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의 장외 거물급인 손학규 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의 하산이 임박했다. 손 전 고문은 7월 29일 전남 해남군 해남문화원에서 문화·예술계 지지자들이 주최한 ‘손학규와 함께 저녁이 있는 문화한마당’에서 “저에게 주신 이 용기를 여러분과 함께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으로 돌려드려야겠다는 각오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사실상 정계복귀 선언이다. 손 전 고문이 여의도 등판을 기정사실화하자 여의도는 들썩거렸다. 더민주와 국민의당은 물론,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손학규 영입론’에 불을 지폈다.
손 전 고문의 정계복귀 수순은 4·13 총선을 5개월 앞둔 2015년 11월부터 물밑에서 감지됐다. 새정치민주연합 시절인 11월 2일 서울 여의도 모처에서 모인 손학규계 18명 의원들은 당시 ‘앉으나 서나 동미재(손 전 고문의 싱크탱크 동아시아미래재단)’를 외쳤다. 이 모임은 손학규계 핵심인 이낙연 전남도지사가 마련했다. 이 자리에는 김동철 신학용 양승조 이찬열 이개호 최원식 당시 의원 등이 있었다. 그로부터 다시 9개월이 흘렀다.
손학규 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 7월 19일 오전 서울 강북구 수유동 국립 4.19민주묘지에서 열린 제56주년 4.19혁명 기념식에서 분향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야권 발 원심력이 극에 달했던 지난해 말, 손 전 대표 앞에는 3가지의 복귀 시기와 방법이 있었다. 첫 번째 복귀 시기는 올해 8∼9월 전후다. 정계 은퇴한 지 2년이 되는 이 시기에 등판할 경우 신당 창당 등 통합이 유력한 카드로 거론됐었다. 두 번째는 대선 정국이 열리는 내년 1월이다. 이는 더민주와 국민의당 가운데 한쪽을 택하는 복귀 수순이다. 세 번째는 내년 7월이다. 마지막 카드는 범야권의 대선 후보 단일화 참여를 강하게 시사하는 행보다.
일단 손 전 고문은 9월 추석 이후로 복귀 시점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약속 파기라는 비판 여론에도 조기 대권 행보에 나선 것이다. 이는 ‘대세론’을 형성한 차기 대선 후보가 없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 전계완 평론가는 이와 관련해 “지금은 모든 후보들이 타 후보의 실책만 바라는 마이너스 게임을 하는 상황”이라며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가 야권의 맹주 자리를 잃을 때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복귀 방식은 안갯속이다. 이 지점이 ‘손학규 정계복귀’ 퍼즐을 푸는 1차 변곡점이다. 손 전 고문의 조기 정계복귀에는 ‘국민 회초리’ 키워드가 깔렸다. 정치권 안팎에선 4·13 총선에서 등판 시기를 실기한 손 전 고문의 복귀 시기를 놓고 상반된 관측이 흘러나왔다. 한쪽에선 복귀 명분이 없다는 이유로 ‘2017년’이라고 내다본 반면, 다른 한쪽에선 ‘가을 정국’에 힘을 실었다. 새누리당 참패로 끝난 4·13 총선에 손 전 고문이 ‘구원등판’을 거부하자, 정치권 공간이 한층 좁아졌다. 손 전 고문의 정치에서 가장 중시하는 ‘명분’이 사라진 셈이다.
그런데도 손 전 고문은 조기 복귀 쪽으로 선회했다. ‘대한민국 개조론’을 담은 책 출간 시점은 9월 추석쯤이 될 전망이다. 9월 정기국회를 시작으로, 예산 정국을 거쳐 연말 정국이 끝나면 ‘대권 여의주’를 향한 별들의 전쟁이 정점을 찍는다. 정계 복귀 명분이 없기는 8∼9월 전후나 내년 1월이나 매한가지다. 그렇다면 남은 카드는 내년 7월이다. 이 카드가 유효하려면, ‘범야권의 4·13 총선 참패’ 및 ‘문재인·안철수 필패론’이 맞물려야 한다.
이미 ‘범야권의 4·13 총선 참패’는 빗나간 상황이다.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의 지지도는 견고하고,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도 평타를 기록 중이다. 손 전 고문 측 내부에선 결단력이 아킬레스건으로 꼽히는 손 전 고문이 마지막 기회인 2017년 대선마저 등판 타이밍 놓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계 복귀 의사가 있다면, 조기 등판을 통해 국민들에게 매를 일찍 맞고 맷집을 키우는 쪽으로 가자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국민 회초리’가 ‘손학규 새판 짜기’의 첫 번째 키워드인 셈이다.
손 전 고문의 이 같은 ‘로우키 전략’에는 17대 대선 직전 실패한 ‘칩거’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중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손 전 고문은 17대 대선을 1년여 앞둔 2007년 10월 9일 ‘100일 민심 대장정’을 마쳤지만, 복귀 당일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이슈 메이커로 등극하지 못했다. 더민주 한 관계자는 “당시 일부 여론조사에서 ‘마의 5%’ 지지도를 넘겼지만, 그 이상 치고 나가는 데 실패했다”고 회고했다. 정계은퇴 번복으로 정치적 부담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로우키 전략’을 밑바탕에 깔고 반등 모멘텀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로 분석된다.
두 번째 키워드는 ‘국민 회초리’와 맞닿은 ‘국민 공동체론’이다. 이른바 ‘손학규식 제4의 길’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모두 ‘국민’이란 키워드가 들어간다. 손학규계 한 의원은 “최근 손 전 고문이 ‘국민’ ‘나라’ 등의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고 귀띔했다. 더민주 당원 신분을 유지 중인 손 전 고문 앞에는 제1야당과 국민의당 모두 열려있다. 양당 모두 손 전 고문에 강한 러브콜을 보냈다.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손 전 고문이 탈당할 것 같지는 않다”라며 국민의당행을 서둘러 차단했다. 2011년 4·29 분당을 보궐선거 당시 ‘손학규 캠프’에 합류했던 한 관계자는 “명분 없이 탈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반면 국민의당은 조기 전대를 촉구하는 호남파 의원들이 ‘외부 비대위원장’으로 손 전 고문 영입에 불을 지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도 “손 전 고문이 복귀하면 국민의당으로 올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고 말했다.
현재로선 손 전 고문은 제도권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강연정치와 민생탐방 등을 통해 대국민운동을 전개할 것으로 보인다. 정계복귀 시기를 앞당기되, 외곽 지대 구축을 하는 투 트랙이 ‘손학규 하산’의 유력한 시나리오다. 이유는 간단하다. 친노(친노무현)·친문(친문재인)계를 제외한 범 비노(비노무현)계를 고리로 한 정치 세력화에 나선다면, 즉각 ‘대권 욕심’에 대한 비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반대로 ‘더민주와 국민의당, 신당 창당’ 등 여러 길을 열어둔다면, 자신의 몸값을 한층 높일 수 있다. 범야권을 비롯해 ‘인물난’에 시달리는 여권에서도 지속적으로 러브콜을 보낼 경우 정계은퇴 약속 파기 부담을 상쇄할 수 있다. 로우키 전략을 앞세워 정계복귀를 선언한 뒤 제도권 정치 외곽에서 합류 타이밍을 기다리기 위한 포석인 셈이다.
한 평론가는 손 전 고문의 제도적 정치 거리두기를 ‘공간 찾기’로 정의 내렸다. 손 전 고문이 대권 도전에 실패한 2012년 대선 정국 때부터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가 중도·무당파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4년 뒤인 2016년 4·13 총선을 앞두고는 중도정당인 국민의당이 창당했다. 여기에는 김동철 의원과 김경록 부대변인 등 손학규계도 합류했다.
4·13 총선 직후에는 김부겸 더민주 의원을 비롯해 50대 그룹이 세대교체론을 들고 정국의 한 축으로 부상했다. 이념적 포지션도, 세력 구축도, 세대 담론에서도 손 전 고문의 자리는 없다. 이 평론가는 “안 전 대표를 시작으로,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도지사, 김부겸 의원 등이 손 전 고문의 지지도를 직간접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후보군”이라며 “손 전 고문이 어떤 명분을 갖고 복귀를 하더라도, 초반 안정성은 상당히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손학규계로 분류되는 더민주 의원은 “‘통합’ 키워드를 눈여겨보라”고 말했다. 통합이 추석께 출간하는 책의 핵심인 ‘대한민국 사회 대개조’의 출발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손학규 정치복귀의 성공 여부는 ‘통합 승부수’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 전 고문은 대통합민주신당에서 동교동계의 민주당과 통합, 2012년 민주당 당 대표 시절 땐 야권 중통합(민주당+혁신과통합+한국노총)을 각각 이뤄냈다. 세 번째 ‘통합’을 통해 세 번째 ‘대선’에 도전하는 그림을 그릴 가능성이 큰 셈이다. 이 과정에서 ‘동아시아미래재단’은 손 전 고문이 최종 종착지에 정착할 때까지, 물밑에서 ‘저녁 있는 삶’ 등의 정치 슬로건, 세대 담론 구상, 개헌 등 새로운 진보 노선의 내용 등을 담아내는 전진기지 구축을 할 것으로 보인다.
더민주를 탈당한 손학규계 전직 의원은 “손 전 고문이 여의도 정치권으로 돌아온다면, 동아시아미래재단이 핵심 역할을 할 것”이라며 “조직력은 건재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손학규 제4의 길’의 핵심인 ‘민생·통합·통일’ 등의 구체적 담론은 한 달 뒤 공개된다.
윤지상 언론인
정계개편 향방 ‘손’ 안에 있소이다…‘손학규 컴백’ 문재인·안철수 손익계산서 손학규 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의 정계 복귀가 초읽기에 들어감에 따라 야권 대선 경쟁자인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와 안철수 전 상임 공동대표의 손익계산도 분주해질 전망이다. 지난 18대 대선 당시 범야권 대권 잠룡이었던 이들은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 속에서 한 차례씩 격돌한 바 있다.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땐 ‘대세론’을 앞세운 문 전 대표(34만 7183표·56.5%)가 손 전 고문(13만 6205표·22.2%)을 꺾고 최종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당시 문 전 대표는 13개 지역에서 1위를 석권, ‘문재인 대세론’에 날개를 달았다. ‘저녁이 있는 삶’을 전면에 내건 손 전 고문은 ‘친노(친노무현) 패권주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당시 3∼4위는 김두관(8만 7842표·14.3%), 정세균 후보(4만 327표·7%)였다. 이후 문 전 대표는 무소속 후보로 나선 안 전 대표와 야권 단일화 협상에 나섰지만, ‘친노 2선 후퇴’ 논란이 극에 달하면서 후보 단일화에 실패했다. 안 전 대표는 18대 대선을 불과 20여 일 앞둔 2012년 11월 23일 “결코 나는 영혼을 팔지 않았다”며 대선 후보직 사퇴를 전격 선언했다. 대권 삼각 축이 동시에 본선에서 맞붙지는 않았지만, 간접적인 대결은 펼친 셈이다. 이제는 19대 대선이다. 이들은 “내 갈 길을 간다”며 손 전 고문의 복귀와 관계없이 ‘마이웨이’ 행보에 나섰다. ‘원외 인사’인 문 전 대표가 물밑에서 전방위로 휘젓고 있다면, ‘원내 인사’인 안 전 대표는 수면 위에서 연일 이슈 파이팅 중이다. 이들의 셈법은 손 전 고문의 정착지 향방에 따라 달라진다. 손 전 고문이 야권 발 정계개편을 위한 1차 정착지로 외곽 지대가 아닌 더민주를 택할 경우 당내 최대 주주인 친노·친문(친문재인)계와 비노(비노무현)계의 세 대결은 본격화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손학규 발 정계개편의 최대 변수는 ‘국민의당 내부 권력구도’다. 국민의당이 차기 대선을 앞두고 사분오열한다면, 손 전 고문의 더민주행은 친노계에는 균열점, 비노계에는 구심력을 증폭하는 기폭제가 된다. 야권 발 정계개편의 문이 전면적으로 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경우에 따라 박원순 서울시장과 안희정 충남도지사를 비롯해 김부겸 박영선 더민주 의원 등의 움직임도 한층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킹메이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문재인 vs 손학규’ 구도에서 누구를 밀지도 변수다. 반대로 손 전 고문이 더민주 대신 국민의당 내지 제4의 길 구축에 나선다면, 더민주와 국민의당 내 비노계 인사들의 탈당 러시가 정계개편의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야권 원심력이 증폭하면서 빅텐트의 문이 열릴 수도 있다. ‘문재인 대세론’이 새 국면을 맞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문 전 대표로선 조기 대선캠프 구축 등 정국 주도권 확보를 위한 승부수 마련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실제 문 전 대표는 7월 10일 네팔행을 마치고 귀국한 지 9일 만에 김대중(DJ)·노무현 정부 청와대 출신 인사들과 만찬 회동을 마쳤다. 이 자리에서는 문 전 대표의 조기 대선 캠프 논의가 아이디어 차원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더민주 관계자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지만, 문 전 대표의 복심 김경수 더민주 의원실이 최근 ‘문재인 마크맨’ 메신저 방을 개설하는 등 공중전을 위한 발 빠른 대응에 나서고 있다. 안 전 대표의 대권 전략 수정도 불가피해 보인다. 손 전 고문이 더민주로 갈 경우 중도 이미지가 겹치는 안 전 대표의 지지도는 단기적으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손 전 고문이 무당적 포함 제4의 길을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다. 손 전 고문이 국민의당에 안착한다면, 안 전 대표는 예선전부터 치열한 혈투를 견뎌내야 한다. ‘정치 9단’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의 의중이 내부 권력구도의 방향타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야권 한 관계자는 “손 전 고문이 복귀한다면, 야권 대선판은 물론 정계개편의 방향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