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네다국제공항역 케이큐전철 개찰구에서 일하는 역무원 로봇 ‘페퍼’. 인간의 감정을 인식해 이야기를 나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개찰구를 통과하자, 페퍼는 부지런히 영어와 중국어로 “어서 오세요” “일본에 잘 오셨습니다” 등 환영의 인사를 건넨다. 물론, 진짜 역무원에 100% 가깝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열심히 고개를 돌리며, 반갑게 맞이하는 모습은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붙잡기 충분했다. 덕분에 페퍼와 함께 사진을 찍는 등 관광객들은 즐거워하는 모습이다.
지난해 7월에는 나가사키현에 위치한 테마파크 ‘하우스텐보스’에 이상한 호텔이라는 뜻의 ‘헨나 호텔’이 문을 열었다. 이곳은 세계 최초로 안드로이드 로봇을 직원으로 활용한 호텔이다. 약 180대의 로봇이 숙소 안내부터 룸서비스, 짐 운반 등 사람을 대신한다.
하우스텐보스의 헨나호텔은 세계 최초로 안드로이드 로봇을 직원으로 둔 호텔이다. 미녀로봇과 공룡로봇이 숙박객 접수를 담당한다.
예를 들어 프런트 데스크에서는 미녀로봇과 나비넥타이를 맨 공룡로봇이 숙박객 접수를 담당하며, 짐을 객실까지 옮기는 일도 캐리어 모양의 로봇이 수행한다. 객실 안에도 작은 로봇이 있다. 인형처럼 친근하고 귀여운 외형이 특징. 날씨와 뉴스를 이야기해주고, 음성으로 명령하면 조명도 알아서 척척 꺼준다.
첨단기술은 이뿐만 아니다. 고객의 얼굴을 인식해 객실 문이 자동으로 열리는 시스템을 적용, 외출 시 열쇠를 따로 챙겨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앴다. 그야말로 공상과학만화에서나 보았던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주간겐다이>에 따르면 “헨나 호텔은 로봇 도입으로 인해 당초보다 인건비를 연간 5분의 1 수준으로 삭감할 수 있었다”고 한다. 더욱이 “로봇이 접객을 담당한다”는 소식이 화제가 되면서 손님이 몰리고 있단다. 이른바 “매출 증대 및 경비 절감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은 셈이다. 매체는 “인기에 힘입어 ‘헨나 호텔 2호점’이 2017년 3월 도쿄 디즈니랜드 근처인 지바현 우라야스시에 오픈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하우스텐보스의 테마파크 내 식당에서 로봇 ‘앤드류’가 오코노미야키를 만들고 있다.
로봇의 활약은 음식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하우스텐보스는 얼마 전, 테마파크 내 식당에 로봇 일꾼을 도입했다. 무려 주방장으로서의 역할이다. ‘앤드류’라는 이름이 붙은 이 로봇은 일본식 부침개인 오코노미야키를 제대로 만들어낸다. 레시피에 따라 정확한 양, 정확한 순서대로 요리를 하기 때문에 항상 맛이 일정하고, 위생적이라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앤드류 외에도 30대의 로봇이 식당가에서 음식 재료를 굽거나 볶는 등 조리를 담당한다. 접시에 요리를 예쁘게 담고 손님에게 전달하는 등 섬세한 작업만 사람의 손을 거치는 식이다. 이 정도면 가히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시대가 열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싶다.
‘노무라종합연구소’ 발표에 의하면, 10~20년 뒤 일본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 49%가 인공지능(AI)과 로봇으로 대체될 전망이다. 연구소는 대체 가능성이 높은 직업으로 “마트 계산원, 경비원, 신문배달원, 빌딩 및 호텔 청소직, 택시운전사” 등을 꼽았다. 반면, 예술이나 역사학, 철학, 신학 등 추상적인 개념을 다루는 직업이나 타인과의 협조, 이해, 설득, 협상이 필요한 직업은 로봇으로 대체하기 어려운 경향을 보였다. 몇 가지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의사, 연구자, 미용사, 만화가, 보육사 같은 직업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일본은 정부에서 로봇산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이유는 갈수록 심화되는 일손부족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노동력부족, 노인부양 등의 해결책으로 일찌감치 로봇산업을 점찍었다. 특히 “아베 신조 정권이 들어서면서 각종 지원 아래 로봇산업이 한층 더 도약했다”는 평가다. 이와 관련, 일본경제산업성은 “2015년 일본 로봇시장은 1조 6000억 엔(17조 원)대로 추산되나, 2035년에는 9조 7000억 엔(100조 원)대까지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골 노인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로봇택시도 시범 운행 중이다.
그 가운데 가장 기대되는 분야는 고령화가 심각한 농업계다. 현재 일본농가에서 로봇이 활용되고 있는 사례를 살피면 ‘오리로봇’이 대표적이다. 친환경 농법인 ‘오리농법’에서 힌트를 얻어 개발됐는데, 벼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잡초만 효율적으로 제거해준다.
토마토 밭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붉게 익은 토마토를 수확하는 로봇도 있다. 본체와 2개의 팔에 탑재된 카메라가 영상인식을 통해 덜 익은 토마토와 먹음직스럽게 익은 토마토를 구별한 후 가위로 붉은 토마토만 따는 것이다. 로봇이 잘 익은 토마토를 고르고, 수확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20초. 향후 딸기나 파프리카 수확에서도 응용이 기대되고 있다.
한편, 시골 노인 소비자를 대상으로 로봇택시도 시범 운행 중이다. 내년에는 자율주행기술을 활용한 택배 배달서비스도 실증실험을 시작한다. 다만, 무인자동차가 일본 도로 위를 정식으로 달리려면 아직 법 규제가 많아 일본 정부는 도로교통법 등 법과 제도 정비를 서두르고 있다. 일본에서 무인자동차가 본격적으로 달리는 건 오는 2020년 도쿄올림픽이 목표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로봇이 사람과 너무 비슷하면 혐오스럽다? 일본은 비교적 로봇에 대한 거부감이 덜한 편이다. 이를 “인간형 로봇이 주인공인 애니메이션 ‘철완 아톰’의 영향”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또 ‘도라에몽’같이 기계와 인간이 사이좋게 지낸다는 식의 정서가 강하기 때문에 인간형 인공지능로봇 개발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친밀감을 느끼는 로봇에는 법칙이 있다. 인간은 기계보다는 움직임이나 용모가 사람에 흡사할수록 친근감을 느낀다. 그런데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하면 그 감정이 혐오감으로 바뀌게 된다. 학술적으로 이것을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라고 부른다. 이 현상은 일본 로봇학자들이 인간형 로봇을 개발하는 하나의 기준이 되고 있다. [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