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이 7월 27일 서울 여의도 한 식당에서 열린 친박(친 박근혜)계 의원 만찬회동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괜한 ‘긁어 부스럼’으로 돌멩이 맞는 것보다는 낫다.”
8월 3일 기자와 만난 한 보좌관의 말이다. 그는 “거물급들은 보통 휴가를 이용해 리스크 관리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자신은 한 발 빠진 채로 상황을 관망하면서 불필요한 오해를 일으키지 않는 방법이다. 민감한 상황에서 논란을 피해 해외 일정을 미리 잡는 의원들도 있다. 일단 국내에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소설을 쓰니까…”라고 밝혔다. 이른바 거물급 정치인들이 휴가를 ‘타이밍’에 맞춰 쓴다는 분석이다.
친박 좌장 서청원 의원은 ‘거리두기’ 전략을 택했다. 7월 27일 친박 의원들의 만찬을 주도한 서 의원은 바로 이튿날 강원도로 휴가를 떠났다. 전당대회 전날인 8월 8일 돌아올 예정인 서 의원의 휴가 일수는 총 11일. 제법 오랜 기간 동안 휴가를 떠나는 셈이다.
국회의 한 관계자는 “서 의원은 휴가를 떠나야 본인에게 유리하다. 자신이 나서서 친박 후보들을 규합하고 단일화를 할 힘이 남아 있었으면 그 작업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휴가 가지 않고 남는 것은 괜한 억측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 의원은 전대 과정에서 ‘세몰이’를 하고 있다는 비박계의 비판을 차단하기 위해 휴가를 떠났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비박 좌장’ 김무성 전 대표는 ‘새판짜기’ 전략에 돌입했다. 김 전 대표는 8월 1일부터 전국 배낭여행을 시작했다. 휴가 대신 민생 탐방을 선택한 김 전 대표는 진도 팽목항, 국립 5·18민주묘지 등을 돌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김 전 대표가 본격적으로 대권행보에 들어갔지만 전대 때문에 골치가 아플 것”이라는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진박 감별사’ 최경환 의원은 유럽 출장을 다녀온 뒤 강경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7월 28일 외교통일위원회 의원들과 함께 유럽 시찰을 떠났다. 당초 최 의원은 서 의원처럼 ‘거리두기’ 전략으로 외유를 떠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8월 4일 돌아온 최 의원은 “비박계 단일화 주문은 전대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유럽 잠행’의 알을 깨고 나온 최 의원이 김 전 대표에게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앞서의 보좌관은 “최 의원은 당에 있어봐야 도움이 안 된다. 총선의 원흉이 전대에서 모습을 보이면 모양새가 좋지 않다. 차라리 자리를 비워주면 최 의원 같은 거물들은 마음 편하게 리스크 관리를 할 수 있었을 텐데…”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8월 1일부터 3일간 강원도에서 휴가를 보낸 더민주 김종인 대표의 화두 역시 ‘새판짜기’다. 김 대표는 1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춘천 등 강원도 지역을 오가며 쉬려 한다. 제가 한번 플랫폼을 만들고 대선행 티켓을 끊어줄까 하는 생각이다. 휴가가 끝나면 한번 정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김 대표가 휴가 기간 동안 고심했던 ‘대선 플랫폼’은 무엇일까. 더민주 핵심 당직자는 “경제민주화에 대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김 대표도 정치인이다. 정치인으로서 욕심이 왜 없겠나. 특히 그의 꿈은 경제민주화다. 이 가치를 위해 김 대표는 어떤 세력과도 손을 잡을 수 있다. 김 대표는 대선후보로서 문 전 대표의 확장성에 대해 깊이 고민해왔다. 문 전 대표가 이 점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바로 대체재를 찾을 인물이 김 대표”라고 전했다.
다른 당직자는 “김 대표는 여야를 가리지 않는 인물이다. 본인이 대선 플랫폼을 짰다면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까지 대통령으로 만들 사람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지율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는 집권 여당 안의 야당 성향의 후보가 유리하다. 가치 지향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김 대표가 유 의원을 선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탰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