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도 지난 7월 21일 엘시티 시행사와 분양대행업체 등에 대해 압수수색에 나서며 전격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검찰은 엘시티 사업 전반에 걸쳐 석연치 않은 부분들에 대해 들여다볼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정·관계 로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예상된다.
엘시티가 시행 중인 해운대관광리조트 예상도
해운대해수욕장과 맞닿은 부지에 들어서는 엘시티는 호텔과 레지던스, 주상복합 아파트 등 3개 동으로 구성됐다. 이 중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아파트 분양은 전국을 깜짝 놀라게 했다. 320㎡(97평형) 펜트하우스 분양가가 역대 최고액인 69억 원을 기록해서다. 이를 3.3㎡당 금액으로 환산하면 7200만 원으로 이 역시 국내에서 가장 비싸다.
규모는 세간을 더욱 놀라게 했다. 연면적 66만 1134㎡(약 20만 평)는 단일 주거 복합 건물로는 최대다. 6성급 관광호텔과 레지던스 호텔, 파노라마 전망대 등이 들어서는 랜드마크 타워는 101층, 411.6m 높이로 주거용 건물로는 가장 높다. 건물 높이만 따졌을 땐 제2롯데월드(123층, 555m)에 이어 두 번째다.
이처럼 ‘역대급’ 가격과 규모로 관심을 모았지만 구설 역시 끊이지 않았다. 부산 지역에선 시행 이전부터 1조 5000억 원가량의 사업비가 들어가는 엘시티 사업을 놓고 온갖 얘기가 무성했다고 한다. 해운대 인근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중국 자본 투입, 조직폭력배 개입, 정치권 특혜설 등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검찰이 수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말이 있었는데 사실이었다. 분양 초기보단 인기가 시들해졌다”라고 전했다.
검찰 역시 물밑에서 엘시티 관련 첩보를 수집하며 수사를 준비해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지난 7월 21일 부산지검 동부지청 형사3부는 엘시티 시행사, 분양대행업체, 용역 및 설계업체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검찰은 이날 확보한 회계자료 및 컴퓨터 하드 디스크 등을 면밀 분석하는 한편, 관계자들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를 단행했다. 수사가 본격 궤도에 오른 셈이다.
검찰은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엘시티 시행사 내사 과정에서 수상한 자금 흐름 정황을 대거 포착했다고 한다. 부산지검의 한 관계자는 “엘시티 시행사, 용역 회사 등의 계좌를 추적했다. 비용을 과다 계상하는 방법 등으로 돈을 빼돌린 흔적이 발견됐다. 정확한 액수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지만 이런 방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식 수사에 나서게 된 배경”이라고 귀띔했다.
검찰은 엘시티가 사업 인·허가를 받는 과정을 비롯해 거액의 PF(프로젝트 파이낸싱)가 제대로 쓰였는지 여부, 불법 사전분양과 청약률 부풀리기 의혹 등을 수사한다는 방침이다. 사실상 사업 전반에 대해 살펴보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조성된 비자금이 어떻게 쓰였는지를 확인하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고 한다. 정·관계 로비를 파헤치는 게 수사의 종착지라는 얘기다.
검찰과 사정당국 관계자들 말을 종합해보면 첩보 및 내사 단계에서 내로라하는 PK(부산·경남) 지역 유력 인사들 이름이 언급된 것으로 전해진다. 아직 구체적인 혐의가 드러나진 않았지만 몇몇은 엘시티 측과 석연치 않은 자금 거래가 오간 것으로 보이는 내역도 발견됐다고 한다. 이들이 엘시티 측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또 돈을 받은 대가로 인허가 등에 외압을 행사했는지는 검찰 수사에서 밝혀질 부분이다.
명단에 오르내리는 인사들 면면은 엘시티 외관 못지않게 화려하다. 정치권의 전·현직 의원들은 물론 전직 장관급과 지방자치단체장 고위직 공무원, 스포츠 및 연예계 스타 등의 이름이 나온다. 이 때문에 부산 지역에서는 “엘시티 측으로부터 대접을 받지 못하면 부산 지역에서 잘나가는 인사가 아니다”라는 웃지 못 할 소리도 있었다고 한다.
앞서의 부산지검 관계자는 “단순히 엘시티 측과 친분만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홍보 등을 위해 연예인 등을 동원하지 않았겠느냐”면서도 “그러나 여기에 쓰인 돈이 불법 비자금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또 정치인이나 공무원의 경우 엘시티 사업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뇌물을 받았을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향후 검찰 포토존에 부산 지역 유력 인사들이 줄줄이 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엘시티 수사를 바라보는 여권 관계자들은 지난 2012년 MB 정권을 강타했던 ‘파이시티 게이트’를 떠올리며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양재동 복합물류단지 개발사업 시행사인 파이시티는 친이계 인사들에게 금품을 제공하고 특혜를 받은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이로 인해 ‘실세 중 실세’라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준 전 차관이 구속됐다. 그리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레임덕으로 급속히 빠져들었다.
현재 엘시티에 연루된 것으로 이름이 나오는 정치권 인사들은 대부분 새누리당에 속해 있다. 부산이 여권 텃밭이라는 점도 있겠지만 현 정부 들어 실세로 불렸던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추측된다. 한 친박 의원은 “(엘시티는) 파이시티 사건과 흡사한 것 같다. 사업이 우여곡절을 겪었고, 시행사와 정권 실세가 주인공이라는 점도 그렇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다음 수순은 정치권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파이시티 게이트는 대통령 임기 후반 정권 실세들을 겨누곤 했던 검찰의 스탠스를 여실히 드러낸 수사로 꼽힌다. 현재 검찰 분위기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검찰을 통제해오던 우병우 민정수석이 난처한 상황에 빠진 가운데 검찰 내부에서 권력 누수 현상이 속속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엘시티 수사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다. 서울중앙지검 고위인사는 “현 정권에 대한 반발 기류가 여기저기서 감지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친박계 실세와 관련된 비리첩보가 많이 생산되고 있는데 (엘시티도) 그 중 하나”라고 귀띔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