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8일 헌법재판소의 김영란법 합헌 판단 이후 이 법을 위반하는 사례를 좇는 파파라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아래 사진은 자동차키 모양의 몰카 장비.
지난 3일 오전, 기자와 만난 A 씨는 이날도 가짜 환자를 좇고 있었다. 신고 포상금을 받으려면 가짜 환자 혐의자가 환자복을 입은 채 외출한 상황과 얼굴 촬영, 입원한 병실과 이름까지 확인해야 하지만 그는 문제없다는 듯 여유롭게 한 정형외과 앞 커피 전문점에서 병원 입구를 주시하고 있었다.
A 씨는 이 병원은 교통사고 환자들을 주로 치료하는 병원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이 병원의 조식 시간부터 오후 5시 물리치료 마감 시간까지 병원의 하루 일과를 모두 꿰고 있었다.
오후 6시, 다리와 팔에 각각 깁스를 한 남자 두 명이 병원을 나섰다. A 씨는 식당과 피씨방을 배회하던 그들을 미행했다. 두 시간 뒤, A 씨는 촬영한 두 남자의 얼굴 사진을 보여주며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환하게 웃었다.
# 파파라치 업계 ‘거대 시장’ 열렸다?
자영업을 하는 A 씨는 나파라치를 지난 2009년 시작해, 7년째 부업으로 하고 있다. 매달 평균 수십만 원을 포상금으로 받고, 많게는 수백만 원까지 받는다.
그런데 최근 A 씨는 파파라치 활동 분야를 바꾸려는 계획을 세웠다. 오는 9월 28일부터 시행되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을 두고 결정했다고 한다. 그는 “분야를 바꾸겠다는 파파라치들이 여럿 있다. 최근 헌법재판소가 김영란법을 합헌이라고 판단한 이후, 업계가 소란스러워졌다”고 귀띔했다.
김영란법은 공무원과 언론인, 사립학교 교원과 그 배우자 등이 식사 대접 3만 원, 선물 5만 원, 경조사비 10만 원을 넘게 받으면 몇 배의 과태료를 물게 하고, 일정 금액 이상이면 형사처벌까지 받도록 하고 있다.
이 법률 적용대상만 400여만 명으로 추산된다. 신고 포상 금액도 높은 편이다. 위반 사례를 신고하면 최대 20억 원의 보상금(국고 환수액 비율에 따른 최대 보상액)이나 최대 2억 원의 포상금(국고환수액과 상관없이 주는 최대 포상금)을 받을 수 있다.
그동안 파파라치 업계는 경쟁이 치열했던 데다, 무분별한 신고로 포상금 제도가 사라지거나 1인당 연간 신고 횟수가 제한되는 경우도 늘어난 상황이었다. 이러한 파파라치 시장에 거대한 새 시장이 들어섰으니, 업계가 들썩일 수밖에 없다는 게 A 씨의 주장이다.
실제로 A 씨의 소개로 만난 또 다른 파파라치 4명은 전문적인 ‘란파라치(김영란법+파파라치)’ 팀을 꾸렸다. 경력이 6~7년가량 된다고 밝힌 이들은 5년 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처음 만난 뒤로 각자의 노하우와 정보를 공유해오고 있다고 했다. 4명 모두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김영란법을 대상으로 활동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날 이들은 각각 ‘업무’를 분담했다. 포상 금액이 구체적으로 세분화되지 않은 데다 법 위반 여부에 대해 논란이 지속되는 상황이지만, 이들 4명은 김영란법 원안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활동 지역은 세종시로, 신원 확인, 미행 및 촬영 등 각자의 역할을 정했다. 란파라치를 계획하고 있는 B 씨는 “시행 전, 후로 김영란법 관련 정보를 계속 수집하면서 활동 방안을 구체화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또한 기존 파파라치 학원 외에 ‘공익신고 전문요원 양성소’ 등 사설 학원들이 새롭게 생겨났다.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을 중심으로 최근 점차 늘기 시작했다. 특히 일부 학원에선 이미 ‘란파라치’ 교육을 해준다며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기자가 찾은 서초동의 한 사설 학원의 란파라치 무료강좌에는 3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수강생들이 찾아왔다. 이날은 총 8명이 학원을 찾았는데, 마치 입시생처럼 강사의 말에 집중하며 메모를 했다.
이날 학원을 찾은 C 씨는 “김영란법 포상금액이 크다고 해서 찾았다. 공익제보도 하고 돈도 벌고 1석 2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서의 사설 학원 강사는 “헌재 합헌 판단 이후 학원을 찾는 수강생이 늘었다. 전화 문의까지 더하면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고 봐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각종 부작용 무시 못해
이처럼 김영란법 통과로 파파라치 업계가 들썩이고 있지만, 그 부작용이 적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일부 사설 학원들이 파파라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틈을 타 이를 돈벌이로 악용한다는 것.
실제로 기자가 찾은 앞서의 학원 강좌는 ‘란파라치 집중 강좌’라는 제목으로 개설됐지만, 실제 강의는 김영란법에 대한 설명을 제외하면 기존 파파라치들이 주로 활동하는 식(食)파라치(식당, 슈퍼마켓 등 위반 사례를 좇는 파파라치), 세파라치(현금영수증부터 탈세를 찾는 파파라치) 등에 대한 강의, 포상금 신청 방법 등이었다.
또한 무료 강좌 수강 이후 유료 강좌로 전환하려면 몰래카메라와 녹음기 등의 구입을 권유했다. 강사는 “‘현장’에 나가면 앞으로 고수입을 올릴 수 있으니, 이 정도 투자는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카메라와 강의료 포함 100만 원이었으며, 강의를 듣지 않고 구입하더라도 수십만 원을 내야했다.
하지만 기자가 용산 전자상가를 찾아 확인한 결과, 대부분 진열장에 전시가 돼 있는 제품이라 따로 찾지 않아도 될 정도로 흔했으며, 카메라와 녹음기의 시중가격은 학원에서 권유한 가격의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현재 일부 파파라치 양성 학원이 실습과 현장투입을 빙자해 카메라, 녹음기 등을 판매하고 있는데, 이는 파파라치에 대한 관심을 이용해 폭리를 취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편 법조 관계자들은 “란파라치들의 활동이 어려울 것”이라거나, 오히려 “사생활 침해 등 각종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김영란법 위반 행위는 보통 수사기관이 직접 적발하기 어려운 비공개 장소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제보를 통해 법 위반 사항이 적발되는 사례가 늘텐데, 포상금을 노린 파파라치의 활동영역이 넓어질 수 있다”면서도 “다만 란파라치는 기존 파파라치 활동보다 ‘난이도’가 높다. 김영란법의 경우 위반자들의 이름부터 직함, 근무부서, 관계, 접대 및 수수내용 등을 알아야 신고가 가능하다. 교통법규 위반이나 원산지 표기 등과는 차원이 다른 작업이라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공직자 등의 사생활 전반에 대해 무분별한 신고가 이뤄질 수 있다”며 “오히려 사생활 침해로 이어져 공익 목적과 다른 각종 논란이 불거지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