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영 변호사(왼쪽)와 삼례 3인조.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다. 현실은 참으로 냉혹하다”
박 변호사가 자신의 SNS에 남긴 글의 일부다. 지난 3일, 그는 장문의 글로 사실상 파산 선언을 했다. 월세가 열 달 가까이 밀렸고, 임대계약 만기에 맞춰 보증금도 거의 없어졌다고 했다. 결국 최근 직원 하나 없이 홀로 운영하던 사무실 문을 닫았다. 하지만 그는 “내 의지로 망했다”고 했다. 정말 그랬다. 그는 그동안 스스로 파산(?)의 길을 걸었다.
박 변호사는 형사 사건의 재심 청구 소송들을 맡고 있다. 특히 피고인, 즉 현재 ‘범죄자’라 불리는 이들을 돕는다. 대법원에서 확정된 재판의 판결을 뒤집고, 새로운 증거를 찾아 다시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입증해야하기 때문에 그가 맡는 재심 청구 소송은 준비 과정부터 대단히 어렵다. 시쳇말로 ‘하늘의 별따기’라 쓰고 ‘돈 안 되고 힘든 일’이라 읽는 일이다. 하지만 박 변호사는 이런 사건을 골라서, 또 찾아다니면서 대리한다.
이러한 재심 청구 소송을 맡으면서도 박 변호사는 수임료를 받지 않았다. 그가 ‘망한’ 결정적인 이유다. 박 변호사는 별다른 영리활동이나 유료 사건 수임을 하지 않았다. 공익변론, 무료변론이 그가 최근까지 해온 일의 전부다. 최근에는 한 재심사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무죄를 주장하며 사건을 부탁한 이들이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수임료를) 드리겠다”고 사정했을 정도다.
박 변호사는 “처음부터 돈 생각하고 시작한 일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그는 2007년 ‘수원 노숙소녀 살인사건’을 계기로 재심청구를 처음 맡았다고 한다. 그 전까지 박 변호사는 고졸 학력의 변호사로, 건당 20만원씩 하는 국선변호를 한 달에 수 십 건씩 맡아 하던 속칭 ‘박리다매형’ 변호사였다.
그런 그의 마음을 움직인 건 수원 노숙소녀 사건에 연루된 아이가 쓴 편지였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던 아이들의 ‘진심’과 ‘진실’이 담겨있었다. 이후 박 변호사는 1년여 간 수사기록을 처음부터 다시 검토했고, 현장을 수십 차례 방문했다. 결국 경찰과 검찰의 짜맞추기 수사에 아이들이 거짓 자백 했음이 드러났고, 결국 2010년 7월 아이들은 무죄가 확정됐다. 이 사건 이후로 그는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 또는 포기한 사람들을 위해 대신 목소리를 내는 변호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수원 사건 이후 이름이 알려지면서 사건 수임이 많아졌다. 고용 변호사와 직원을 두는 등 사무실도 성행했다. 하지만 ‘경험’은 무시할 수 없었다. 박 변호사는 “한 번 경험해보니까 억울한 사례들이 또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관심이 이쪽으로 쏠렸다.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재심 청구 대리는 하지도 않았을 일이다. 경험했기 때문에 한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또 다시 무료로 재심사건과 탈북자 사건 등을 맡았다. 이들 사건에 집중하면서 일반 사건들은 요청이 와도 맡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재심은 증거를 수집이 중요하다. 목격자나 전문가 등 사람을 만나고 확인해야할 일이 많은데, 영리활동을 같이 병행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들 사건에 집중하면서 박 변호사는 하늘의 별을 땄다. 무기수 김신혜 사건, 남파 여간첩 사건, 약촌 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삼례 나라 슈퍼 3인조 강도 사건. 그동안 박 변호사가 맡아온 사건들의 일부다. 대부분 무죄가 확정되거나 재심 개시 결정이 이뤄졌다. ‘최고의 재심 전문 변호사’라는 타이틀이 붙기 시작했다. 대신 그동안 경제적으로는 더 어려워졌고, 월급을 주지 못해 결국 동료 변호사와 직원들을 내보냈다.
그래도 박 변호사는 완고하다. 거의 고집에 가까울 정도다. 주변에선 “살고봐야 하지 않겠느냐” 또는 “제2, 제3의 박준영 변호사가 나오려면, 다른 변호사들이 용기를 낼 수 있게 하려면 소액이라도 받아야하지 않느냐”는 걱정과 우려가 섞인 지적도 하지만 늘 정중히 거절한다.
최근 박 변호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서비스 중인 스토리 펀딩 소식을 알렸다. 스토리 펀딩이란 스토리와 펀딩의 합성어로, 일반 독자가 창작자가 생산한 이야기에 후원금을 내는 방식이다. 박 변호사는 자신의 삶과 그동안 일을 주제로 한 글을 올릴 예정이다. 박 변호사가 고심 끝에 공익변호사로서 자신의 삶을 이어가기위해 생각해낸 마지막 자구책이다. 박 변호사는 “많은 분들이 격려하고 응원해주고 있지만, 안주하지 않고 늘 상대적으로 불운을 겪는 사람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