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전 대표의 여름휴가가 ‘노골적’이고 ‘저돌적’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을 대놓고 겨냥하는가 하면 자신의 대권욕을 대놓고 드러내기도 했다. 호남에서부터 경북까지 전국을 유람한 배낭여행의 콘셉트는 ‘겸허한 경청(Listening humble)’이었지만 기자들 수십 명이 따라 붙었고, 그는 일거수일투족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실시간으로 올리고 있다. ‘여기 김무성이 있다, 나 좀 봐주소’라는 무언의 압박으로까지 읽힌다.
김무성 전 대표.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김 전 대표는 국내 배낭여행 첫 목적지를 전남 해남 땅끝마을로 정했다. 대권을 향한 전국 다지기 1탄은 말 그대로 ‘호남상륙작전’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조용히 서민을 만나 민심을 청취하며 향후 대선가도에 참조하려 할 것이란 주위의 예상과 달리 그가 가는 곳마다 조금씩 정치부 기자들과 카메라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겸허한 경청이 아닌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대권 행보가 됐다. 처음엔 한두 매체밖에 없었는데 그 수가 대폭 늘었다.
김 전 대표가 직접 전화를 걸었다. 자신을 마크하고 있는 일부 중앙 매체 기자들에게 자신의 동선을 설명했다. 와달라는 말만 않았을 뿐 올 수밖에 없는 취재거리를 제공했다. 그 첫번째가 박 대통령이 대구경북(TK) 초선 의원들을 청와대로 불렀다는 이야기였다. 김 전 대표는 일부 기자들이 있는 곳에서 누군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박 대통령께서 TK 초선들을 청와대로 불렀다는데?”라고 말한다. 이에 기자들이 “전당대회(8월 9일) 전에 박 대통령이 TK 의원들을 불렀다고요?”라고 물으니 “그러네?”라고 답했다.
별 뜻 없이 한 얘기였지만 전당대회 선거운동이 한창 진행되는 시점에 박 대통령과 당 소속 의원들의 만남은 취지가 어쨌든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행사였다. 이런 식이다. 김 전 대표와 함께 있던 기자들은 다음날 ‘단독 보도’를 할 수 있었다. 기삿거리가 생기는 자리니 기자들이 하나둘 김 전 대표의 행선지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부산에서 낙선한 박민식 전 의원이 김 전 대표를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박 전 의원 측은 ‘수행’이 아니라 ‘동행’으로 해달라고 기자들에게 요청했다.
“현장에는 혼자 조용히 가야지, 기자들이 막 몰려가면 제 진정한 마음이 전달 안 되고 그분들도 안 좋아해서 언론을 속이고 땅끝마을 간다하고 팽목항 갔는데 오늘도 기자분들 오셨는데 제가 전혀 초대 안했어요.” 김 전 대표가 주민들과 만나 전한 이 이야기의 진실을 동행 기자들은 알고 있는 셈이다. 김 전 대표는 “요새 제가 어디 가면 경찰 정보과가 정보를 다 줘서 언론에도 당에도 알려지고 그런다”고도 했다.
이후 김 전 대표의 워딩(worlding)은 날 것 그대로 써도 제목으로 뽑힐 정도로 날이 섰고 각이 섰다. 우선 박 대통령을 겨눴다. “(박 대통령이 TK 초선 의원들을) 만나서 무슨 말씀 하실지 모르겠지만 전당대회를 앞두고 대통령이 특정 지역 의원들을 만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번 청와대 초청은 박 대통령이 부른 것이 아니라 TK 초선 의원들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경북 성주 배치와 영남권 신공항 무산, 우병우 사태 등에 대한 지역 민심을 전하고자 먼저 요청한 사안이다. 초선들이 김재원 청와대 정무수석을 통해 7월 중순쯤 제안했고 박 대통령이 최근 이를 수락한 것이었다.
비박계 중진 의원은 “사람이 많은 자리에서 박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전대 개입성 발언을 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박 대통령 스타일도 그런 시그널을 막 보낼 분도 아니다”라며 “나는 친박이 아니지만 자기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김 전 대표의) 사고방식에는 동조할 수 없다”고 했다. 이 중진 의원이 이런 말을 한 것은 김 전 대표가 전대 개입 의지를 노골적으로 피력했기 때문이다. 즉, 자기는 전대에 개입해도 되는 사람이고 박 대통령은 해선 안 될 사람으로 분류한 것에 대해 같은 비박계에서조차 반기를 들었다.
“정병국, 주호영 두 후보가 이번 주말에 단일화를 할 건데 (나는 단일화된) 그 사람을 지원할 것이다” “(비박계) 비주류가 당대표가 되는 것이 새누리당 발전에 도움이 된다” 등 김 전 대표는 노골적으로 이주영 이정현 두 친박계 후보는 당대표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번 여름 휴가에 ‘김무성 대망론’이 부각될 것이란 예상도 정확히 들어맞았다. 우선 수염이다. 정가에서는 김 전 대표가 면도를 하지 않고 하얀 수염을 기르는 것을 보고 ‘손학규 코스프레’라는 반응이다.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도 지난 세월호 참사에서 머리와 수염을 길러 당시 주민들로부터 어떤 신뢰를 받기도 했다. 숙박시설도 마찬가지. 그는 템플스테이를 시도했고, 마을회관에서 쪽잠도 청했다. 일부 주민들이 담뱃값 올리지 말고 기업에서 세금 많이 거두라고 하자 “(대통령을) 맡겨줘야 잘할 거 아닙니까”라고도 했다.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전라도 사람을 국무총리로 쓸 것”이라고도 했다. 이쯤 되면 ‘날 대통령 좀 시켜주소’라는 말이 된다.
“저는 박근혜 대통령이 추진하는 개혁 정책에 앞장섰고, 공무원연금 개혁까지도 해줬는데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더라. 나더러 비박계 좌장이라고 하는데 나는 비박을 한 적도 없다.”
“(나보고) 답답하다고 하는데 나는 마지막까지 박 대통령을 보호해야 한다. 병신이 되고 바보처럼 보여도 대통령을 보호할 것이다.”
“현재 정치인들은 다 썩었다. 부정부패가 아니라 뇌 구조 사고 구조가 썩었다.”
“헌법구조가 잘못됐다. 민주적 대통령을 뽑는 게 아니라 제왕을 뽑고 있다.”
말 그대로 박 대통령을 들었다 놨다 했다. 정가에선 대청와대 ‘냉온전략’으로 해석했지만, 청와대는 부글부글 끓고 있는 모양새다. 김 전 대표가 박 대통령과 각을 세워 체급을 높이고 있다는 얘기다. 팽목항, 소록도, 경북 성주까지. 여름휴가를 청와대에서만 보낸 박 대통령과 달리 현안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 간 김 전 대표의 행로가 대조되는 대목이다.
김 전 대표는 메르스가 한창이었던 지난해 여름에도 “여름휴가는 국내에서”를 강조했다. 지난 7월 한 토론회에서도 “올여름 휴가는 국내에서 보낼 생각”이라고 했다. 메르스 사태 땐 불황 차단과 내수 진작을 명분으로, 올해엔 현안 청취를 목적으로 했다. 김 전 대표는 9월말 중국 옌볜대에서 열릴 세미나에 참석한다. 통일을 주제로 한 세미나다. 그 뒤 백두산을 둘러본다. 중국은 현재 사드 배치 문제로 우리나라와 긴장 관계 속에 있다. 김 전 대표의 대권욕이 점차 그 강도를 높이는 모습이다.
이정필 언론인
돈선거 사라진 새누리당 전대…한몫 잡으려던 정치 낭인들 울상 새누리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한몫 잡아보려는 정치 낭인들이 모두 울상이다. 각 후보 캠프에 노크를 하면 문호는 개방하지만 활동비며 식사비며 금전 혜택이 드물어 ‘멘붕’이라고 한다. 한 정치권 인사는 “달라도 너무 다른 풍경”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우선 당 대표 후보들이 돈을 안 쓴다. 이정현 이주영 정병국 주호영 한선교 후보 모두 ‘큰손’이 아닌 데다 선출 룰이 변경되면서 올인을 기피하게 된 것이다. 이번 새누리당 전대는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분리 선출한다. 예전에는 당원과 대의원들이 ‘1인2표제’로 최고 득점자가 당 대표가 되고 차점자 순으로 최고위원이 됐다. 이번엔 5명이 맞붙었지만 2위를 해도 평의원이다. 2등이 ‘2인자’가 되던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 이를 두고 한 캠프 관계자는 “아낄 수 있는 품목은 최대한 아껴야 한다는 지령이 내려왔다”며 “보좌진 외 캠프 인사는 없다”고 했다. 그래도 사람이 움직이면 돈은 든다. 어떻게 충당할까. 우선 후보가 직접 친한 의원들에게 “밥 한번 사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다. 당원이나 대의원 수십 명의 밥값은 인당 2만~3만 원만 해도 수백만 원이 든다. 이를 동료 의원이 한 차례 계산하면서 지원하는 방식이다. 대신 이런 방식은 돈이 많은 의원들에게 통한다. 일부는 봉투에 몇 백만 원을 담아 건넨다고도 전해진다. 하지만 이 두레 방식은 최근 많이 사라졌다. 다른 지원 방식은 자신의 방 보좌진을 아예 캠프 지원 인력으로 보내버리는 경우다. 이는 돈은 안 들지만 자신을 위해 일하는 시간이 아님에도 월급을 받는다는 일종의 ‘보좌진 품앗이’에 해당한다. 생계형 국회의원이 동료 후보를 돕는 방식이다. 이렇게 지원을 충당하고도 모자라 이번 당대표 후보들은 자체 여론조사를 전혀 실시하지 않고 있다. 3차례로 제한된 문자메시지 발송도 규정대로 3차례만 딱 한 곳도 있다. 당내 경선은 중앙선관위로부터 관리되고 있지 않아 문자 발송 횟수 제한을 제대로 지키는 캠프는 없었다. 하지만 한 차례 문자 발송으로 500만~800만 원까지 소요되니 이를 건너뛴다는 것이다. 별도의 선거사무실을 내지 않은 캠프도 있다. 당원이나 대의원을 국회 의원회관에서 직접 맞고 있는 셈이다. 생수나 부채, 수건 등등 선물용품이나 응원도구도 일절 만들지 않은 캠프도 있다. 이러니 ‘특보’랍시고 캠프에 들어갔다가 손가락만 빨고 있는 낭인들이 생기는 것이다. 과거 전대 캠프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박희태 돈봉투’ 사건에서 보듯 과거 전대에서는 자금을 활용한 엄청난 동원이 이뤄졌다”고 했다. 전국 각 시도당에 조직책을 만들어 관리하는 데에만 수백만 원이 들어가 10억을 쓰면 중간, 그 이상 써야 당선이란 말까지 나돌았다. 당시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인 셈이다. 언론인 출신의 한 캠프 인사는 “활동비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당선이 되면 자리를 좀 봐달라고 할 참”이라고 귀띔했다. 이번 새누리당 대표는 과거와 달리 인사권 등 권한이 크게 강화된다. [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