선거 구호를 상표등록한 것은 사실 트럼프가 처음은 아니다. 2009년 공화당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국가가 우선(Country First)’이라는 선거 구호를 상표등록한 바 있으며, 훗날 2012년 대선 운동 때 이 구호를 슬로건으로 사용했다. 그런가 하면 2012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재선 선거 운동 때 ‘더 큰 단결(Greater Together)’ ‘44세대(GenerationFortyFour)’ ‘젠44(Gen44)’ 등의 선거 구호를 상표등록했었다. 또한 선거 로고에 대해서도 상표권을 등록해놓아 의류, 자동차 스티커, 머그잔, 보석, 볼펜 등에 로고가 상업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방지해왔다. 2012년 공화당의 대선 후보였던 미트 롬니 후보는 실수로 ‘미국을 믿습니다(Believe in America)’라는 구호에 대한 상표등록을 하지 않아 이를 선점한 한 남성이 팔찌, 모자, 토트백, 깃발 등에 이 구호를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고 말았다. 그런가 하면 2008년 오바마가 대선 운동 때 사용했던 역대 가장 인기가 많았던 선거 구호인 ‘우리는 할 수 있다(Yes, We Can)’는 상표등록을 해놓지 않은 상태다.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