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방송사의 프로그램 개편은 보통 봄이나 가을 시즌에 정기적으로 이뤄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최근 SBS는 시청률과 광고 수익이 낮은 예능 프로그램들을 가치 없이 폐지하는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 수익이 낮은 프로그램은 더 이상 ‘지켜보지 않겠다’는 선언으로도 풀이된다. 이를 통해 7월과 8월 사이 폐지되는 예능 프로그램만 3편이다. 그 자리를 메우려 파일럿 형식으로 새롭게 선보이는 예능 프로그램은 무려 다섯 편에 이른다.
SBS의 대대적인 프로그램 ‘물갈이’는 방송가의 새로운 예능 판도를 엿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시선을 거두기 어렵다. 특히 유재석과 강호동이 오랫동안 전면에 나서 이끌어온 프로그램들의 폐지는 여러 측면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른 감이 있지만 10년간 견고하게 쌓아온 이들의 ‘아성’이 차츰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지적도 나온다.
유재석이 진행을 맡은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와 강호동이 진행을 맡은 ‘스타킹’이 폐지된다. 사진 출처= SBS
# 유재석도 예외일 수 없는 ‘개편 칼날’
SBS의 이번 선택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유재석이 진행해온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의 폐지다. 지난해 5월 SBS는 유재석을 진행자로 내세워 이 프로그램을 시작했지만 1년 3개월이 지나도록 대대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자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낮은 시청률은 그 근거가 됐다. <동상이몽>이 최근 기록한 시청률은 4~5%대에 불과하다. 유재석이라는 이름이 무색한 수준이다.
프로그램 폐지에 직면하기는 강호동도 마찬가지다. 2007년부터 <스타킹>의 진행을 맡아온 강호동은 연예계 은퇴 선언을 한 2011년까지 햇수로 5년 동안 자리를 지켰다. 당시 <스타킹>은 10% 후반대의 시청률을 유지하며 인기를 얻었고, 이를 통해 강호동 역시 전성기 인기를 누렸다. 연예계에 다시 돌아온 이후 3년간 더 진행을 맡아왔다. 그만큼 강호동을 상징하는 프로그램으로 통했다.
강호동 역시 프로그램 폐지가 확정된 이후 “<스타킹>은 내 인생의 학교였다”고 밝혔다. “매 순간 무대에 설 때마다 배우는 것이 많았다”며 “각박한 현실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꿈을 이루기 위한 창구로 ‘스타킹’의 문을 두드린 많은 문들에게 감사하다”고도 밝혔다. 진행자가 프로그램 폐지에 맞춰 자신의 소회를 전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최근 프로그램의 폐지를 겪긴 했지만 유재석과 강호동은 여전히 방송 제작진이 가장 욕심을 내는 진행자로 꼽힌다. 물론 강호동은 연예계 은퇴와 복귀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과거 인기를 완벽히 되찾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기기도 하지만 유재석의 상황은 다르다. 그런데도 SBS가 이들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전격 폐지를 확정한 데는 이른바 ‘적자 프로그램’이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예능계의 블루칩 서장훈은 ‘미운우리새끼’ 등 다수의 프로그램에 출연 중이다. 사진 출처=SBS
# 서장훈·조세호·양세형 파일럿 ‘선발 등판’
폐지하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새롭게 선보이는 프로그램도 있다. SBS는 개편을 통해 여행 버라이어티 <꽃놀이패>를 비롯해 <디스코-셀프 디스 코믹클럽>, <신의 직장>, <인생게임 상속자>, <다시 쓰는 육아일기 미운 오리새끼> 등 다양한 장르와 소재의 예능 프로그램을 연이어 내놓는다.
이 같은 대대적인 프로그램 개편은 한 편으로 방송가가 새롭게 주목하는 예능 스타가 누구인지를 증명한다. SBS가 내놓는 5편의 파일럿 프로그램의 이끄는 진행자 가운데 단연 주목받는 이들은 농구스타 출신의 방송인 서장훈과 개그맨 조세호, 양세형이다.
특히 서장훈은 예능 프로그램에 본격적으로 ‘선발 등판’하는 분위기다. <꽃놀이패>와 <다시 쓰는 육아일기> 등 두 편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양세형 역시 <신의 직장>과 <디스코>, 조세호는 <꽃놀이패>의 진행을 각각 맡는다. 프로그램이 폐지된 유재석과 강호동이 이번에 신설되는 파일럿에 단 한 편도 참여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 자체로 예능 스타의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다는 분석이 충분히 나온다.
‘프로 불참러’라는 애칭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조세호. 사진 출처=SBS
예능 프로그램 제작사의 한 관계자는 “유재석과 강호동은 10년여 동안 뚜렷한 경쟁자를 만들지 않고 정상을 자리를 지켰지만 최근 프로그램의 개성이 다양화되면서 김구라 등 새로운 스타가 등장했고 최근에는 또 다른 개성을 가진 서장훈이나 양세형 같은 새로운 얼굴이 제작진의 관심을 얻는다”고 밝혔다.
방송가에서는 예능 스타의 탄생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SBS가 비정기적인 프로그램 개편을 단행한 배경은 ‘성과’와 ‘실적’을 우선에 둔 선택이다. 이제는 아무리 인기 있는 스타라고 해도 시청률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해당 프로그램은 언제든 폐지의 수순을 밟을 처지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서장훈과 양세형 등 새롭게 떠오르는 스타들 역시 안심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