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성남시장(좌)과 남경필 경기도지사(우)의 악연은 판교 환풍구 붕괴 추락사고 이후 지금까지 질기게 이어지고 있다. 일요신문DB
[일요신문] 이재명 성남시장이 “남경필 지사의 ‘무늬만 연정’은 파기해야 한다”며 남 지사를 강하게 비난했다. 이 시장의 발언을 두고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의 인연이 새삼 관심을 모으고 있다. 단체장들의 차기 대권 행보가 관심을 모으는 가운데 여야를 대표하는 유명 정치인이기도 한 남 지사와 이 시장의 관계는 그야말로 악연이라 불릴 만하다. 이를 두고 남 지사와 이 시장이 대권을 향한 외나무다리에서 맞붙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마저 제기돼 흥미롭다. 두 사람의 인연을 돌아봤다.
지난 6·4 지방선거 이후 이 둘의 공식적인 첫 만남은 성남 전통시장 활성화 추진 당시였다. 이때 둘의 관계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기도, 축사에서 서로의 노고를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4년 10월 17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 판교테크노밸리의 야외 공연장 인근에서 벌어진 환풍구 붕괴 추락 사고가 일어나자 이 둘의 관계는 급격히 경색되었다.
이 사고로 16명이 사망하고 관계자 1명이 자살하는 등 심각한 인명피해는 물론 안전관리에 대한 국민적인 비난이 쏟아졌다. 당시 해외방문 중이던 남경필 지사는 조기 귀국해 사고 현장을 찾았으며, 이재명 시장은 사고수습 때까지 현장을 지켰다. 문제는 사고 책임을 두고 경기도와 성남시 간에 공방이 벌어지면서부터다. 경기도와 정부, 새누리당은 이재명 시장과 성남시의 행사관여 등을 이유로 책임을 물었으며, 당시 야권과 성남시는 경기도 산하기관의 연루 책임을 강하게 지적했다. 급기야 경기도 행정감사에서는 이재명 시장이 “대답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며 웃음을 짓자, 조원진 의원 등이 강하게 비난하는 등 여야 정치권의 공방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친박-비박 계파갈등 중인 새누리당 내에서 차기 대권주자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연이어 갈등은 불거졌다. 경기도와 성남시가 판교 운중물류단지를 두고 또다시 공방을 벌인 것이다. 경기도가 2014년 8월부터 민간물류업체와 성남시 분당구 판교신도시 운중동 산94-1번지 9만㎡ 보전녹지 공익용 산지를 유통상업용지로 용도변경을 추진하면서부터 해당 지역주민들이 환경파괴, 주거환경 훼손, 교통량 혼잡 및 통학로 사고위험 증가, 토지용도변경에 대한 특혜의혹을 이유로 이를 강력히 반대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 시장은 반대주민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남 지사를 압박했다. 결국 경기도는 판교 운중물류단지 해당 사업을 접었다.
남 지사와 이 시장의 갈등의 골은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재명 시장의 대표적인 정책인 성남시 청년배당, 무상산후조리원 지원, 무상교복 등을 경기도와 정부가 제지하면서 극에 달했다. 이후 누리과정 예산 카드 집행 등 경기도가 정부 권고안을 시군에 협의하는 과정에서도 사사건건 대립과 갈등을 이어왔다.
당정조차 연일 이 시장의 무상복지를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비난했지만 4·13총선에서 여소야대 정국으로 결론이 나자 이 시장의 복지정책 비난은 다소 수그러들기도 했다. 실제로 보수표밭으로 불리던 분당지역이 모두 더민주의 승리로 끝나자 이 시장의 정치적 영향력은 커졌다.
반면, 남 지사는 자신의 행정파트너들의 총선 실패로 다소 입지가 주춤해진 모양새다. 하지만 남 지사의 추진 동력이었던 연정이 계속 이어지자 오히려 당내 유력주자로 떠오른 상태다.
그러던 중 이 시장이 남 지사를 향해 맹비난을 다시 퍼붓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경기도의회 더불어민주당 측에 남 지사와의 연정을 파기할 것을 공식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당대표 출마를 포기한 것을 두고 차기 대권 행보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이 시장은 당내에서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이 시장은 지난 7월 22일 성명을 내고 “국민을 기만하는 남 지사와의 ‘무늬만 연정’은 즉각 파기해야 한다”며 “연정의 핵심은 복지 분야에 대한 야당의 결정권을 보장하고 존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남 지사는 연정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만 내세울 뿐 실제로는 불통과 독단의 정치를 계속해 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남 지사가 경기도를 중앙정부의 지시에 따라 마치 하부기관처럼 지방자치의 본질을 무너뜨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시장의 이런 작심발언은 성남시 3대 무상복지정책(청년배당·무상교육·산후조리)을 중단시키려고 예산안 재의결을 요청하고 (올해 1월) 대법원에 제소까지 한 남 지사에 대한 반격인 것으로 보인다.
반면, 남경필 지사는 이 시장의 언급에 공식적인 대응 없이 정부의 합법적인 절차와 방침을 이행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일부에서는 남 지사가 광역단체장으로서 기초단체장인 이 시장의 행보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하지만, 그동안 양측은 여러 정책적 마찰에서 번번이 ‘소통불가’의 모습을 보여왔다. 말 그대로 ‘물과 기름’처럼 두 사람의 감정의 앙금은 깊어진 모양새다.
한편, 남 지사와 이 시장은 최근 이뤄진 차기 대선후보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여야의 상위권에 포함되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 시장은 전당대회 당대표 출마지지도에서 깜짝 1위를 차지하는 등 최근 지지세가 뚜렷이 상승한 모습이다. 남 지사 역시 친박-비박 계파갈등 중인 새누리당 내에서 차기 대권주자 입지를 다지고 있다.
이를 두고 남경필 지사와 이재명 시장이 얼마 남지 않은 차기 대선에서 악연을 이어갈지 선의의 경쟁을 펼칠지 두 사람의 행보에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서동철 기자 ilyo100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