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금융 계열사들이 광고모델들과 관련된 문제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서울 서대문 농협중앙회 건물.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요즘 TV나 라디오 등에서는 가수 이선희 씨가 주제가를 부른 NH농협은행의 ‘힘내라 대한민국’ 광고를 종종 접할 수 있다. 특히 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요즘은 육상과 배구, 핸드볼 등 여러 종목에서 국가대표 선수들이 활약하는 장면을 함께 내보내 태극전사를 응원하고 있다.
언뜻 보면 시기를 잘 맞춘 올림픽 마케팅의 일환으로 보이지만, 사실 이 광고에는 농협은행의 쓰린 속사정이 숨어 있다. 당초 ‘힘내라 대한민국’의 주인공은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류현진 선수였기 때문이다.
농협은행은 2013년 10월 류현진 선수를 전속 모델로 발탁해 광고를 내보내기 시작했는데 때마침 류현진 선수가 이듬해 좋은 성적을 거둬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류현진 선수의 경기가 TV를 통해 생중계되고 연일 언론에 등장하면서 직간접적인 광고 효과를 거둔 것은 물론 시의적절하게 내놓은 ‘류현진 특판 상품’도 큰 인기를 끌었던 것.
농협은행은 광고모델인 류현진의 재활 장기화로 특판상품 마케팅 등 차질을 빚고 있다. 지난 4월 농협은행의 힘내라 대한민국 응원 이벤트.
특히 지난해 3월에는 ‘NH 류현진 정기예‧적금’을 출시했다가 그가 경기에 나오지 못하면서 무용지물이 되는 상황까지 맞았다. ‘NH 류현진 정기예‧적금’은 류현진 선수가 승수를 쌓을 때마다 추가 우대금리를 얹어주는 기획상품이다. 하지만 그가 아예 마운드에도 오르지 못하면서 우대금리도 공수표가 된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올해 벌어졌다. 농협은행은 류현진 선수가 이번 시즌에는 재기에 성공할 것이라는 전망을 믿고 2년간 재계약을 결정했다. 그리고 ‘힘내라 대한민국’ 광고까지 제작했다. 가수 이선희 씨를 섭외해 만화영화 ‘달려라 하니’의 주제가를 개사한 노래를 불렀고, 재활에 성공한 류현진 선수가 등판을 준비하는 장면을 담았다.
이 광고가 담은 메시지는 부상을 극복하고 다시 마운드에 서는 류현진 선수처럼 어려운 시기를 딛고 일어나는 대한민국을 농협은행이 응원하겠다는 내용이다. 농협은행은 야심차게 준비한 이 광고가 전파를 타기에 앞서 언론에 보도자료를 뿌리고 ‘류현진 사인볼’ 증정 이벤트를 준비하는 등 ‘류현진 띄우기’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류현진 선수가 사실상 이번 시즌에 등장하기 어렵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농협은행은 충격에 빠졌다. 예상보다 늦은 7월 초에야 메이저리그에 다시 등장한 류현진 선수는 한 경기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또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이로 인해 농협은행은 다시 준비했던 류현진 특판상품 출시를 접어야 했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류 선수의 공백이 길어지면서 마케팅에 일부 차질이 빚어진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과거 워낙 마케팅 효과가 좋았던 터라 향후 류현진 선수의 기량이 회복되면 다시 다양한 마케팅을 펼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농협생명보험은 뜻하지 않은 돌발변수로 곤욕을 치른 케이스다. 출범 초기부터 배우 손예진 씨를 광고모델로 계속 기용해온 농협생명은 올해 초부터 새로운 인물을 내세우기로 하고 대상자 물색에 들어갔다.
농협생명은 소비자들에게 젊고 새롭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원했고, 20대 초반의 가수 겸 배우 A 씨가 적임자로 꼽혔다. A 씨는 직장인들의 애환을 담아 지난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케이블TV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으로, 여성들은 물론 남성들에게도 호감을 사고 있는 인물.
내부적으로 사실상 차기 광고모델이 확정된 상태였지만 엉뚱한 곳에서 사고가 났다. ‘금융당국의 A 씨 밀어주기’ 논란이 터져 나온 것.
금융위원회는 금융권 화두 가운데 하나인 핀테크와 관련해 A 씨를 홍보대사로 선정해 ‘핀테크 알리기’에 나선 바 있다. 금융회사도 아닌 당국이 연예인을 홍보대사로 위촉한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지만, 문제는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보인 행보였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농협생명이 광고모델로 내정했던 것으로 알려진 배우 A 씨가 주연한 영화 시사회장에 참석해 논란을 불러 일으키면서 본의 아니게 농협생명에 피해를 주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A 씨는 영화 촬영 일정 중에도 시간을 내 핀테크 홍보에 나서는 등 적극성을 보였는데, 이에 감사하는 뜻으로 임 위원장이 금융권 최고경영자(CEO)들을 대거 대동한 채 A 씨가 주연한 영화 사시회장에 참석했다. 또 A 씨와 함께 포토월에 서 사진기자들의 촬영 요청에 응하는 등 보수적인 금융권 정책수장답지 않은 파격 행보를 보였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시사회가 끝난 뒤 잡음이 일기 시작했다. 금융위원회가 금융사들에 A 씨가 주연한 영화의 표를 구매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강매 논란’이 인 것.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는 은행과 보험회사 10여 곳에 최소 3000장, 최대 1만 장까지 예매권을 사달라는 ‘협조요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금융사들이 구입한 표는 4만 장에 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덕분인지 A 씨가 출연한 영화는 흥행순위 2위에 오르며 당시 극장가를 휩쓸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턱밑까지 추격하기도 했다.
금융위원회는 이에 대해 “임 위원장이 시사회장을 찾은 것은 A 씨가 보수도 받지 않고 홍보대사로 활동해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자는 뜻이었을 뿐”이라며 “금융권에서 A 씨가 출연한 영화를 응원해주자는 공감대가 있었을 뿐 금융위가 영화표를 강매하거나 할당한 적은 없다”고 항변했다.
강매 여부의 사실관계를 떠나 이 논란의 불똥을 맞은 곳이 바로 농협생명이다. 당시 A 씨를 염두에 두고 광고 콘셉트를 마련하는 등 준비 작업에 착수하고 있던 농협생명은 금융당국의 밀어주기 논란이 일자 A 씨를 포기하고 부랴부랴 대체 인물을 찾느라 분주해졌다. 하지만 한 번 꼬인 실타래는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다른 모델을 찾느라 시간이 지체되는 사이 농협금융 내부 사정이 변하면서 새 광고 제작이 무기한 연기된 것.
농협금융은 조선·해운 관련 부실 등으로 농협금융지주와 농협은행 등 주력사들의 수익이 급감하자 전 계열사에 대대적인 비용 감축을 주문했다. 농협생명도 예외는 아니어서 비용이 많이 드는 특급 광고모델은커녕 광고 자체를 엄두도 내지 못하게 됐다.
여기에다 농협금융지주와 농협은행은 물론 농협생명, 농협손보까지 모든 금융계열사의 홍보 부서를 통합하겠다는 계획까지 발표되면서 홍보부서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 홍보부서 통합 문제는 결국 없던 일이 됐지만 한동안 업무가 올스톱됐고, 새로운 광고는 기약이 없는 상황이 됐다.
금융권 한 실무자는 “최근 유달리 농협금융 광고모델들과 관련한 해프닝이 많았다”면서도 “따져보면 광고와 관련해 농협금융 쪽에서 실수하거나 잘못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이영복 언론인