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국제영화제에도 공식 초청받으며 작품성까지 인정받은 <부산행>은 ‘한국형 좀비물’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차별화된 콘텐츠로 주목받았다. 지난해 개봉한 <베테랑> 이후 약 1년 만에 탄생한 1000만 영화인 <부산행>이 가진 의미를 짚어본다.
‘부산행’은 개봉 18일 만인 지난 7일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 멀티 캐스팅이 아니어도 된다!
기존 1000만 영화들은 대부분 멀티 캐스팅이 주효했다. 역대 최다 관객을 모은 영화 <명량>은 최민식과 류승룡이 뭉쳤고, <베테랑>은 황정민과 유아인, <암살>은 이정재-하정우-전지현, <도둑들>은 김윤석-전지현-이정재-김수현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의 향연이 돋보였다.
<부산행>은 다르다. 공유는 아직 충무로에서는 티켓파워가 보장된 배우가 아니었고, 마동석 역시 지난해 <베테랑>에서 ‘아트박스 사장님’으로 주목받는 등 주로 조연이나 카메오로 활약했다. 게다가 연출은 그동안 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던 연상호 감독이 맡았다.
그러나 <부산행>은 개봉과 동시에 무서운 기세로 관객을 모았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 “재미있다”는 입소문을 내면서 관객이 순증했다. 반드시 캐스팅이 세지 않더라도 ‘재미있으면 본다’는 평범한 진리가 다시 입증된 셈이다.
‘부산행’ 촬영 현장.
# 한국형 좀비물의 탄생
외국에는 유명한 좀비물이 많다. 고전 격인 <새벽의 저주>를 넘어 브래드 피트가 제작 및 출연했던 <월드워 Z>를 비롯해, 윌 스미스가 출연한 <나는 전설이다>, 밀라 요보비치가 주연을 맡은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 등이 전세계적으로 흥행을 거뒀다. 반면 국내에서는 불모지에 가깝다. 최근 개봉됐던 영화 <곡성>에 좀비가 잠시 등장하지만 영화의 주된 소재는 아니었다.
반면 <부산행>은 좀비를 전면에 내세웠다. 한국에 좀비가 출몰한다는 것이 다소 생소했지만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의해 인간들이 감염된다는 설정은 최근 몇몇 대형 제약회사들의 사고 등 사회적 이슈와 맞물리며 관객들에게 공포를 선사했다.
또한 기존 좀비물은 주인공 일행이 좀비를 퇴치하는 데 초점을 맞춘 반면, <부산행>은 좀비 무리로부터 가족을 구하고 보호해야 하는 인간 군상을 다뤘다.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 막바지에는 감동까지 전하며 한국적 정서가 잘 담긴 좀비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 좀비, 그리고 심은경
공유, 마동석, 정유미 외에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좀비들이었다. 과연 이 좀비들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부산행>에는 100여 명의 좀비가 등장한다. 그중 절반가량은 특수 훈련을 받은 이들이다. 그들은 아크로바틱한 관절 꺾기를 연기하기 위해 전문 안무가로부터 트레이닝을 받았다.
특히 <부산행>에는 배우 심은경이 카메오로 출연했다. 이 영화에서 부산행 기차에 오르는 첫 여성 감염자가 바로 심은경이다. 제대로 얼굴 한번 잡히지 않지만 그는 ‘첫 좀비’라는 점에 매력을 느껴 흔쾌히 출연을 결심했다는 후문이다. 심은경은 이 장면을 위해 2주 동안 따로 훈련을 받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부산행’에서 첫 번째 좀비로 카메오 출연한 심은경.
# 쌍끌이 1000만 가능할까?
<부산행>이 1000만 고지를 밟자마자 업계와 대중의 시선은 <인천상륙작전>과 <덕혜옹주>로 쏠렸다. 지난해 <암살>과 <베테랑>이 나란히 1200만, 1300만 관객을 동원했듯 파이가 커진 극장가에서 또 다른 1000만 영화 탄생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인천상륙작전>은 개봉 2주 만에 5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으며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애국심 마케팅’이라는 지적과 함께 호불호가 엇갈리지만, 이런 평가가 오히려 영화의 흥행을 자극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두 영화의 틈바구니에서 고전할 것으로 예상했던 <덕혜옹주> 역시 개봉 첫 주 170만 관객을 모으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배우 손예진의 호연이 돋보이는 <덕혜옹주>는 <인천상륙작전>과 함께 실화를 소재로 삼았다는 점도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지난 10일 개봉된 배우 하정우 주연의 <터널> 역시 복병이다. 올 여름 극장가의 문을 닫는 영화로 하정우의 티켓 파워를 감안했을 때 마지막까지 주목해야 할 작품이다.
# 신기록 향연 이면엔…
<부산행>은 <명량>의 오프닝 기록을 넘어서 개봉 첫날 87만 명을 동원하는 등 시작과 동시에 신기록의 향연을 펼쳤다. 개봉 첫 주 5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첫 영화이기도 하다. 또한 <부산행> 측은 각각 개봉 4일, 5일 닷새 만에 400만, 500만 관객을 넘으며 <명량>이 보유했던 5일, 6일 기록도 넘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정식 개봉 전인 7월 15~17일 사흘간 유료 시사회를 진행했다. 이 기간 동안 모은 관객은 55만 8000명이고, 이 수치는 누적 관객수에 반영됐다. 만약 이 기록을 제외한다면 <부산행>의 기록은 <명량>을 넘지 못한다. 이런 측면에서 <부산행>은 상영 내내 불명예스러운 꼬리표를 달고 다녔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새로운 기록을 써서 영화사에서 기억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페어플레이를 펼치지 않은 영화로 기억되는 것도 피해야 했다”며 “<부산행>의 꼼수 시사회는 두고두고 안타까운 대목으로 남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